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치유

뭘 해도 미운 사람이 있어요

송담(松潭) 2017. 12. 15. 05:47

 

뭘 해도 미운 사람이 있어요

 

 to, 에디터C

 

 직장 상사 때문에 정말 힘듭니다. 부하직원의 노력을 자기 공으로 둔갑시키고, 실력이나 일에 대한 철학은 전혀 없으면서 힘으로만 찍어 누르는 유형의 상사입니다. 함께 일하는 팀원들 가슴에 대못 박는 말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본인에게 상처가 될 것 같은 작은 말에는 부르르 치를 떨어요. 제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계속 봐야만하는 사람이라서 더 괴롭습니다. 상사의 말투와 행동에 자꾸 신경이 쓰이는데, 매일 마음에 쌓여가는 이 미움과 분노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악한 등장인물이 나오는 동화는 보통 악당과 선한 주인공 사이의 대결구도로 서사를 끌고 갑니다. 이때 악당의 사연은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저 나쁜 존재로만 이야기 안에서 기능합니다. 주인공이 맞서 싸우다 끝내 그를 처단할 때 저런 대접을 받아 마땅해”, “사라져야 마땅해.”라는 심정적 동조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숲 속 재봉사와 털뭉치 괴물>에는 행동이 괴팍하고 몸에서 고약한 냄새까지 나는 털뭉치 괴물이 등장합니다. 최향랑 작가가 사려 깊게 창조한 이 숲속에서 털뭉치 괴물은 욕을 먹어 마땅한 대상, 미워해야 할 대상, 사연이 결여된 대상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이 지점에 바로 어른들에게도 유효한 관계 맺기의 지혜가 숨어 있습니다.

 

 질척하고 고통스러운 미움이 저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껏 살면서 두어 번쯤 그랬던 것 같아요. 물론 사소한 토라짐이나 부당한 처사에 대한 억울함을 느낀 적은 더 많지만 뼈가 녹아내리는 듯한 큰 미움은 두 번 정도 경험했습니다.

 

 고등학교2학년 때 담임선생님 별명이 미친 개였습니다. 매 타작을 하는 게 즐거워서 선생님을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질을 심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매서운 훈육을 하는 선생님이었다면 학생들에게 질척하고 고통스러운 미움까지는 남기지 않았겠죠. 하지만 체벌의 기준이 없었습니다. 기분을 종잡을 수 없었죠. 어떤 날은 괜찮았던 일이 다른 날엔 맞아야 할 이유가 되었으니까요. 맞으면서도 자신이 숙제를 안 해왔기 때문에 맞는지 문제를 틀려서 맞는지, 짝꿍과 속닥거려서 맞는지 알 수 없는 기분으로 체벌을 견뎌야 했습니다. 부당한 기분을 풀 곳이 없는 여고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를 미친 개라고 부르는 것뿐이었습니다.

 

 두 번째 인물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윗사람이었습니다. ‘상사가 까라면 까야지 무슨 말대답이야'라는 식의 권위적인 태도가 몸에 배어 있었고, 의사 결정을 계속 미루거나 변덕을 부려서 기존에 진행하던 업무를 모조리 쓸모없게 만들어버리곤 했습니다. 업무강도가 센 것도 고통스럽긴 했지만 까라면 까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굴욕감이 더 문제였습니다. 그저 직급이 낮기 때문에, 힘이 없기 때문에 견뎌야 하는 굴욕감은 질척한 미움을 만들어냈습니다. 부하직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욕과 뒷담화였습니다. 처음에는 미움과 증오가 잔뜩 섞인 부정 적인 말이 속을 조금 개운하게 만들어주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 말들로 인해 피폐해지고 타들어가는 건 저쪽이 아니라 오히려 이쪽의 영혼이었습니다.

 

