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여기가 좋아

송담(松潭) 2019. 1. 15. 12:34

 

여기가 좋아

 

  요양병원 노인 일러스트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그는 지난날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 빨간 마후라의 사나이였다. 그는 한참 때 소매에 금테 넉 줄을 뛰고 세계를 주름잡고 휘날리던 대한항공 초창기의 기장이었다. 그는 군 동기생이다. 그가 입원하고 있는 요양병원을 같은 동기생 친구와 함께 방문했다. 그는 강원도 감자바위답게 마음이 구수했다.

 

 그는 슬하에 딸 넷에 아들 하나를 두었다. 그런데 10여 년 전에 아내와 사별하고 딸네 집에 얹혀서 살았다. 아들은 미국 유학 가서 공부 마치고 거기서 눌러 살고 있다. 근데 얼마 전에 요양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는 이재(理財)에 어두울 뿐 아니라 아내가 살림을 꾸려가는 편이었는데 남겨 놓고 간 것이 없었다.

 

 현관까지 따라 나와 악수를 하면서 인사를 할 때 그의 눈빛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아까 커피집에서 나누던 대화가 우리의 마음과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딸하고 같이 지내는 것이 좋았나? 여기 요양병원에 있는 것이 좋으냐?” 묻는 말에 그는 시선을 떨구고 머쓱해했다. 잠깐 생각하더니 들었던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흘러가는 가을 하늘의 뭉게구름이 훤히 올려다 보이는 큰 창을 바라보며 가녀린 음성으로 여기가 좋아나 자신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찼다.

 

 나도 아내를 삼 년 전에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길을 떠나보내고 딸하고 같이 사는데, 그의 말이 남의 이야기같이 들리지 않았다. 이것이 노년에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과정인가. 현대판 고려장인가. 지게와 승용차의 차이뿐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미어졌다. 오늘의 그의 처지가 곧 다가올 앞에 닥칠지도 모르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에게 지난날 딸 자랑을 그렇게 의연하게 하던 그인데, 그런 딸네 집보다 요양병원이 좋다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내가 잘 아는 효성이 지극한 한 여성이 있는데, 입원하고 있는 자기 아버지를 매 주말이면 음식을 해서 찾아뵙는데 그녀의 말이 아버지의 몸의 흘게가 풀리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저러다간 영영 못 일어나시겠구나.” 딸은 눈시울을 붉히다가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저리 힘든 몸으로 오래 사시면 어쩌나하는 생각을 하고 나서 가슴이 아팠다고 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와 내 딸이 겪을 이야기처럼 들렸다.

 

 허리가 아프다 싶으면 무릎 관절이 쑤셔댔고, 몸이 괜찮다 싶으면 자꾸 기억이 흐릿해져 간다. 하루가 다르게 몸의 흘게가 풀려가기 시작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병원 담당 의사의 말이 심부전증으로 수술을 두 번 받았는데 이제는 간단한 수술은 안 되고 대수술을 해야 한다고, 급하다고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세 번이나 간곡하게 말했다. 올 때가 왔구나, 나는 살 만큼 살았다(88). 오래 사는 것만 좋은 것이 아니다. 잘 살아야한다. 더 살아서 꼭해야 할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수술까지 해서 골골대며 오래 살면서 병석에 누어서 자녀들의 마음에, “저리 힘든 몸으로 오래 사시면 어쩌나.”라고 생각하게 하고, 그 생각 때문에 가슴을 아리게 하는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다.

 

 아침에 아무런 기척이 없어 내 방문을 열었을 때 책상 앞 의자에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놓치고 눈을 감고 자는 듯이 고개를 떨구고 반응이 없는 나를 껴안고,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일하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항상 노래처럼 하시더니...”

라고 자녀들이 말했으면 좋겠다. 자녀들이 그렇게 추억하는 아버지로 남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니 죽음이 멀리서 다가오는 어두운 그림자가 아니라, 내 옆에 같이 지내는 친구가 되었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지만 어떻게 더 열심히 살 것인가 의논하는.

 

 결국은 어떻게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이냐 하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답이다. 헤어질 때 현관에서 우리에게 손을 흔들던 헐렁하게 무너져 내린 그의 모습이, 지난날 대한항공 기장의 정장을 하고 승객들의 시선을 받으며 오대양을 누비며 휘날리던 젊었을 때의 얼굴과 오버랩이 되어 떠올랐다. 날씨가 풀리면 찾아가자고 그때 같이 갔던 친구에게 전화했다.

 

 김창석 / ‘키움수필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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