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동행
오늘은 매달 모이는 여고동창회 날이다. 광주로 가는 버스 속 옆 좌석의 젊은 아주머니가 어디 가시는 길이냐며 불쑥 말을 걸어왔다. 동창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대답했더니만 “참 좋은데 가시는군요.”라고 말했다. 참! 좋은덴가? 하는 마음이 불쑥 스치고 지나갔다. 그 젊은 아주머니는 우수영 사는데 목포 광주를 거쳐 정성으로 병원치료를 받으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 순간 아! 이 가을을 좋은 친구들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부러울 게 없구나”라는 느낌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개나리 노랗게 세상을 불들이고 라일락 향기가 퍼지는 대책 없는 봄날이면 삐라처럼 벚꽃 휘날리는 길을 깔깔대며 봄을 만끽하고 가을바람에 살랑대는 코스모스 몸짓이며 울긋불긋한 단풍이 물드는 가을이면 낙엽을 밟으며 재잘거리며 수다쟁이 아줌마들로 변하고 한다. 겨울이 되면 감기라고 징징거리는 대신 모든 짐보따리 살짝 내려놓고 찻집에 앉아 창밖의 무등산 눈꽃을 바라보며 여고시절의 옛 추억을 더듬으면서 커피향에 취해 얘기꽃을 피우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또 환갑 때 다함께 유럽여행이며 눈덮인 터킹행의 행복한 추억은 어찌 다 잊을 수 있겠는가!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서 가진 환갑자축연에선 저역노을을 바라보며 목청껏 소리쳐 불렀던 아리랑의 노래 소리의 여운이 문득 귓가에 쟁쟁거리며...
태양의 해변도시인 말라카의 찻집에서 미셨던 국화자의 향기며... 알함브라 궁전의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정원에서 어깨동무하며 열심히 찍어댔던 기념사진들이며...
환상적인 색깔의 지중해 바다 위 안탈랴 유람선서 즐긴 댄싱파티의 소중한 기억들이 삶의 순간순간 물밀 듯이 떠오른다.
눈빛 하나로 마음을 읽어주고 서로를 걱정하고 칭찬하며 힘들 때 힘이 되어주고 늘 행복한 일상들로 함께 웃고 떠들며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행복하다. 지난 세월 젊은 날엔 친구들의 꽃밭에 무슨 꽃이 피었나 얼마나 예쁜 꽃을 피우는가 구경하느라 조바심을 내며 정신없었지만 이젠 내가 갖지 못한 화려함보다 내가 가진 내 꽃밭의 친근함이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나이가 된 것 같다.
부질없는 욕망에 흔들려 주제파악 못하여 경거망동 하지 않으며 이젠 어떤 일이건 그러려니 하는 시간과 연륜만이 주는 지혜도 얻었다.
친구들 제각각 봉사활동은 물론이고 문화선터에서 세계사, 음악, 요리, 외국어 수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섭렵하며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보람찬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어느 여기자의 나이의 숫자가 주는 무게를 벗어 버리고 젊은 얼굴과 몸매를 되찾는 것이 아닌 젊은 시절의 꿈을 되찾기 위해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해서만”이라고 선언한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나이에 얽매여 스스로 열정을 막아버리지 않을 것이며 억지로 예뻐지려고 애쓰지 않고 감성이 녹슬지 않고 풍성하고 여유 있게 존재 하는 법을 배워 나이듦의 무게를 느끼며 살고 싶다.
오래 살아보려고 온갖 약과 건강보조제를 챙겨먹느라 정신없는 것보다 건강한 정신, 마음이 따뜻한 사람으로 작은 일이라도 남을 돕고 가족을 사랑하며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온전한 삶을 누리는 것 같다.
사소한 일상이 내 생활을 충실하게 만들고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하루하루 보내면 행복해질 것이다. 친구들이 보내는 안부문자에, 너무 재미있어 훌쩍 읽기 아까운 신간 베스트셀러에, 불후의 명곡 가수들의 감미로운 추억의 노래에 빠져 행복 해질 수 있을 테니까!
매순간이 다 아름답고 평화롭고 기쁘고 즐거운 일만 가득되길 바랄만큼 철없지는 않다. 남에게 보여주는 삶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온순한 시간이 기록되길 바랄 뿐이다. 내가 보내는 매순간 하루하루가 나 혼자만 살아내는 시간이 아니란 것을 나와 만나는 친구들 모두 행복하라고 기도하는 것도 착한 일 아닌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어른이나 아름다운 할머니는 몰라도 주책스럽지 않은 귀여운, 멋있는 할머니로 늙어 가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지난봄이 짧았다고, 겨울이 춥다고 투덜거릴 까닭은 없지 않은가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
김영미(목포시 만호동) / 목포시 주부명예기자
‘비파 뜨락의 향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