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상식. 심리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송담(松潭) 2018. 8. 7. 17:46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기억력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울릭 나이서(Ulric Neisser)라는 사회 심리학자가 했던 실험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1986년에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지구 밖으로 발사됐다가 폭발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챌린저호에는 당시 고등학교 교사였던 민간인 우주인이 타게 돼 함께 훈련받는 모습이 뉴스에 종종 소개되어 더욱 주목을 받았죠. 그런데 발사되던 날 우주로 날아오른 지 73초 만에 폭발하는 모습을 온 국민이 TV에서 생중계로 보게 된 겁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굉장히 충격 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나이서 교수는 챌린저호가 폭발한 날, 자기 수업을 듣는 106명의 학생에게 이 불행한 사건을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들었는지 물어봤어요.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같이 있다가 이 소식을 접했는지를 종이에 상세히 쓰게 했지요. 그러고 나서 2년 반 후, 그 학생들을 자신의 연구실로 다시 불렀어요. 그리고 면담을 한 거죠. 그 면담에서 나이서 교수는 학생들에게 "2년 반 전 챌린저호가 폭발했을 때 당신은 그 소식을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들었나요?"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학생들의 25퍼센트가 완전히 다른 기억을 얘기하더라는 거예요. 엉뚱한 곳에서 자기가 그걸 들었다고 말하더라는 거지요 게다가 나머지 학생들의 대다수도 세부사항이 마구 틀리더라는 거예요. 겨우 10퍼센트도 안 되는 학생들만이 그때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이 연구 결과는 아무리 인상적인 사건이라고 해도 2년 반이 지나면 그것을 정확히 기억할 가능성은 10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우리의 기억은 쉽게 왜곡되고 과장되고 지워지죠.

 

 그런데 이 연구에서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제부터입니다. 나이서 교수는 잘못된 기억을 얘기 했던 90퍼센트의 학생들에게 그들이 2년 반 전에 쓴 종이를 보여주면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래 녹화했습니다. 그들은 과연 진실과 대면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몇몇 학생들은 순순히 자신의 기억이 잘못됐다는 걸 인정했습니다. “, 제가 이렇게 썼군요. 이걸 보니 생각이 나네요. 맞습니다. 제 기억이 틀렸습니다.”

 

 그런데 학생들 중 상당수가 "교수님, 글씨체를 보니 제가 쓴 글이 맞고 교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알겠는데, 근데 이거 아니에요! 제 머릿속에 있는 게 맞아요! 제가 방금 말씀드린 게 사실입니다."라고 확신하더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거부할 수 없는 증거를 내밀어도 지금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것만을 확신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는 거예요. 확신은 내가 그것을 어디에서 들었느냐,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뒷받침해줄 증거가 얼마나 되느냐로만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확신하는 성향이 서로 다르고 그것에 영향을 받는다는 겁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를 하다 보면 보수와 진보 진영의 다양한 의견들을 들을 수 있지요. 그중에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과도하게 확신하거나 지나친 강요를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히 정치나 종교 같은 주제에서 우리는 이런 성향을 자주 목도하게 되지요. 심지어 제가 애정을 갖고 있는 진보 영역의 사람들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에게 거슬리는 표현 중의 하나가 이번 선거는 상식 대 몰상식의 대결이다”, “개념투표하셨군요.” 같은 표현입니다. 저도 사회적 약자에 조금 더 많이 배려하려 하고, 인권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회적 안전망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믿기에 진보 진영에 좀 더 애정이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지나친 경쟁주의와 불평등은 창의적인 사회,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보 진영의 사람들이 "이건 상식 대 몰상식의 대결이다혹은 진보적인 인사를 뽑으면 깨어 있는 개념 시민이라고 얘기하는 건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굉장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저 사람이 저걸 믿는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나와 다른 의견과 미적 취향에 너그러워야 합니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한 확신을 재고하고 늘 회의하고 의심해보는 사람, 그래서 결국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들을 끊임없이 포용하고 들어보려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많아져야 합니다.

 

 정재승 / ‘열두 발자국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