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땅과 하늘을 하나의 길로 잇다

송담(松潭) 2016. 10. 25. 12:52

 

 

땅과 하늘을 하나의 길로 잇다

 

 

 

 

 

 

 나무는 발이 없다. 동물처럼 사지를 움직여 이동할 수 없다. 그래서 동물의 눈으로 보면 나무는 죽은 것처럼 답답해 보인다. 나무의 움직임은 정중동(停中動)이다. 죽은 것처럼 가만히 있지만 사실은 동물 못지않게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어 답답할 줄 알았더니/ 일평생 꼼작 못하고 한자리에만 있어 외롭고 심심할 줄 알았더니// 우글우글하구나 나무여/ 실뿌리에서 잔가지까지 네 몸 안에 나 있는 모든 길은/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쉬지 않고 움직이는 그 구불구불한 길은/ 뿌리나 가지나 잎 하나도 빠짐없이 다 지나가는 너의 길고 고단한 길은// 우글우글하구나 나무여/ 번개의 뿌리처럼 전율하며 끝없이 갈라지는 길은/ 괴팍하고 모난 돌멩이들까지 모두 끌어안고 가는 너의 길은/ 길을 막고 버티는 바위를 휘감다가 끝내 바위가 되기도 하는 너의 길은(졸시, <우글우글하구나 나무여>부분)

 

 땅 위로 드러난 고목들의 뱀 못지않게 우글우글한 뿌리를 보면 나무들이 얼마나 동물적으로 움직이는지 느낄 수 있다. 앙코르와트 사원을 휘감고 있는 나무뿌리를 보면 식물의 욕망은 동물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나무는 하늘과 땅에서 동시에 서식하는 양서류다. 줄기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듯 하늘과 땅으로 퍼져 있다. 땅과 하늘이 하나의 길로 이어져 있다. 가지는 하늘 속에 박혀있는 뿌리요 뿌리는 땅속으로 뻗어가는 가지다. 이 길을 통해 땅은 하늘과 만나고 하늘은 땅의 어둠과 만난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는 시 <물노래>에서 땅속의 물이 햇빛을 사랑하는 형상을 그린 것이 나무이며, 땅속의 물은 나무를 통해 빛을 마중하러나가며, ‘가벼운 손들 달린 그 흐르는 힘찬 팔들을 우주를 향해 내밀고 뻗친다고 노래했다. 하늘의 공기와 햇빛과 바람이 땅의 물과 어둠과 만나 사랑하고 껴안아 한 몸이 되는 곳이 나무다.

 

김기택 /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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