클래식, 음악

프란츠 리스트

송담(松潭) 2019. 3. 9. 13:28

프란츠 리스트

 

 

 

 

 '피아노의 제왕'이라 불렸던 리스트의 연주를 직접 들은 당대 귀족 부인들이 괴성에 가까운 환호를 보냈던 것은 당연했다. 시인 하이네는 리스트의 음악회장을 처음 찾은 뒤 큰 충격에 빠져 피아노를 연주하는 저 남자에게 보내는 여성들의 반응을 분석하기 위해 정신과 의사에게 히스테리라는 말을 설명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그 의사는 하이네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히스테리는 자력이나 전기에 감전된 듯한 기분을 말하는데 배우들의 요란한 몸짓, 간지러움, 자극적인 음악을 들을 때 발생한다.”

 

 그 발작과 호흡곤란에까지 이르는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부인들은 자신의 목과 귀에 걸려 있던 보석을 아낌없이 무대로 던졌다. 1960년대 내한했던 영국 가수 클리프 리처드의 공연장에서 여성 팬들이 괴성을 질러 당시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는데 리스트는 이보다 100년 앞서 여심을 남김없이 빼앗곤 했던 희대의 아이돌이었다.

 

 1811년 헝가리 라이딩에서 음악을 사랑하는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리스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뽐냈다. 아들에게 음악적 기초를 가르친 아버지는 하이든과도 인연이 깊은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관리인이었는데 당시 음악가로 성장하기 위한 큰물은 파리임을 직감하고 가족 전체가 파리 이주를 감행한다. 안타깝게도 헝가리인이라는 이유로 파리 음악원 입학은 거부당했지만 소년은 좋은 스승들을 만나 빠르게 성장했다. 베토벤의 제자 카를 체르니(Carl Czerny1791-1857)는 어린 프란츠의 재능에 놀라 교습비도 받지 않고 가르쳤으며 체코 출신의 작곡가 안톤 라이히(Anton Reicha 1770-1836)도 가르침을 주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피아노 연주 솜씨, 잘생긴 얼굴에 근육질 몸이었던 리스트의 젊은 시절 음악의 화두는 당연히 여자, 사랑, 연애였다. 1934년에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마리 다구 백작부인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유부녀였는데 리스트의 매력에 반해 집을 버리고 그와 동거하며 세 아이를 낳았다. 한동안 이어지던 두 사람의 사랑은 리스트가 자주 연주 여행을 하며 다른 여성과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참지 못한 마리의 불만으로 1839년에 마무리되었다.

 

 그 후 리스트와 깊은 관계를 맺은 여성은 카롤린 비트겐슈타인 후작부인이었다. 1847년 키예프에서 만난 두 사람은 예술과 종교에 대한 확고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연인이 되었다. 리스트에게 떠돌아다니는 연주 생활보다 안정을 권했던 이도 카롤린이었다. 리스트는 그녀의 말을 따라 돈을 벌기 위해 공개된 음악회에 서는 일을 1849년에 중단했다. 두 사람은 간절히 결혼을 원했지만 가톨릭 신자이자 기혼자였던 카롤린과 결합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후 신부가 되기로 결심한 리스트는 성직자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미사를 집전할 수 있는 직전 단계까지 공부한 리스트는 1869년부터 수사복을 입은 채 바이마르, 로마, 부다페스트를 오가며 연주와 지휘, 교육 활동으로 분주한 삶을 이어가다 1886년 일흔다섯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지휘를 포함해 음악의 거의 모든 분야를 장악한 슈퍼맨이자 사교계의 중심인물이기도 했던 리스트가 도대체 어떤 시간에 작품, 편지 등을 썼는지 아직도 연구가 진행 중일 정도로 그의 작품량은 방대하다. 희대의 비르투오소, 엄청난 존재감과 획기적인 실험 정신 등으로 외향적인 면모가 두드러졌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매혹적인 부드러움과 달콤함은 그가 문학소년 시절 심취했던 작가 중 사랑의 시인조지 고든 바이런(George Gordon Byron)과의 강한 연관성을 느끼게 한다. 리스트만큼 다양한 사랑의 색깔을 이해했던 작곡가도 드물다.

 

 결혼식 축가로 연회장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등 음악회장이 아닌 곳에서 울려야 진짜 유명한 음악인지도 모른다. 리스트의 작품 중에는 단연 사랑의 꿈Lebestraume 이 그렇다. 우리가 잘 아는 이 곡의 정식 제목은사랑의 꿈 3으로 세 개의 가곡으로 이루어진 진정한 사랑의 찬가라고 할 수 있다. 대개 테너 가수가 부르지만 소프라노 그 외의 다른 성부로 노래해도 멋진 이 세 곡은 1845년부터 1949년 걸쳐 만들어졌으며 원곡보다 더 유명한 피아노 편곡은 1850년경에 완성되었다. 피아노곡은사랑의 꿈, 3개의 녹턴Liebest ra umer-3 Noturnos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다. 이 중 사랑의 열정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한 3번이 대표곡이 되었다. 3번의 가사는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로 시작된다.

 

 무대 위의 카리스마 호색한적 풍모와 방랑벽 등이 리스트의 기잘 중 메피스토적 요소라고 할 수 있겠으나 어려서부터 가져온 신앙심과 아버지의 가르침은 리스트를 끝내 신을 경외하고 섬기는 사람이 되게 했다. 후기 작품 중 피아니스틱한 미학과 깊은 신앙이 동시에 나타나 있는 곡은 열 곡으로 이루어진 모음곡 시적이고 종교적인 선율이다. 전곡 중 가장 잘 연주되는 곡은 제3곡 <고독 속의 신의 축복>, 7<장송>Funerailles이다.

 

 <장송>184910월에 완성되었는데 그해 세상을 떠난 동료 쇼팽을 기리고 그와 동시에 조국 헝가리의 혁명 중 사망한 친구들을 위해 쓰였다. 절망적 슬픔을 표현한 저음부의 트레몰로가 인상적인 도입부를 지나 제시되는 멜로디 역시 비장미를 가득 담고 있다. 장조로 바뀌어 나타나는 고음부의 선율은 죽은 자들의 영혼과 살아남은 이들을 위로하는 느낌이다. 거대한 소용돌이를 연상시키는 왼손의 움직임은 절정에 이르러 장송행진곡풍의 첫 멜로디를 이끌어내며 장대한 하이라이트 후 다시 슬픔에 침잠하는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연출한다. 신에 대한 감사와 두려움, 결국 그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미약함 등을 건반 위에 오롯이 쏟아놓은 명곡이라고 하겠다.

 

 김주영 / ‘클래식 수업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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