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나의 운세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행복
새로 시작된 2020년은 ‘열어 보지 않은’ 상자와 같습니다. 살아 보기 전엔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알 수 없음은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100% 믿지 않더라도 신년 운세가 궁금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빨간색으로 이름 쓰기
그러나 뇌과학자인 정재승 교수(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는 "비합리적인 삶은 재미로 보는 오늘의 운세에서 시작된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도전을 제안했습니다. 백지에 빨간 펜으로 자신의 이름을 네 번 쓰면 됩니다. 많은 분이 머뭇거리시네요. 찜찜하신가 봅니다. 언짢으신 것도 같고요. 하지만 '빨간색으로 이름 쓰기'를 '죽음'과 연관하지 말고 미신으로 여긴다면 평정심을 잃을 이유가 없습니다.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는 생각도 그냥 버리면 됩니다. '혹시 위험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을 뚫고 들어와 근거 없는 금기사항으로 우리 삶을 좌지우지하는 게 바로 '미신'이니까요.
말이야? 방귀야?
그 밖에도 미역국을 먹어서 시험에 떨어지고, 다리를 떨어 복이 달아난다는 말처럼 원인과 결과 사이에 눈곱만큼의 합리성도 없지만 사람들 사이에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믿음을 미신이라고 합니다. 심리학지들은 '착각적 인관관계'라고도 하지요. 어린아이가 들으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게 말이야? 방귀야?"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마음이 한없이 약해졌을 때는 근거 없는 속설이라 하더라도 믿고 싶고, 믿을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성격이나 심리적인 특징을 자신만의 것으로 여기고(포러효과 또는 바넘효과) 자신의 믿음이나 신념, 판단 등을 지지하는 말이나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사고(확증편향)하기 때문에 점쟁이의 말이나 신년 운세에 크게 감탄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절면 코걸이인 말을 듣고 싶은 대로 듣고 해석한 것이니까요.
행복의 크기를 좌우하는 기대감
생각해 보면 새해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불안한 마음도 잘 살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미리 다 알고 대비해서 100점짜리를 200점짜리로 만들고 싶은데 살아 보지 않고는 알 방법이 없으니 점집이나 신년 운세 사이트를 기웃거리며 작은 위험에도 민감하게 대응하고 우연한 현상에도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래를 미리 알면 행복할까요? 정 교수는 아니라고 답합니다. 5월에 행복한 일이 생길 것을 미리 안다면 기대감이 떨어져 덜 기쁠 것이고 10월에 고통이 올 것을 미리 안다면 1월부터 아플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년 운세를 속속들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2020년을 더 행복하게 즐기는 방법입니다. 밥 지을 때 김이 새면 밥이 설익고, 사이다가 김이 빠지면 맛도 향도 밍밍해지는 것처럼 인생도 때가 돼서 열려야 더 흥미진진합니다.
글 / 이수인 wood74@geps.or.kr
참고 자료 / <열두발자국>, 정재승 지음, 2018년 어크로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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