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욕의 상관관계
적절한 순간에 찰진 욕을 구사하는 여자들을 향한 동경이 있다. 살다 보면 가끔 욕이 아닌 다른 언어로는 설명할 수도, 그 느낌을 살릴 수도 없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그럴 때 누군가 던지는 찰기 도는 다부진 욕 한 방이 가져오는 카타르시스는 화려하고 청량했다.
동경의 이면에는 반감도 섞여 있었다. 무례하거나 부적절하게 욕을 쓰는 사람은 나도 싫지만, 표현으로서의 욕까지 묶어서, 특히 여자가 욕하는 걸 두고 '천박하다' '저급하다'고 말하는 일부 '고상한' 사람들을 향한 반감. 일단 사람을 놓고 등급을 따지는 식의 태도는 뭐가 됐든 별로다. 작은 부분 하나를 가지고 전체를 판단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도 별로다. '맞춤법이 사람의 품격을 좌우한다' ‘구두를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알 수 있다' 같은 말들도 그래서 싫어한다. 맞춤법 중요하지. 근데 그걸로 사람의 품격을 매긴다고? 맞춤법 잘 지키는 사람이 틀리는 사람에 비해 격이 높아? 정말? 그 잘난 구두 하나로 누구의 인생을 판단한단 말이야? 남의 구두를 보고 남의 인생을 판단하는 사람의 협소한 인생 정도는 판단할 수도 있겠다. 그런 점에서 내 눈에는 욕하는 여자에게 쏟아지는 곱지 않은 시선도 곱지 않았다.
이렇게 동경과 반감이 나를 끊임없이 부추겼음에도 욕을 썩 잘하지 못했던 나 자신에게 느끼는 자괴감 또한 있었다. 여기서 욕을 하면 딱이겠다 싶은 순간은 잘 포착하는데 막상 욕을 뱉으려고 하면 마음속 여러 방어기제들이 철컥철컥 입을 가로막았다. 이 모든 걸 다 이겨 내고 어쩌다 성공해도 잘하려는 부담에 자꾸 혀에 인위적인 힘이 들어가 욕을 망쳤다. 세상에는 뭘 하든 어딘가 어색한 사람이 있는데, 욕만 하면 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나에게는 욕을 무척 맛깔나게 하는 여고 친구들이 있었다. 욕을 향한 나의 동경도 따지고 보면 이 친구들 때문에 생긴 것이다. 다들 술도 참 잘 마셨다. 그들이 쏟아내는 무수한 재기 넘치고 다채로운 욕 중에서도 욕설계의 클래식인 '씨발'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이때만 해도 '씨발'의 어원에 여성혐오적 의미가 담겨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들은 그 한 단어에 다양한 톤과 강세와 리듬을 넣어 격정, 장난, 조롱, 냉소, 분노, 퇴폐 등 온갖 감정을 담아낼 수 있었고, 그 감정을 이끌어낼 수도 있었다. 그들과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온 날은 취기에 신이 나서 혼자 연습한 적도 많았다.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프로들의 '씨 '에는 바람 소리 같은 공기 마찰음이 다량 섞여 금속성과 야성을 동시에 띠는데, 내가 뱉은 '씨'는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김혼비 씨~"라고 부를 때의 단정하고 딱 떨어지는, 지나치게 육성만 가지런한 '씨'였다. '발' 쪽은 더 가관이었다. 프로들은 ‘파'와 '바' 사이의 어떤 음, 약간 모던한 씨발의 경우 '바아알'에 가까운 모호한 굴림음을 내기도 하던데(단, 이건 단독으로 쓰일 때에 해당하는 이야기고, 써발이 형용사로 명사 '놈'을 수식할 때는 발음을 자음동화 비슷하게 연음해서 발음한다), 나의 '발'은 한국어 듣기 시험 문제로 내보내면 100명 중 96명은 논란의 여지없이 '발'로 적어낼 것이 분명한, 군더더기 하나 없는 '발'이었다.
단정한 '씨'와 깔끔한 '발'의 결합. 그것은 욕이 아니었다. 치욕이었다. 술이 확 깼다.
"이, 씨발, 빨리 안 가르쳐줘? .. 어? 야, 야, 이번 건 좀 괜찮았지? 그치?"
