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빗방울 속에 숨은 클래식

송담(松潭) 2019. 3. 10. 15:00

 

빗방울 속에 숨은 클래식

 

빗방울 속에 숨은 클래식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7월 초는 1년 중 제일 비가 많이 내리는 시기다. 비가 내리는 모습은 참 여러 가지다. 오랫동안 가뭄으로 땅이 말라 있다가 내리는 비는 시원한 느낌이고 우산을 쓰고 나가도 바람에 흔들리며 다가와 얼굴을 기분 좋게 간질이는 빗방울은 장난꾸러기 같다. 그런가 하면 시커먼 먹구름이 하루 종일 해를 가린 채 쏟아지는 강한 폭우는 갑자기 무섭고 불안한 마음이 들게 만든다. 우리의 예민해진 감성도 비가 어떻게 오느냐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다.

 

 작곡가들 중에도 비를 좋아했던 인물이 참 많았다. 아마도 곡을 쓰면서 인간의 마음이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비가 내리는 모습이나 비와 함께 흥미진진하게 변하는 하늘의 모습, 비가 내리고 난 뒤의 풍경 등을 음악으로 생생하게 바꿔놓은 다양한 작품을 살펴보려 한다.

 

 먼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비발디 작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사계<여름>이다. 사계는 제목 그대로 사계절 자연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게 들어있는데, 작품마다 악보와 함께 시가 쓰여 있다. 그중 여름의 1악장은 타는 듯한 열기에 사람과 동물 모두가 지친 가운데 갑작스레 몰아친 소나기를 맞는 것으로 끝난다. 느린 2악장은 파리와 모기가 날아다니는 가운데 간간이 천둥이 치는 모습이고 3악장에서 본격적인 폭풍우가 다가온다. 프레스토(매우 빠르게)라는 속도 지시어가 붙어 있는 3악장은 쉬지 않고 연주하는 음표들이 쉴 새 없이 내리는 빗줄기와 휘몰아치는 강한 바람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거친 악센트들은 번개 치는 모습을, 곡의 마지막에 더욱 격렬해지는 음표들은 비가 우박으로 바뀌어 내리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3악장 악보에 있는 시는 다음과 같다.

 

 하늘을 두 쪽으로 가르는 번개

 그 뒤에 우박이 쏟아진다

 잘 익어가던 곡식이 회초리를 맞은 듯 쓰러진다

 

 오페라의 서곡 중에도 비바람을 묘사한 곡이 있는데 바로 조아키노 로시니가 작곡한 윌리엄 텔Guillaume Tell 서곡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 윌리엄 텔은 활을 잘 쏘기로 유명한 스위스의 전설적인 영웅이다. 오스트리아의 압제에서 독립하는데 공을 세운 명궁 윌리엄 텔의 이야기는 희가극으로 성공을 거둔 로시니의 작품 중에서 드물게 발표된 심각한 오페라다. 그래서인지 오페라 자체는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앞에 연주되는 서곡은 인기가 많다. 서곡은 모두 네 부분으로 나뉘는데 그중 두 번째 부분이 <폭풍우>. 아름답고 평화로운 스위스의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갑자기 들려오는 천둥 번개와 강한 비바람은 오스트리아군의 갑작스러운 침공을 비유한 것이기도 하다. 저음악기들과 팀파니가 우르릉거리는 천둥을 묘사하고 플루트의 음표들은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방울을, 트롬본을 포함한 금관악기들은 모든 것을 무너뜨린 듯한 폭풍의 모습을 표현한다. 다행히 혼란스러움은 곧 지나가고 다시 평화롭게 갠 하늘에서 아름다운 새소리가 울리고 곧이어 멀리서 들려오는 유명한 스위스 병사의 행진곡이 시작된다. 서곡은 명랑하고 흥겨운 이 행진곡으로 신나게 마무리된다.

 

 피아노곡으로는 쇼팽이 만든 24개 전주곡 중 15번째 곡 <빗방울>이 잘 알려져 있다. 앞의 두 곡이 무서운 폭풍과 비바람이었다면 이 곡은 조용히 내리는 비와 처마 끝에 낙수소리를 그렸다. 전반적으로 조금 느리게 연주되는데 왼손과 오른손이 하나의 음을 일정한 속도로 계속해서 연주하는 모습이 똑똑 소리를 내며 일정하게 떨어지는 빗방울을 묘사하고 있다. 그 위에 연주되는 서정적인 선율도 무척 아름답다. 중간 부분으로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조금 어두워진다. 이 부분은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 작곡가 쇼팽이 꾸는 어지러운 꿈처럼 느껴지는데 잠을 깊이 든 게 아니어서인지 낙수 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한 차례 격정적인 장면이 지나간 후 빗소리는 다시 부드럽게 변하고 작품은 달콤한 휴식을 취하듯 끝난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는 물과 관련된 피아노곡을 많이 썼다. 1903년 쓰인 모음곡 판화Estampes 중 세 번째 곡의 제목은 <비오는 정원> Jardins sous la Pue이다. 가랑비처럼 아주 작은 빗방울들이 내려오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곡은 기교적으로 빠른 손놀림이 필요한 연습곡에 가깝다. 비가 내렸다가 멈추고 다시 햇살이 비춰 나뭇가지들 사이에 있던 빗물이 말라가는 모습까지 매우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드뷔시는 이 곡을 쓰면서 어린 시절 빗속을 뛰어다니며 놀던 추억을 되살렸다고 한다. 그래서 프랑스 어린이들이 자주 부르는 두 곡의 멜로디를 작품에 삽입했다. 음악 속에서 내리는 빗줄기는 아주 신나고 들뜬 느낌으로 다가오고 투명한 햇빛이 쨍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밝게 끝맺는다.

