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헝그리 정신과 궁상

송담(松潭) 2013. 12. 18. 22:49

 

 

헝그리 정신과 궁상

 

 

 

 확실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의 돈을 받으려면, 나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돈 주는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때 결심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려면, 돈을 적게 벌어야 하고, 그러려면 돈을 적게 써야 한다. 적게 벌고, 적게 쓰고, 나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자!’ 그땐 영화 <넘버3>에서 송강호의 대사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라서, 이런 생각에 거기서 들은 헝그리 정신이란 이름을 붙였다.

 

 헝그리하게 산다는 것은 단순히 결핍을 뜻하는 것으로서의 가난이나 빈곤 속에 산다는 걸 뜻하진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가장 부유하게 사는 법이다. 역으로 꼼꼼히 생각해 보면, 부나 부유함만큼 오해되고 있는 게 없는 것 같다. 부란 그저 자신이 처분할 수 있는, 대개는 돈으로 환원되거나 계산되는 경제적 자원의 양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자본주의와 부에 대해 속속들이 연구했던 마르크스는 이런 경제적 부개념과 대비하여, ‘실질적 부란 필요노동시간(먹고 사는데 필요한 비용을 버는데 사용되는 시간) 이외의 가처분시간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쉽게 말하면 돈을 버는데 투여되는 시간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라는 것이고, 그런 시간이 많은 이들이 부유한 자라는 것이다.

 

 이 경우 부유함이란 자신이 선택한 삶의 크기, 아니 자신을 위한 삶의 질을 뜻할 것이고, 그런 점에서 말 그대로 삶의 풍요로움을 뜻하는 것이 될 것이다. 돈이 많다고 삶이 풍요로운 게 아님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돈 버는 것 말고는 별로 하는 게 없는 삶처럼 단조롭고 빈약한 삶이 어디 있을까. 그것은 분명 더없이 빈곤한 삶이다.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그 단조로움과 빈곤함을 벗어날 길이 없다.

 

 헝그리 정신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자신의 삶을 위해 능동적으로 가난을 선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가난 앞에서 당당하다. 없으면서 있는 척하지도 않지만, 있는 것 이하로 궁핍을 과장하지 않는다. 나보다 잘 버는 친구와 만나면 엔간하면 얻어먹지만, 나보다 못 버는 이들과 만나면 가능한 내가 사야 한다고 믿는다. 자신을 위해 쓸 때는 최대한 신중하지만, 남을 위해 쓸 일이 있으면 최대한 과감해 져야 한다. 항상 검소하게 살고자 하고 엔간하면 돈 쓸 일을 안 만들지만, 써야할 일이 있을 땐 머뭇거리면 안 된다. 그렇기에 작은 돈을 쓰는데는 민감하고 쫀쫀해지지만, 큰돈을 쓸 때에는 과감해져야 한다. 이럼으로써 돈에 부림을 받는 삶이 아니라 돈을 부리는 삶이 가능해진다.

 

 궁상은 이와 다르다. 나보다 가난한 자들에게 내 음식값을 내게 하며, 혹은 돈을 내야 마땅한 처지임에도 빈손을 내밀거나 궁핍을 드러내는 것, 돈은 많지만 항상 돈 벌 생각만 하며 돈에 주린 자처럼 사는 것,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쓰지만, 남을 위해선 인색하게 구는 것, 돈이 될 일이다 싶으면 자기보다 가난한 이웃을 젖히고 독차지하려 덤비는 것, 이렇게 궁상을 떠는 것이다.

 

 이처럼 궁상을 떨며 살려면 차라리 가난하게 살자. 헝그리 정신으로 살자. 그게 돈이 없어도 부유하게 사는 길이다.

 

 

이진경 /‘삶을 위한 철학수업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