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플까봐
한 소녀가 있습니다. 호기심이 많아서 알고 싶은 것도 말하고 싶은 것도 많았죠. 새로운 발견 앞에서 늘 가슴이 뛰는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소녀는 자신의 심장을 유리병 안에 넣어 가두게 됩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더 이상 마음을 쓰고 싶지 않았거든요. 상처받고 싶지 않아 스스로 웅크릴 때, 적당히 감당할 수 있는 상황 안에서만 맴돌 때, 불확실성을 피하고 익숙함이라는 보호막 뒤에 머물 때 우리에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마음이 아플까봐》는 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여느 유년기 아이들처럼 세상 모든 일에 대해 궁금해 하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늘어놓는 소녀입니다. 왜 바다에 퐁당 잠수해 들어가서 고래에게 “안녕"이라고 인사할 수 없는 건지, 왜 고래와 우리는 다른 폐를 가졌는지, 바다 끝에는 배가 추락하는 낭떠러지가 있는지 재잘재잘 질문합니다.
소녀는 바다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해변을 걷다 보면 호기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발견을 잔뜩 할 수 있었거든요. 할아버지는 그런 소녀를 너그럽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할아버지 입장에서 소녀의 호기심과 상상력은 경이로웠습니다. 할아버지가 별자리 보는 법을 가르쳐주려고 하면 소녀는 "몸에서 빛이 나는 슈퍼 꿀벌들이 날아다녀서 밤하늘이 반짝이는 거야”라고 응수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소녀는 늘 함께 바다를 걷고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왜 그럴까?,'누구일까?' 질문하길 멈추지 않던 소녀의 호기심은 할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한순간에 사라집니다.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보며 소녀는 거대한 상실감을 느낍니다. 슬픔을 감당하지 못해 자신의 빨갛고 동그란 마음을 빼서 유리병 안에 넣고 봉해버립니다. 또다시 그런 슬픔을 느끼게 될까 두려워서 아예 감정을 느끼지 못하도록 마음을 가두어버린 겁니다. 마음을 유리병에 넣은 소녀는 더 이상 밤하늘을 바라보며 꿈꾸지 않습니다. 바다를 봐도 아무 흥미가 없습니다. 의욕이 없고 무기력합니다.
마음을 가둬버린 유리병을 목에 걸고 소녀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성인이 되고 보니 유리병의 존재가 거추장스럽고 짐스럽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적어도 유리병 안에 있는 한 마음이 다칠 일은 없으니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럭저럭 일상을 살아갑니다. 한자리에 앉아 꿈쩍도 안 하면서 "세상 사는 게 원래 다 이렇지", "어쩌겠어”등 포기와 권태의 말을 쏟아내는 어른들처럼요.
책을 넘겨 보다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상처받기 싫어서 마음을 가둬버린 건 자신의 선택인데 왜 소녀는 행복하지 않은 걸까요? 아무도 없는 외딴 곳에서 외부의 자극을 차단한 채 혼자서 살수도 있을 텐데 왜 무기력에 빠진 걸까요? 김소연 시인은 책 <마음사전>에 이렇게 썼습니다.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는 차단되기 싫은 마음. 그것이 유리를 존재하게 한 것이다. 그러고 싶으면서도 그러기 싫은 마음의 미묘함을 유리처럼 간단하게 전달하고 있는 물체는 없는 것 같다. -(마음사전), 김소연 마음산책
상처받기는 싫지만 타인과의 교감을 완전히 차단하기 싫은 마음, <마음 아플까봐>의 작가 올리버 제퍼스Oliver Jeffers가 유리병이라는 상징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것도 이런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불확실성, 실망,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과 실망하거나 실패하느니 아예 기대하거나 시도하지 말자고 선택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유리병을 목에 걸고 무기력하게 변한 주인공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상처받을 가능성, 좌절할 가능성, 슬픈 일이 생길 가능성, 실연의 위험을 차단하면서 살 수는 있다고. 움츠리고 봉해놓고 살면 된다고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로 결정한 뒤 우리에게 돌아오는 건 굳어버린 머리와 말라버린 감수성이라고.
이제 <마음이 아플까봐>의 결론을 들여다볼까요. 무뎌진 채로 일상을 보내던 주인공은 어느 날 우연히 해변에서 놀고 있는 꼬마를 만납니다. 꼬마가 주인공에게 질문합니다.
“파도는 바닷속에서 코끼리가 발장구를 쳐서 생긴 거죠?"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신이 나서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 텐데, 그녀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합니다. 이 일로 주인공은 마음을 다시 꺼내보기로 결심하지만 망치로 두드리고 톱으로 썰고 높은 곳에서 힘껏 내리쳐도 유리병은 깨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도 절대 깨지지 않던 유리병이 테이블에서 데굴데굴 굴러 해변에서 놀고 있던 꼬마에게로 갑니다. 꼬마는 병을 집어 들더니 손가락을 넣어 갇혀 있던 마음을 쏙 꺼냅니다. 아무 일도 아니라 는 듯 쉽게 해버리죠. 다시 마음을 되찾은 주인공이 예전처럼 많은 일에 호기심을 갖고 별과 바다에 열정을 지닌 사람으로 돌아가면서 이야기는 끝납니다.
<마음이 아플까봐>에는 마음을 훈훈하게 채워주는 두 가지 통찰이 있습니다. 먼저 사람으로 인한 상처를 해결해주는 건 새로 다가온 사람이라는 진실입니다. 혼자 온갖 도구로 난리를 피우며 깨보려해도 깨지지 않던 유리병은 타인과의 만남으로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니 더 만나세요. 친구도 좋고, 지인도 좋고, 저처럼 얼굴도 모르는 사람도 좋습니다. 고민을 더 나누세요. 은둔형 외톨이처럼 자학하며 방 안에 있는 것 빼고 다 괜찮아요.
또 다른 중요한 통찰은 길을 잃은 듯 느껴질 땐 동심에게 길을 물으라는 겁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도, 새로운 일에 대한 의욕이나 계획도 없다고요. 이럴 때 큰 힌트를 주는 게 어린시절의 자신입니다. 등수나 연봉 등으로 타인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사회의 논리를 습득하기 이전의 자신이 어땠는지 생각해보는 겁니다. 성과나 인정에 대한 부담감을 모르던 시절의 내가 품었던 순수한 열정과 호기심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는지 기억해내는 거죠.
아이들은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참 잘 압니다. 시키지 않아도 반복해서 그 일을 하죠.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는 온갖 종류의 공룡 학명을 줄줄 외우기도 하고, 공룡이 나오는 책은 무조건 갖고 싶어 합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이렇게 마음이 무뎌진 것은 신경 쓰고 눈치 볼 게 많은 어른이라 그렇습니다. 자신의 순수한 기쁨을 인생의 최우선순위로 여길 줄 알았던 그 시절의 당신에게 질문해보세요, 난 어떤 사람이었냐고요. 아마 그 소녀는 답을 알고 있을 겁니다.
최혜진 /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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