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이고 싶지 않아
이미지 출처 : 중앙일보(2012.11.5)
누군가 나에게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묻는다면 나는 잘 지내지 못한다고 말하고 싶다 혼자 맞는 비는 너무 아프고, 외롭고, 슬프다.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다. 우산 하나 갖고 있지 않은 나에 게 왜 이렇게 비를 뿌려대는 것인지. 가만히 내버려 둬도 사는 게 힘든데 왜 절망만 안겨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 원망스럽다.
내리는 빗물이 너무 차가워 지독한 감기에 걸리고 말 것이다. 똑바로 설 수가 없다. 나는 나약하기 때문이다. 그 흔한 감기에도 열이 펄펄 끓어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가 없다. 참 억울하다.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준다던데, 신이 나를 과대평가한 게 아닐까.
나는 이 정도의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재채기 한 번에도 심장이 쿵 내려앉고 콧물이 조금만 차도 숨쉬기가 어렵다.
나는 아주 약하고, 약하고 약하다.
그러니 부디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비를 막아줄 우산이 없다. 비를 맞아도 견딜 수 있을 만큼 단단하지 않다. 서럽다. 서러워서 눈물이 난다. 힘든 일이 닥치면 다들 기댈 곳 하나씩은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 흔한 기댈 곳 하나가 없다.
어떤 사람은 우는 게 눈치 보여서 울지도 못한다고 하는데, 나는 눈치 줄 사람도 없다. 아무리 울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시리도록 차가운 비를 다 맞고 있는 미련한 사람으로 보일 뿐이다. 눈앞이 희뿌옇다 덜 마른 그림 위에 물방울을 떨어뜨리면 도화지에 물감이 퍼지는 것처럼 온 세상이 내 눈물로 번진다. 따뜻한 눈물방울이 눈가에 맺히면 차가운 빗물과 만나, 볼에는 미지근한 물줄기가 타고 흐른다. 그것이 나의 울음일 것이다. 서러워서 터져 나온 울음일 것이다.
언젠가는 이 비가 그칠 거라는 것을 안다. 비가 그치면 지독한 감기가 나을 거라는 것도 안다. 행복이 영원하지 않듯이 불행 또한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가 그치고 감기가 나으면 더 좋은 세상이 나를 맞아 주었으면 좋겠다. 혼자서 비를 맞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이 선물처럼 주어졌으면 좋겠다. 비바람이 불고 태풍이 덮쳐 와도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 하나였다. 한줄기의 희망 덕분이었다. 고생만 시키지는 않겠지. 힘든 삶만 살다가지는 않겠지.좋은 날이 올 거라는 희망 하나만으로 버티고 버텨 온 세월이었다. 희망마저 없었다면 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아, 그렇다면 소망을 바꿔야겠다.
비를 내리지 말아 달라고 바라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비를 맞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달라고 바라야겠다.
나는 비가 싫은 게 아니라
혼자서 비를 맞는 게 싫은 거니까.
힘든 삶이 비처럼 그치고
아픈 마음이 감기처럼 나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혼자이고 싶지 않다.
액자 밖으로 벗어나기 다들 무언가를 지향하며 행복하게 사는데, 나는 아무런 목표도 없이 무심하게 사는 것만 같다. 사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 목표를 세우지 못했고, 목표를 세우지 못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인데, 아무것도 안 하니까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고, 행복하지 않으니까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아진다.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진 상태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첫 블록부터 세우자니 앞이 막막하고 누워 있는 블록을 쓸어 담자니 그러고 나서의 다른 대책이 없다. 다르게 사는 법을 모르겠다. 지금 내 모습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무엇이든 열심히 하라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열심히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하나만 뛰어나게 잘하면 성공하니 한 우물만 파라고 하지만 어떤 우물을 파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내 상태는 0이다. 마이너스도 아니고 플러스도 아니고, 앞으로 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뒤로 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0의 상태에서 시간만 보내고 있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한다. 차라리 아무거나 해서 실패라도 해 볼까. 실패도 경험이라는데 그런 경험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0의 상태에서 가만히 서 있는 건 인생을 낭비하는 거 같았다. 그래서 나는 정말 아무거나 해 보기로 했다. 큰 그림을 그리기보다 작은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너무 멀리 보지 않기로 했다. 몇 년 후의 계획을 짜기보다는 현재에 충실한 계획을 짜기로 했다. 또 목표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무조건 의미 있는 걸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동안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다. 어떠한 결실이 없어도 되니 그냥 목표한 바를 이루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사소하고 단기적인 것부터 시작했다. 그 후 내 삶에는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마음가짐이었다. 인생은 나에게 주어진 대로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가정 환경, 경제적인 문제, 타고난 두뇌 등은 어쩔 수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왜 무기력하게 지냈는지 몰랐는데 거기에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것들이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거기에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내 마음을 굳어 버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하나씩 성공하며 살다보니 인생은 주어진 길로 가는 게 아니라 내가 길을 선택해서 가는 것이었다, 나는 벽에 걸린 한 폭의 그림이었다. 나를 감싸고 있는 액자 밖을 벗어나서도 안 되고 내가 걸려 있는 벽을 넘어서도 안 되는 줄 알았다. 틀이 나를 가두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내가 만든 틀에 맞추어 살고 있었던 것이다. 다르게 사는 법을 몰랐으니까 나의 캔버스가 작다고 해서 그림까지 작을 필요는 없었다. 그림이 액자 밖으로 삐져나와도 되고, 물감이 벽을 타고 넘어가도 된다. 굳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다면 나는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 꼭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크게 이룬 것이 없어도 행복한 삶이라고 믿으며 사는 삶을 살기로 했다. 내가 그리고 싶은 인생의 그림은 ‘어느 곳에서든 빛나기를'이라고 이름을 정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존재 자체만으로도 빛이 되고 싶다. 앞으로 내 인생은 어느 곳에서든 빛날 것이다. 내가 스스로 정한 인생이다 조유미 / ‘나, 있는 그대로 참 좋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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