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타방네의 노래

송담(松潭) 2016. 9. 28. 17:21

 

타방네의 노래

 

 

 

 어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 예감도 전조도 없었다. 아침나절에 평시보다 일찍 일어나 갈증이 난다고 냉수 한 사발을 들이키더니, 이윽고 쓰러졌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의사를 부르기도 전에 숨이 끊겼다. 영원히 살 것만 같은 욕망과 아직 스러지지 않은 젊음을 싸안고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마침내, 고아가 되었다.

 

 “탄실아, 내가 죽으면 땅에 묻지 마라. 땅속은 어둡고 답답해서 싫다.”

 

 “그럼 어떻게 해요?”

 

 “스님들처럼 화장하면 되지. 뼈를 빻아서 가루로 만들고, 그 가루를 바람 속에 뿌려다오. 그러면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아니냐? 산도 넘고 바다도 건너고, 어디로든 자유롭게.”

 

 “난 그 청을 못 들어드리겠네요.”

 

 “? 왜 못 들어준단 말이냐?”

 

 “묘가 있어야 나도 동생들도 보고 싶으면 한 번씩 찾아가지요. 타방네도 그랬잖아요? 소박맞고 정신이 나가서도 어머니 무덤까지 찾아가서 죽었잖아요?”

 

 철없는 어머니를 둔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어른일 운명이었다. 짐짓 어기대는 그녀의 말에 산월은 특유의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머니가 그리워 바람 속에 떠나보낼 수 없다는 자식의 말에 기쁜 듯도 하고, 해달라는 대로 고분고분하지 않은 게 못마땅한 듯도 하였다.

 

 생전에 못 들어 주겠다고 뻗대었던 소원을 죽어서 들러드렸다. 산월은 작은 암자의 뒤뜰에서 화장되었다. 회색 하늘로 빨간 불티가 어지러이 날아올랐다.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듯 하늘이 무거웠다. 타오르는 불무더기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멍멍하고 얼얼했다. 아버지의 장례 때처럼 눈물이 펑펑 솟구치지도 않았다. 얼마 되지 않은 여윳돈을 쪼개어 비싼 땔나무를 산 게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비싼 땔감이니 잘 탈 것이다. 빠르게 육신을 불살라 재로 만들 것이다. 산월의 흔적은 감쪽같이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비가 오기 전에. 비가 내리기 전에.

 

 눈물이 나지 않는데 끅끅, 헛구역질 같기도 하고 신음 소리 같기도 한 것이 목구멍 너머로부터 치올랐다. 단백질이 탈 때 배출되는 누린내 때문이리라. 이과(理科) 시간에 배운 이치를 떠올리려 애썼다. 하지만 죽음이 단순히 한 개체의 생명이 없어지는 현상일 수만은 없었다. 그가 살았던 세상, 그가 맺었던 관계, 그의 기억 전부가 사라졌다. 끅끅, 추억이 치밀었다. 끅끅, 상실감과 죄책감과 후회와 원망과 그 모두가 뒤엉킨 고통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녀는 사랑했다. 어머니를, 자신을 세상에 데려온 사람이면서 세상에 태어나 만난 첫 번째 사람을, 본능과 운명의 결합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우물우물 호칭없이 대화했고 어머니라고 불러야할 상황을 아예 피했다. 산월을 어머니라고 부르면 자신은 첩의 딸, 기생의 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를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뜻을 넘어 정해진 피의 인연조차 기어이 부정하려 몸부림쳤다.

 

 “대체 나를 왜 낳았어? ? ?”

 언젠가 악에 받쳐 퍼붓던 말들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전설 속의 타방네가 그러했듯 그녀도 어머니를 미워하고 또 미워했다. 어머니를 괴롭히기 위해서 한껏 까탈을 부리고 있는 대로 패악을 떨었다. 타방에의 어머니는 무당, 그녀의 어머니는 기생, 세상의 천대와 뭇사람의 손가락질을 받는 신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정녕 그녀들의 죄인가? 그녀들에게 죄가 있다면 운명 앞에 아무것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것뿐이었다.

