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저주
피루스의 승리pyrrhic victory라는 말이 있다. 막대한 희생을 치른 승리, 보람 없는 승리, 희생이 아주커서 패배나 다름없는 승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옛 그리스 에피루스의 왕 피루스가 로마를 상대로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지만 병력의 3분의 1 이상을 잃을 정도로 희생이 컸기에 “이런 승리를 또 한 번 거두었다간 우리가 망할 것이다.”고 말한 데서 생겨난 말이다.
2001년 영국에서 구제역 파동이 일어나 가축 수백만 마리가 살처분 당했다. 당시 수의사들은 토니 블레어 총리에게 편지를 보내 “이런 식의 초토화 정책으로 구제역을 근절한다고 해도 그것은 피루스의 승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피루스의 승리를 경제학에선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고 한다. 승자가 저주를 내리는 게 아니라 저주를 당한다는 의미인바, ‘승자의 재앙’이라고도 한다.
입찰경쟁에서 과도한 입찰가격을 써내 손해를 본 경우, 기업인수 합병 시 입찰가격이 예상했던 인수대상 기업의 가치를 초과하여 손해를 보는 경우 등에서 ‘승자의 저주’가 발생한다.
기회비용
기회비용의 사전적 정의는 “하나의 대안이 선택되었을 때 다른 대안들에서 얻을 수 있는 잠재적 이익의 상실”이다. 1914년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폰 비저가 만든 말이다.
기회비용은 ‘어떤 행위를 하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다른 기회의 최대 가치“라는 점에서 ’선택의 비용‘이기도 한다. 기회비용은 경제의 영역을 넘어 개인의 비경제적 행위에도 기회비용이 존재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결혼을 했을 경우 그 결혼의 기회비용은 독신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일 것이다. 실제로 이런 기회비용이 결혼으로 얻어지는 이익보다 크다고 믿어 일부러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인간은 늘 후회하는 동물이다. 이미 지나간 세월을 놓고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하고 후회하는 사람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기회비용을 아쉬워하는 셈인데, 이는 다분히 자위(自慰)의 성격이 강하다. 선택을 달리했다면 자신의 인생이 지금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함으로서 자긍심을 조금이나마 올려보려는 몸부림이라고나 할까?
매몰비용
1969년 프랑스와 영국이 합작투자한 콩코드 비행기가 1976년부터 상업 비행을 시작했다. 콩코드는 기존 보잉기보다 2배 이상 빨라, 파리–뉴욕 간 비행시간을 종전 7시간에서 3시간대로 단축했지만, 높은 생산비, 기체결함, 소음과 대기 문제 등으로 전망은 매우 어두웠다. 가망이 없는데도 계속 투자하다가 총 190억 달러를 쏟아부은 끝에 2003년 4월에야 운행을 중지했다. 남은 건 ‘콩코드 효과’라는 말이다.
‘콩코드 효과’는 학술적으론 ‘매몰비용효과(sunk cost effect)’라고 한다. 매몰 비용은 이미 매몰(埋沒)되어 버려서 되돌릴 수 없는 비용으로 ‘함몰 비용’이라고도 한다. 우리 인간에겐 돈이나 노력, 시간 등을 일단 투입하면 그것을 지속하려는 성향이 있는데, 이를 가리켜 매몰비용효과라고 하는 것이다.
매몰비용 오류는 국가 정책 차원에서도 발생해 많은 사람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2006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독립기념일 연설에서 “나는 전쟁이 종결되기 전에 철수함으로써 이라크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희생을 헛되게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전사한 병사들의 희생’이라는 매몰비용 때문에 계속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지만, 이후 더 많은 병사를 희생시켰을 뿐이다.
강준만 / ‘감정 독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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