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민주주의
우리 헌법에는 ‘자유 민주주의’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헌법4조에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표현이 나올 뿐이다. 게다가 자유 민주주의는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말도 아니다. 이는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이슈가 되는 낱말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지식인들끼리는 늘 대한민국이 자유 민주주의 사회인지, 민주주의 사회인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세상에는 여러 민주주의가 있다. 심지어 북한마저도 민주주의를 내세운다. 나라 이름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민주주의는 ‘인민 민주주의’다. 반면 스웨덴 같은 나라들은 ‘사회 민주주의’를 앞세운다.
인민 민주주의는 평등을 앞에 둔다. 그래서 모두가 잘사는 평등한 세상을 꿈꾼다. 이를 위해서는 누구도 밀려나지 않도록, 국가가 계획을 세워 경제를 굴려야 한다. 인민 민주주의는 계획 경제를 따른다.
이와 달리 사회 민주주의는 계획 경제 대신 시장을 믿는다. 시장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경쟁할 때, 세상은 더욱 자유롭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하지만 사회 민주주의자들은 시장만큼이나 공동체를 앞세운다.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을 보호하는 장치를 겹겹이 만드는 식이다. 사회 민주주의를 따르는 나라들은 사회 복지 제도를 튼실하게 하는데 힘을 쏟는다.
자유 민주주의는 어떨까? 자유 민주주의는 평등보다 자유를 우선한다. 자유주의자인 존 수튜어드 밀은 은 ‘타인 위해의 원칙’을 주장한다.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한 뭘 해도 자유라는 뜻이다. 그래서 자유주의 시장경제와 잘 어울린다. 그러나 시장경제는 많은 문제를 낳기도 한다. 능력껏 경쟁하면, 빈부 격차는 심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자유를 너무 앞세우다 보면 평등은 어느덧 스러지고 만다.
민주주의는 그래서 소중하다. 민주주의는 누구나 평등하다고 가르친다. 선거에서도 1인1표가 원칙 아니던가. 돈 많고 권력이 있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나라를 운영하려 하면 어떻게 될까? 어느 사회나 권력자와 부자의 수는 힘없고 가난한 자들보다 적다. 대다수 시민들은 선거로 권력자들 에게 벌을 준다. 부자를 위해서만 정책을 펴는 정치가들은 결국 밀려나게 되어 있다.
이렇게 자유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균형 잡히도록 이끌 수 있다. 자유주의를 토대로 경제 발전을 이끌고, 민주주의를 토대로 평등을 낳는 식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자유 민주주의는 나무랄 데 없는 사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자유 민주주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독재시절, 민주주의를 억누르던 명분이 항상 ‘자유 민주주의 수호’였던 탓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연스럽게 ‘반공’과 같은 뜻이 되어 버렸다.
2011년 8월, 교육과학기술부는 앞으로 교과서에서 대한민국 역사를 설명할 때는 ‘민주주의’대신 ‘자유 민주주의’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이를 놓고 격한 논쟁이 벌어졌다.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이들로서는 자유 민주주의는 아픈 독재의 기억을 담고 있는 단어다. 어느 덧 자유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우리 사회에서 보수 세력을 나타내는 꼬리표가 되었다. 그래서 진보 쪽에서는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주로 쓴다.
자유 민주주의는 원래 불안한 사상이다. 자유와 평등의 관계는 물과 기름과 같다. 자유를 좇으면 평등이 움츠러들고, 평등을 앞세우면 자유가 스러진다. 자유 민주주의 사회는 늘 자유와 평등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그래서 사회는 늘 시끄럽다.
만약 자유와 평등 가운데 어느 한쪽이 승리를 거두면 어떨까? 자유 민주주의는 곧바로 독재가 되어 버린다. 자유만 앞세울 때, 사회는 결국 돈 있고 힘 있는 1퍼센트가 전체를 지배하는 사회가 될 테다. 평등만 내세울 때는 어떨까? 이때도 사회는 독재로 흐르기 쉽다. 히틀러, 카다피, 후세인같은 독재자들은 항상 ‘공동체’를 내세우곤 했다. 평등을 앞세울 때,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는 더 잘 먹혀드는 법이다.
자유 민주주의는 두발자전거와 같다. 자전거를 멈추는 순간 쓰러져 버린다. 자유 민주주의도 이와 같아서, 자유와 평등을 둘러싼 논란이 그치는 순간 무너져 버린다. 자유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아주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누구는 이를 독재의 억압으로, 누구는 자유와 발전으로 받아드린다. 그래서 자유 민주주의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안광복 / ‘교과서에서 만나는 사상’중에서 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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