 뒷담화는 해결책이 아니었습니다. 회사를 관둘 수 없었던 저는 일단 제 마음이 편해질 수 있는 선택을 하기로 결심했죠. 그의 말과 행동에 곧장 의미를 부여해서 감정을 망치기 전에 질문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런 말과 행동을 통해 그가 지금 요구하려는 게 뭘까? ‘왜 저런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걸까?' 등 끈질기게 질문하며 그를 관찰하다 보니 서서히 행동의 이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연공서열을 내세우고 권위적으로 명령하는 모습은 직함이 없으면 무시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태도로 보였습니다. 부하직원의 공을 가로채는 행위는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이성을 잃은 상태, 한마디로 인정 욕구에 빠져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상태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참석한 술자리에서 그의 성장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술이 꽤 많이 차오른 상태로 이야기를 하다가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자신이 왜 사랑받아야 하는지 설명하려고 사방팔방 뛰어다니다가 완전히 지쳐버린 어린아이의 울음이었습니다. 그날 보았던 눈빛은 이전까지 제가 알고 있던 눈빛과 달랐습니다. 뼈를 녹일 듯했던 마음이 연민으로 바뀌어 진심으로 딱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가 회사에서 보여주는 말과 행동만 봤을 때는 분명 납득할 수 없는 사람이었는데, 살아온 이야기를 조금 더 알게 되니 이해 못 할 부분도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못되고 뾰족하고 경직된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 안에 얼마나 여린 아이가 숨어 있기에 저런 식으로 방어막을 만들어냈을까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였죠. 습관적으로 타인을 공격하는 사람들의 꼬인 마음은 여간해서는 바뀌지 않습니다. 그의 배우자나 부모님도 고치지 못할 거예요. 그를 아예 안보고 사는 결단(퇴사, 절교)을 내릴 수 없을 땐 내 마음이 편해지는 선택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움과 분노가 나를 잠식해서 영혼이 피폐해지는 심각한 상황으로까지 가지 않도록 하는 거죠.

 

 납득하기 어려운 말과 행동을 취약함을 감추기 위한 과장된 방어막으로 해석하면 마음에 작은 여유가 생깁니다. ‘그래, 네 안에 숨어 있는 어린아이가 왜 난동을 피우는지 내가 한번 들어주마하고 조망하는 위치에 설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아랫사람이니까 굴욕적이어도 상대방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면 미움과 분노가 솟지만 딱한 사람의 속내를 헤아려준다고 생각하면 그리 괴롭진 않습니다. 그가 살아온 맥락을 조금 더 알아가다 보면 신기하게도 이해 가능한 지점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그를 다루는 요령 역시 차츰 터득하게 됩니다. 평소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던 터라 <숲 속 재봉사와 털뭉치 괴물>을 봤을 때 무척 반가웠습니다.

 

 <숲 속 재봉사와 털뭉치 괴물>에는 숲 속 동물들에게 옷 만들어주기를 좋아하는 재봉사가 등장합니다. 동물들 사이에서 옷을 잘 만든다는 입소문이 퍼져 즐겁게 일하던 어느 날, 쿵쿵 굉음과 함께 시커먼 괴물이 재봉사를 찾아옵니다. 괴물은 이렇게 외치죠.

 

 “내게도 옷을 만들어다오!"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괴물을 본 재봉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휴, 냄새 , 지금 네게 필요한 것은 멋진 옷이 아니라 목욕인 것 같구나."

 

 숲 속 동물들의 도움을 받아서 괴물을 냇가로 데려가 목욕을 시켜줍니다. 회색 털뭉치는 점점 깨끗해져서 하얗고 커다란 털뭉치가 되었죠. 그때 털뭉치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살려주세요. 저는 털뭉치 속에 갇혔어요!"

 

 재봉사는 서둘러 털뭉치를 깎습니다. 커다랗고 하얀 털뭉치 속에서 나온 건 오들오들 떨고 있는 작은 개였습니다. 털뭉치 괴물 쿵쿵이는 한때는 사랑받던 귀여운 강아지였습니다. 하지만 늙고 병들어 주인에게 버림받았고, 여기저기 떠도는 동안 털이 점점 자라 온몸을 뒤덮었죠.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괴물이다!"라고 손가락질 했던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감탄이 터졌습니다. 뾰족하고 날카롭고 공격적인 사람의 내면 안에도 떨고 있는 여린 자아가 있을 수 있고, 공격성과 착취적인 행동은 숨어 있는 여린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삐뚤어진 보호막일 수 있다고 말하는 작가의 메시지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또 그런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졌습니다.

 

 책장을 덮고 '미친 개' 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그에게도 재봉사와 같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20년 가까이 된 일이지만 잊히지 않습니다. 이성을 잃은 광포한 행동 안에 숨어 있는 여린 목소리를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었더라도 그가 그렇게 세상을 떠나진 않았을 겁니다. 새 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 방학이었습니다. 우리 반 학생들이 드디어 해방되었다고 좋아하던 무렵의 어느 날,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뾰족한 말과 남을 착취하는 행동, 공격성이라는 악취를 풍기는 그도 조금만 더 알고 보면 그릇된 표현 방식을 선택해서라도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아주길 열망하는 사람입니다. 외롭고 취약하며 사랑받길 원하는 나와 다를 것 없는 관계적 존재, 그를 너무 많이 미워하느라 이 사실까지 잊지는 않길 바랍니다.

 

 최혜진 /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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