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욕망과 믿음

송담(松潭) 2016. 12. 5. 09:28

 

 

병든 사자와 사슴

- 욕망과 믿음 -

 

 

 

 병들어 직접 사냥을 할 수 없게 된 사자가 여우에게 꾀를 내보라고 명령했다. 여우는 사슴에게 찾아가 말했다. “사자님께서 돌아가실 때가 다 되었는데, 자네를 후계자로 삼으려고 부르셨네.” 그 말을 듣고 우쭐해진 사슴이 여우를 따라 사자 굴로 들어갔다. 굶주린 사자가 성급하게 달려드는 바람에 사슴은 귀 한 쪽만 뜯긴 채 가까스로 달아날 수 있었다. 여우가 다시 사슴을 쫓아가 능청스럽게 물었다. “아니, 왜 도망갔나?” 사슴이 씩씩거리며 대꾸했다. “뭐야, 날 잡아먹으려는 수작이었잖아. 절대 안 따라가.” “아냐, 그건 오해야, 사자님께서 앞일을 귀엣말로 조용히 당부하려 하신 것뿐이라고. 어서 돌아가세.” 그 말을 믿은 사슴은 다시 여우를 따라갔다가 결국 꼼짝없이 사자 먹이가 되고 말았다.

(이솝우화)

 

 

 타인의 말을 믿게 되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는 특히 자신의 소망 충족과 관련된 말에 혹하는 경우가 많다. 즉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타인이 해줄 때 그 말은 특별히 신빙성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스스로 전혀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믿지 않으면서도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을 수 있다. 소망과 현실이 다르다는 이성적 사고를 잃지 않는 한, 소망을 품는 것 자체는 결코 위험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이성적 인간도 타인에게서 당신은 충분히 대통령이 될 수 있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꿈에서나 그려보던 주관적 소망은 쉽게 확고한 믿음으로 발전한다.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 이제는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타인을 통해서도 확인된 어떤 객관적 전망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일단 믿음이 된 소망은 그 무엇으로도 제어되지 않는 위험한 집착으로 변질된다.

 

 사자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 목숨을 건졌을 때 사슴은 어떤 심경이었을까? 물론 무엇보다도 사자 굴에서 용케 빠져나왔다는 안도감이 컷을 것이다. 하지만 여우의 말이 불러일으킨 엄청난 권력욕이 그 실현을 눈앞에 두고 한순간에 처참하게 꺾여버린 데 대한 실망 역시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으리라. 여우의 말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난 뒤에도 사슴의 마음속에 한번 새겨진 왕위에 대한 생각은 쉽게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그러면 그렇지. 내가 왕이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하고 혼잣말을 되뇌며 이성을 찾으려 했겠지만, 마음 다른 한편에서는 왕위를 이어받을 거라고 굳게 믿었던 때의 달콤한 감정을 잊기 어려웠을 것이다. 바로 이런 상태에서 여우가 다시 찾아와 모든 것이 오해이며 사자가 잡아먹으려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귀엣말로 후계에 관한 중요한 예기를 하려 했을 뿐이라고 해명한 것이다. 사슴은 사자의 이빨에 귀가 뜯겼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여우를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지도 생각지 않고, 다시 한 번 여우의 말을 믿기로 결단한다. 처음과는 달리 여우의 주장을 도저히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게 만드는 뚜렷한 정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욕망은 그러한 의혹을 상쇄하고도 남는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여우의 말도 안 되는 해명은 좌절당한 채 갈 길을 잃은 사슴의 욕망에 현실적 전망을 활짝 열어준다. 그리하여 사슴은 다시 불타오르는 욕망을 안고 사지로 들어간다.

 

 사자가 사슴을 먹어치울 때 여우는 심장을 몰래 빼먹는다. 심장이 어디 갔는지 의아해하는 사자에게 여우는 두 번이나 속아 사자 굴로 찾아온 얼빠진 녀석에게 무슨 심장이 있겠냐고 대꾸한다. 그러나 사실은 반대다. 사슴은 심장이 있기 때문에 사자 굴로 들어온 것이다. 심장을 강렬한 욕망의 원천으로 파악하면 말이다.

 

김태환 / ‘우화의 서사학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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