"아까보다 낫긴 한데... "
내가 진심으로 열의를 갖고 조르니 P도 슬슬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내가 '씨발'을 한 번할 때마다 듣고 뭐가 잘못됐는지 교정해주는 식이었다. "일단 한 번 해봐." "또 해봐." "음. 내가 봤을 때 네가 '씨'하고 '발' 사이를 잘 처리하지 못하는 것 같아. 씨를 약간 길게 발음해야 돼. '씨'가 아니라 '씨이-' 이런 느낌으로, 중간에 낀 '이'에 톤을 넣어봐." “야, 그건 너무 길게 끌었잖아." "음, 좀 낫긴 하데 너무 부자연스럽잖아." “그건 그냥 길게 끌었을 뿐이지 감정이 없잖아. 아, 진짜! 씨이발. 이렇게 못 하겠어?!"
P는 꽤 근성이 있는 욕 선생이었다. 청하 두 병을 더 비울 때까지 우리들의 진지한 욕 레슨은 이어졌고, 슬슬 둘 다 혀가 풀리기 시작할 무렵, P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야, 그 정도면 됐어. 사실 욕이란 게 연습한다고 늘겠냐, 술 마신다고 늘겠냐. 그냥 사는 게 씨발스러우면 돼. 그러면 저절로 잘돼."
이상하게도 이 말과 이 장면은 오랜 세월 내 기억 속에 깊이 박히게 된다. 말을 맺고 느릿느릿 청하를 따르는 P의 모습이 소스라치게 쓸쓸해 보여서 굳이 병을 빼앗아 내가 따랐다. 그랬다. P도, 생각해보면 Y도, L도 저마다의 문제들로 한참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게 그들의 욕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그래서 마시는 술들은 욕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랬다. 그 시기에는 모두가 암담했다. 모든 게 술처럼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가지지가 않았다.
아예 포기하고 살았던 욕과 다시 인연을 맺은 것은 몇 년 후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찰서에 오래 머무른 날이었다. 몇 달을 더럽게 굴어오던 상사와 회식 비슷한 자리에서 크게 싸우다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서까지 갔지만 그 성추행범 새끼를 구치소에 처넣지도 못하고 일자리만 날렸다. 배신감(참고인으로 따라갔던 두 명이 말했다. 못 봤고 못 들었다고, 그중 한 명은 예전에 상사가 나를 자기 차에 억지로 태우려고 할 때 말려준 사람이었는데도)과 모멸감(경찰은 많은 사람 중에 왜 아가씨에게만 그랬겠냐고, 평소 품행이 어땠는지 캐물었다. 그동안의 문자까지 다 보여줬는데도)과 무력감(성추행범 새끼가 말했다. 넌 이 업계에서 끝이야. 끝이어야 할 사람은 그인데도)에 치를 떨면서, 아 진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지, 막막한 기분으로 차마 집으로도 못 가고 친구 자취집을 향해 걸어가던 새벽, 갑자기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씨발.
듣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바로 내 친구들의 욕이다. 제대로다. 약간 흥분한 마음으로 연달아 뱉어보는데 깜짝 놀랄 만큼 완벽한 욕들이 내 입에서 계속 나왔다. 잠깐이라도 멈추면 이 감각을 잃을세라 걸어가면서 계속 입을 움직였다. 씨발, 씨발, 써이발!
한참 욕을 하다 보니 조금 후련해지면서도 더 슬퍼졌다. 써발이 욕이 아니라 눈물 같았다. 목 놓아 울고 싶은 유의 슬픔이라기보다 뭔가 매우 크고 중요한 어떤 것이 훼손된 것 같은 슬픔이었다. 갑자기 P가 엄청나게 보고 싶었다. P와 욕 레슨을 주고받으며 청하를 마셨던 술집이 떠올랐다. P가 쓸쓸하게 했던 그 말이 떠올랐다. 한국에 있어봤자 고생할 일만 널린 게 지긋지긋하다고 지긋지긋하게 고생해서 번 돈으로 캐나다로 넘어가 호텔에 취직한 P에게 당장 전화를 걸고 싶었다. 나의 완성된 욕을, 눈물을 들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 일자리가 날아갔는데 비싼 국제전화를 걸 수는 없었다. 어우, 야, 네 말이 맞다. 다 맞다, 진짜.
김혼비/ ‘아무튼, 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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