 

 저마다 분위기가 다른 작품들을 들어보니 작곡가들의 상상력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내리는 비와 날씨보다 더 복잡 미묘하고 다양했던 것 같다. 각자의 상상력을 발휘해 지금까지 없었던 자신만의 멜로디를 내리는 빗줄기에 맞춰 만들어보면 어떨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스테파노가 부르는 나폴리 민요 

 

 

 “저 사람은 태어날 때 신이 그의 목구멍에 키스를 해주었을 것이다.” 누가 했던 말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는 분명하다. 이탈리아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Luciano Pavarotti, 1995-2007). 맑고 청명한 음색, 날카로우면서도 오묘한 음상과 찬란하게 빛나는 고음까지, 가수로서 모든 것을 갖추고 태어난 것이 분명했지만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저도 좋은 소리를 내고 안정되게 노래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래 고생했고 선생님들로부터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작은 극장에서 노래하던 무명 시절도 있었죠. 저의 세대 전후로 테너 가수 중 이런 시련 없이 바로 성공을 거둔 인물은 단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누구를 말하는 걸까?

 “주세페 디 스테파노입니다. 그는 레조 에밀리아의 작은 극장에서 노래한 후 단박에 스타가 됐죠. 그의 노래를 들어보신 분이라면 왜 그랬는지 잘 아시겠죠?”

 

 파바로티는 타고난 미성, 전형 적인 이탈리아 테너의 기질을 지녔던 불세출의 가수 주세페 디 스테파노(Giuseppe di Stefano, 1921-2008)를 언급했다.

 

 스테파노의 명성과 인기를 모르는 애호가들은 없다. 자연스러운 발성과 부드러운 리릭 테너1yric tenor(서정적인 노래를 부르기에 적합한 테너)의 이상적인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그의 연주와 녹음에는 최고의 소프라노였던 마리아 칼라스가 자리하고 있었기에 이런 금자탑이 가능했다고도 생각된다. 두 사람의 콤비는 오페라 역사상 영원히 기억될 사건이다.

  

 명징하다 못해 듣는 이들의 귀를 찌를 듯 선명한 음상과 밝은 빛깔의 미성 여유로 가득 찬 고음의 화려함은 결코 복제 불가능한 경지다. 거기에 성악가가 가장 구사하기 힘들다는 메사 디 보체 messa di voce (한 음을 작게 시작했다가 점점 커지게 민들고 다시 작게 끝나는 기법)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모습까지.

 

 시칠리아 태생인 이 불세출의 테너는 그다지 절제하지 않는 인생을 살았음에도 여든여섯 살까지 장수를 누렸다. 말년에 아프리카 케냐에 거주했는데 괴한의 침입으로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더 오래 생존했을 것이다. 무대에서 은퇴한 후에도 방송 출연과 마스터클래스 등으로 바쁜 일정을 이어갔다. 그는 평소 노래는 누구에게 배울 수도 가르칠 수도 없는 것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스스로 자신의 몸에 맞는 기술을 터득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도움을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인데, 오직 자신의 느낌대로 노래하다 떠난 멋진 테너의 생각답다.

 

 교과서, 영화는 물론 팝송이나 가요, 동요로 편곡된 작품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노래 나폴리 민요(나폴레타나)는 엄밀히 구분해 작곡가 없이 전해 내려오는 자연 민요가 아니라 작곡가가 존재하는 창작민요다. 원래는 중세시대 나폴리 피에디그로타 제전에 쓰이는 종교적 의미를 담은 노래들로 시작되었으며 당시 이 지방 어부들이 노래를 만들어 마리아에게 바친 것이 계기가 되었다. 19세기 초부터 창작 노래경연이 시작되었고 한때 중단되었다가 1953나폴리 칸초네 축제가 열려 현재까지 산레모 가요제와 함께 가장 유명한 이탈리아의 노래축제로 남아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노래들은 이 축제에서 처음 소개된 것들이 많다.

 

 오 나의 태양 O Sole Mio

 

 에두아르 도 디 카푸아(Eduardo di Capua, 1865-1917)1898년에 작곡한 이 노래는 아마도 가장 유명한 나폴리 가곡일 것이다. 조반니 카푸로(Giovanni Capurro, 1859-1920)가 가사를 썼으며, 나폴리 지역의 방언을 사용했다. 디 카푸아는 나폴리에서 해마다 개최되는 피에타그로타 음악제에 출품하기 위해 이 작품을 작곡했는데 나폴리 칸초네 양식을 정확히 따른 곡이다.

 

 오 맑은 햇빛 너 참 아름답다

 폭풍우 지난 후 나 더욱 찬란해

 시원한 바람 솔솔 불어올 때

 하늘의 밝은 해는 비치인다

 

 김주영 / ‘클래식 수업중에서

 

  < 참고자료 >

 

 ‘마리아 칼라스의 단짝’ 테너 디 스테파노 타계

 

 

‘마리아 칼라스의 단짝’ 테너 디 스테파노 타계
세기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단짝이자 20세기 최고의 테너 중 한명으로 평가받는 주세페 디 스테파노가 3일 별세했다. 86살. 디 스테파노는 지난 2004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 강도에게 입은 부상으로 인해 식물인간 상태에 있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태어난 디 스테파노는 1946년 오페라 ‘마농’의 그리외 역으로 데뷔했으며, 이후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 등 세계 유수의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했다. 특히 1970년대 초반까지 마리아 칼라스와 ‘명콤비’를 이뤄 세계 오페라 무대를 누볐으며 여러 장의 기념비적인 음반을 남겼다. (2008.3.5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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