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노래(가족)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

송담(松潭) 2019. 5. 31. 14:30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

 

 

 

  피터 오브차로프(Peter Ovtcharov)

 

 

 

 나의 어린 시절에는 공부보다는 노는 것이 주였다. 학교숙제도 많지 않았고 사설학원도 없어서 학교 외에서는 음악 미술 등 예능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내가 음치인 것은 유전적 요인도 있겠지만 어려서부터 음악을 접했더라면 달라질 수 있었는지 모른다. 클래식을 좀 알아보려고 하는 60대 후반에서야 비로소 음악을 조금 일찍 접했더라면, 학교에서 음악수업이 더 많았었더라면, 아들을 어렸을 때 교양으로 피아노를 가르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다.

 

 작년에 처음 시청 문화센터에서 운영하는 클래식 강좌를 접하고 나서 계속 진도를 나가지 못해 아직은 왕초보 상태이지만 연주악기 중에는 피아노가 가장 듣기 좋다. 바이올린이나 첼로, 클라리넷, 오보에 등 여러 악기들도 좋지만 다른 악기들의 매력에 빠질만한 수준이 못 된다. 흔히 소프라노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천상의 소리라고 하는데 많은 악기 중에 피아노가 바로 천상의 소리이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연주자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건반 위의 하얀 손가락은 깨끗하고 부드럽다. 손가락의 놀림은 잔잔하게 흐르는 서정의 꿈길을 향하기도 하고 때론 거친 파도나 천둥처럼 폭풍을 몰고 오기도 한다전봉건(全鳳健, 1928~1988)은 '피아노'라는 시에서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면서 피아노 소리를 물고기가 쏟아지는 것처럼 생동감 넘치게 표현했다. 나는 어느날 피아노의 맑고 투명하고 탱글탱글한 울림이 뇌를 자극하여 우리 같이 나이든 사람들의 뇌 건강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때는 피아노 소리의 파장이 가슴을 통해 몸을 전율하기 보다는 머리 속으로 들어와 파장을 일으키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제는 가족끼리 음악을 하는 집안이 무척이나 부럽다. 클래식을 만나지 못했던 시절에 음악선생인 조카가 우리 집에 놀러와 집에 있는 전자오르간으로 나의 버전에 맞게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들려준 적이 있는데 그때의 선율이 참 아름답게 들렸고 그런 기억 때문인지 대중가요도 피아노 반주가 좋다. 앞으로 아들이 결혼하면 며느리에게 태교음악으로 피아노곡을 선물할 것이다. 가끔 우리집 거실에 피아노의 선율이 흐르면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고상해졌지?”하며 웃음 짓고 마치 내가 오래전부터 고전음악을 들었던 고상한 사람처럼 우쭐대기도 한다.

 

 피아노 소리는 무엇보다도 그 서정성에 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미국 피아니스트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 1903~1989)가 슈만의 토로이메라이를 연주하는 동영상을 보면 한 노인 관객의 볼에 흐르는 눈물이 클로즈업 된다. 모두들 숨죽이고 피아노의 선율에 깊이 빠져있는데 노인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방울은 음악이 인간의 가슴을 파고드는 최고의 감성매체임을 보여준다. 나는 클래식음악을 감상할 때 주로 유튜브의 동영상을 TV 화면으로 보는데 피아노연주를 보면서 가끔 눈을 감고 듣기도 한다. 이 순간만은 무아지경은 아닐지라도 마음이 순해지고 정서가 안정된다. 이 때가 바로 명상의 시간이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하루 중 최고의 시간이다

 

 

요즘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12악장을 피터 오브차로프(Peter Ovtcharov, 러시아, 81년생)가 연주하는 동영상으로 자주 본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1은 쇼팽의 젊은 시절 짝사랑하던 여인을 향한 마음과 고향 바르샤바의 마지막 추억이 담긴 명곡이며 열아홉 살 쇼팽은 이 협주곡을 작곡할 당시 첫사랑에 빠졌고 고백하지 못한 짝사랑은 허무하게 끝났지만 당시 쇼팽의 강렬하며 아름다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평하고 있다. 쇼팽은 이 곡을 낭만적이고 조용하며, 얼마간 우울한 기분으로 썼다"고 한다.

 

 나는 이곡을 들으며 깊은 감상에 젖는데 2악장의 초반부에 나온 주선율(?)이 가장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음악을 듣고 있으면 집사람에 대한 애틋한 생각이 든다집사람의 건강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그렇다. 세월이 흐를수록 집사람에 대한 연민이 깊어지는 것은 집사람이 아픈 데에 항상 내가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간 나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가 켜켜이 쌓인 결과이다. 어느 날 집사람의 하얗게 센 머리칼을 보면서 서글퍼졌는데 지금은 몸이 활발하지 못하니 더욱 안쓰럽다. 나 역시 이곡을 들으면 쇼팽처럼 낭만적이고 조용하며, 얼마간 우울하다.

 

(2019.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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