 

 “잘 가요!”

 

 손가락 사이사이로 산월이 미끄러져 빠져나갔다. 그것은 어린 날 고사리손으로 더듬어 잡았던 손과, 그러잡았던 비단 치맛자락과, 몰래 뚜껑을 열고 찍어 발라본 가루분의 촉감과 닮았다. 부드럽고 가늘고 미미한 따뜻함이 바람결에 분분히 흩어졌다. 그녀는 끝내 물기 없는 통곡으로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지금 여기가 아니라면 다시는 불러볼 수 없는 이름을 목 놓아 외쳤다.

 

 잘 가요. ..... .....!

 

 

 

 

 

 

 

< 2 >

 

 

 차가운 물에 손을 씻고 책상 앞에 앉았다. 잠기운이 깨끗이 가신 머리는 바람으로 행군 듯 상쾌했다. 조도가 낮은 등불 아래 정갈하게 펼쳐진 책과 노트가 눈부셨다. 넘어가는 종이의 가벼운 팔랑거림이 좋았다. 사각사각 연필로 글씨를 써 내려가는 소리가 좋았다. 한참 동안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찌뿌등한 몸을 기지개켜면 긴장했던 온몸의 세포들이 일제히 환희의 만세를 불렀다. 살짝 배가 고팠다. 창밖으로 새벽빛이 궁싯거리고 있었다. 푸르른 공복, 빛나는 정적, 그녀는 홀로이 깨어 있는 새벽을 사랑했다.

 

 ‘명예심이라는 강박적인 감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명학교에서 동무들의 시새움을 무릅쓰고 공부에 매달리는 동안 그녀는 점차 공부의 재미에 눈을 떴다. 배울수록 세상은 넓어지고 생각은 깊어졌다. 바닷물을 들이키는 것처럼 공부를 하면 할수록 지식에 대한 목마름은 커졌다. 차라리 무지하고 무식한 채로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것이 갈증을 멈추는 유일한 방도일 테다. 그러나 앎에 대한 갈증이야말로 인간으로서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지성과 이성의 힘으로 야만과 미신을 넘어서겠다는 근대인다운 포부의 발현이었다. 아이답지 않게 무수한 근심과 자잘한 감정에 시달렸던 그녀이지만 정신을 집중해 공부할 때만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토록 그녀를 괴롭히던 남들의 시선과 수군거림도 오롯이 책과 마주한 순간에만은 티끌처럼 하찮게 느껴졌다.

 

 조선은 그 폐쇄성 때문에 외세의 침탈에 무력하게 무릎을 꿇은 지경에도 여전히 구습에 사로잡혀 있었다. 일본이라는 막강한 적을 코앞에 둔 채로 조선인들끼리 신분과 성별을 트집 잡아 차별하며 제 살 깎아먹기를 계속했다. 두 가지 트집거리를 모두 갖춘 그녀로서는 조선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버텨내기 어려웠다. 그래서 일반적인 조선 여성들의 해외 유학이 1915년 이후부터 활발해져 19193·1운동 이후 망명생활로 이어진 데 비해 일찍 첫걸음을 때게 된 것인지 모른다. 1915년 이후에는 진명, 숙명, 이화 등에서 교비로 일본이나 미국에 유학을 보내는 사례가 생겼지만, 그들보다 한 발자국 앞서 나갔던 그녀는 장학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모험을 강행했다. 이대로 아무 이룬 것도 없이 청춘을 흘려보낼 바에야 따지고 셈하지 않고 저질러 보기로 했다. 공부에 대한 그녀의 열망은 너무도 커서 그 기세가 마치 이리 새끼나 호랑이 새끼처럼 사나웠다. 공부야말로 불행한 운명의 탯줄을 끊는 유일한 길이거니와 유학은 그녀의 경쟁심과 명예욕을 자극하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일본에 가서 일본의 여학생들과 실력을 겨뤄보고 싶었다. 못난 나라의 못난 백성으로서가 아니라 동등한 경쟁자로서 당당하게 그들을 이겨 서러움을 앙갚음하고 싶었다.

