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주책 떠는 남자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말은 여자들이 모이면 요란스럽다는 얘기다. 그러면 남자 셋이 모이면 어떨까? 남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이야기를 하다보면 여자, 성(性, sex)에 관한 얘기가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젊은이들부터 늙은 노인들까지 마찬가지다. 갑자기 서울 파고다공원에 앉아 있는 쓸쓸한 노인의 머릿속에도 여자생각이 깃들어있는지 궁금해진다. “그 나이에 아직도... 그것을 갈망하고 있을까?”
어느 날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 주인아줌마와 여자 얘길 나누었는데 속없이 “우리 둘은 아직까지 여자 친구가 없다”고 운을 띄었다. 예전에 이런 말을 하면 대부분 다른 주인장들은 “거짓말 같네요. 둘 다 애인 있게 생겼그마”하는 소리를 주로 들었다. 그런데 이 분은 무슨 관상쟁이처럼 우리를 힐끗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여자들한테 돈 안 썼그마!”
“맞다!” 우리는 무릎을 쳤다. 처음 들어 본 명답 중의 명답이었다. 여자의 미모는 권력이고 그 권력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는 바로 돈이다. 우리처럼 젊음의 싱싱함이 사라지고 늙어버린 외모로는 감언이설에 속아 줄 여자는 아무도 없다. 술자리에서 여자를 안주로 삼지만 아무리 씹어도 입만 아프고 영양가 없는 한심한 우리다. 여자들은 우리를 향해 말할 것이다. “정신 좀 차리고 헛소리 그만 하이소! 이 속없는 영감탱이들아.”
아니, 그런데 술집 바로 옆자리에서 술을 마시면서 남자들이 모여 하는 얘기들도 여자 이야기였다. 한 사람이 하소연하듯 “요즘, 힘이 빠져서 나도 이제 다 삭았어. 옛날이 좋았지.”하자, 옆에 있는 친구가 “그건 늙었다고 자주 안 써서 그러는 거야. ‘용불용설(用不用說)’이라고 사용하면 할수록 좋아지는 것이야. 남자의 그것도 자주 사용해야 힘을 쓸 수 있는 거야”
그런데 또 다른 남자는 이렇게 대꾸했다. “아니지. 니네들 ‘지랄총량의 법칙’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 남자가 평생 쓸 수 있는 정력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는 거야. 젊을 때 많이 써버린 사람은 재고가 바닥이 나버려.”
옆자리에서는 ‘용불용설(用不用說)’의 원칙과 ‘지랄총량의 법칙’으로 견해가 갈리고 있었다.
계속해서 그들의 대화는 여자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한 친구가 “너는 젊었을 때 문제가 많았지. 겁 없이 짝 있는 여자를 만나기도 하고. 나는 겁이 나서가 아니라 아무 죄 없는 그녀의 짝궁에게 죄가 될 것 같아. 그게 더 부담스러워.”
듣고 있던 친구가 “우와! 신선(神仙)났네. 고상하구먼. 그런데 말이야, 나는 여자들에게 땀흘려 봉사(奉仕)했던 거라고.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어. 그리고 뭘 짝궁까지 걱정해, ‘죽 떠먹은 자리’는 표시가 나지 안 찮아.” 오라! ‘죽 떠먹는 자리는 표시가 나지 않는다!’ 우리 말 중에 이렇게 플레이보이들을 지원하는 속담이 있는 줄 몰랐다.
남자들은 늙어가면서까지 왜 이렇게 여자를 밝히는 것일까. 남자는 여자보다 더 동물적이도록 유전자에 차이가 있어서 그런 것일까. 하기야 남자들의 끈질긴 성적 갈망이 없다면 오늘날 이렇게 인류가 번성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세상의 많은 악은 무절제한 성으로부터 기인한다. 사이코패스, 성도착증, 흉악범 등 모두가 성적 도발을 통제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성을 자제하지 못하면 가정은 물론 인생자체가 순탄하지 못하고 꼬인다.
유행가 가사에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이제 우리는 ‘낭만적 사랑’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 이미 한참 지났다. 다음에 또 만날 일도 없다. 스릴넘치는 낭만의 의자는 젊은이들이 차지해야 할 자리이고 우리들은 그것을 빈 의자로 남겨두어야 한다. 사랑과 이성에 대한 갈망은 그저 추억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말한다. “친구야, 우리 허튼 소리 그만하고 우리 옆에 귀중한 보물을 잘 간수하자.”
잠시 생 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이런 말을 들어보자.
어린 왕자는 사막에서 여우를 만났습니다.
“안녕! 나하고 놀지 않겠니?”
여우가 말했습니다.
“나는 길들여지지 않아서, 너하고 놀 수 가 없어.”
“그래? 길들여진다는 게 뭐니?”
“그것은 관계를 맺는 거야.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이가 되는 거지.”
이것은 인간관계에 있어 ‘관계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지만 한편으로 ‘관계는 길들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랑도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서로에게 잘 길들어진 관계가 부부인만큼 서로 노력하면 사랑의 꽃은 시들지 않을 것인데 우리는 빛나는 보물을 갖고도 그것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왔다. 우리가 추하게 늙어가지 않으려면 술 마시는 자리의 화제도 이제는 좀 고상하게 하자.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기 위해서다. 아듀~ 얼빠진 생각, 낭만적 사랑!
(201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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