 

 창밖으로 애처로운 조선의 땅과 조선의 바다가 휙휙 스쳐 지났다. 유리창에 얼비친 그녀는 끊어질 듯한 허리에 오동통한 뺨과 극히 둥글고 맑은 눈동자를 가진 열일곱의 소녀였다. 천진하여 용감하고, 무구하여 위태로운.

 

 

 

< 3 >

 

 어쩌면 그를 정말 좋아했다기보다 처음이라는 사실에 집착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이성으로 만난 상대였고 처음 마음을 열었던 사람이었다. 그녀에게는 처음의 신화(神話)에 더하여 그것이 끝이어야 한다는 강박까지 있었다. 화류 사랑의 공식이나 다름없는 뇌봉전별(雷逢電別), 벼락같은 만남과 번개 같은 헤어짐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남자 저 남자를 간보고 저울질하는 건 기생의 난봉이나 다름없었다.

 

< 4 >

 

 

 떠날 때 바다는 희망으로 넘실댔다. 돌아올 때 바다는 절망으로 술렁이고 있었다. 떠날 때 기차는 설렘으로 힘차게 달렸다. 돌아올 때 그 기차는 기적 소리마저 처연했다. 금의환향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 처지가 되어 돌아올 줄 몰랐다. 어느새 울보딱지가 되어버린 그녀는 바다를 보며 울고 기적 소리를 들으며 또 울었다. 눈이 아프고, 목이 아프고, 무엇보다 마음이 북북 찢겨나가는 듯 아팠다.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잃었다. 그녀는 텅 빈 껍데기의 모습으로 조선으로 돌아왔다. 어느 해보다 스산했던 가을과 겨울, 달팽이처럼 몸을 말고 집 안에 칩거했다. 문밖에서 가을바람이 노크했다. 창밖에서 흰 눈이 수인사를 보내왔다. 깊고 긴 가을과 겨울을 그녀는 창백한 고독 속에 고립되어 보냈다. 그녀가 침묵에 빠져 있으면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 5 >

 

 숙명학교는 창가와 더불어 풍금 연주를 필수로 가르쳤다. 수업이 없는 텅 빈 음악실은 묘한 감상을 자극했다. 창문을 통과한 햇빛 줄기를 따라 피어오르는 먼지까지도 아련했다. 그곳에서 풍금치고 노래를 부르고 책을 읽고 상념에 잠겼다. 혼자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자신 있었다. 혼자라면 외로운 만큼 자유로웠다.

 

 

< 6 >

 

 어쨌거나, 그녀는 빈털터리였다. 천지간 어디에도 혈혈단신이었다. 스스로 살 궁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빛나는 껍데기에 대한 열광과 별개로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수족을 움직여야 했다. 그녀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어머니가 선물로 지어준 양장, 그 단벌옷을 팔기로 했다. 맵시와 풍치로는 최고였던 신월의 취향이 올올이 묻어나는 세련된 옷이었다. 팔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입어보았다. 소녀시절에 맞추었던 옷이었음에도 소매 길이가 약간 짧을 뿐 품은 도리어 낙낙했다.

 

 내 삶에 무엇이 자라나고 무엇이 여위었던가?

 

 옷 한 벌을 팔았을 뿐인데 황무지에 발가벗겨져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자기 연민에 겨워 울지 않기 위해 애써 웃었다. 가면 같은 얼굴에 비틀린 미소가 번졌다.

 

 

 

< 7 >

 

 쾌락을 죄악시하고 사치를 배격하며 욕망을 절제할 것을 강조하는 글들을 읽을 때마다 죄책감에 휩싸였다. 그녀는 영구히 사람의 본능을 지닌 채로는 헤브라이즘의 금욕주의를 지킬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사랑의 이름으로 모진 도덕과 윤리의 채찍질을 하며, 그들은 사랑을 모욕하고 있었다.

 

 김별아 / ‘탄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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