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자존심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우리 집에는 고양이와 개가 있었다. 고양이는 쥐를 잡고 개는 집을 지키는 것으로 밥값을 하였다.
나는 고양이보다 개를 좋아하였다. 개는 내가 산보를 나가거나 소를 몰고 풀을 뜯기러 나갈 때는 즐거운 듯이 따라 나서는가 하면 내가 외출하였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꼬리를 흔들며 반겨 주었다.
고양이는 나를 따르지 않았다. 기껏해야 나를 보고 도망치지 않을 뿐이지 나에게 가까이 오지도 않고 꼬리를 흔들지도 아니하였다. 아무리 내가 상냥한 표정을 짓거나 쓰다듬어 주어도 도무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짐승을 보거나, 하다못해 꿈틀거리며 기어 다니는 벌레를 보아도 언제나 배우고 깨우치는 것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꽤 나이가 들어서도 고양이와 개를 보면서 특별히 배우는 것이 없었다. 개처럼 예민한 후각을 갖출 수도 없고 ‘컹컹’ 짖어대며 침입자를 경계하기도 어렵고 재빠르게 달음질을 칠 수도 없었으며, 고양이처럼 밤눈을 잘 볼 수도 없고 쥐를 잘 잡을 수도 없다는 생각은 하였어도 도무지 그들을 본받는다는 생각은 해 본 일이 없었다.
사람은 고양이에게서 본받을 것이 많다고 한다.
첫째로 고양이는 호기심이 많아서 무엇이나 잘 살펴보고 건드려 보면서 무슨 물건인지를 알아보려고 애쓴단다.
둘째로 고양이는 자존심이 강하여 사람에게 아부할 줄을 모른다고 한다. 아무리 사람들이 귀여워하여도 그저 침묵할 뿐, 꼬리를 흔들며 야단법석을 떨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로 고양이는 고독을 즐긴다고 한다. 개가 아무리 사람을 따라다니며 즐겁게 놀아도 고양이는 홀로 고독을 즐길 줄 알고, 소리 나지 않게 한가로이 숨을 죽이고 있다가 쥐가 나타나면 잽싸게 덮친다고 한다.
고양이는 정말 훌륭한 학자의 모습처럼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주체성이 강하고 탐구심이 많은 특이한 동물인 것 같다. 이제 나는 너무나 무관심하였던 고양이라는 동물에 대하여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된 셈이다. 고려대학교 명예 교수 최재석 선생은 일찍이 ‘고양이의 특성을 이해하고, 학문하는 사람은 마땅히 고양이의 마음(猫心)을 본받아야 한다’고 했다는 말이 전한다.
학문하는 사람은 고양이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사물을 관찰하고 사색하고 탐구하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고대 서양의 철학자들이 우주를 이루고 있는 삼라만상에 대하여 경이로움을 느끼고 골똘히 탐구한 것도 일종의 호기심이 발로된 것이다. 인생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생은 무엇을 탐구해야 하며 무엇을 소망해야 하는가. 우주와 자연과 인간의 본체는 무엇인가. 진리란 도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가. 인륜은 무엇이며 도덕은 무엇이며 성스러운 것, 착한 것, 아름다운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학문하는 사람은 고양이처럼 자존심을 가져야 한다. 권력자에게 아부하여 학문을 왜곡해서는 절대로 아니 되며, 재물의 유혹에 이끌려 학문을 왜곡해서도 아니 된다. 중세의 유럽에서 교황과 국왕의 부당한 간섭에 저항하여 학자들이 칼리지(college, collegium, 조합)를 만든 것처럼 학문하는 사람은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학자가 자존심을 지키는 것은 스스로 잘 난 체 하거나 교만해 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학문을 위하여 정열을 불태우는 것이며 어떠한 위협이나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학문을 지켜 나가는 것이다.
학문하는 사람은 고양이처럼 고독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학문하는 사람이 장돌뱅이처럼 안 가는 곳이 없이 떠돌면서 약방의 감초가 되어 놀아나다 보면 학문이라는 본령을 지켜나가기가 어렵게 된다. 더구나 자기의 학문에는 정성을 기울이지 않고 세속적인 단체에 관심을 가지고 엉뚱한 직책(감투)을 탐해서는 안 된다. 학문은 끊임없이 관찰하고 추리하고, 체험하고 독서하고 궁리함으로써 조예가 깊어진다. 학문은 분주하게 돌아다녀야만 할 때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기나 긴 고독 속에서 사색하지 않으면 아니 될 때가 많다. 고독은 사색을 가능케 하고 사색은 학문을 깊고 넓게 하며 이론적 수준을 드높여 준다. 시정배들은 고독을 두려워하여 주색잡기를 일삼지만 학문하는 사람은 고독을 즐기고 고독 속에서 자아를 성취해 나간다.
학문하는 사람은 고양이의 마음을 배우고 고양이의 성품을 본받아야 한다. 나이가 적거나 많거나, 직장에 근무하거나 퇴직을 하였거나 끊임없이 독서하고 궁리하고 마치 영원한 유치원생처럼 묻고 또 묻고, 자존심과 긍지와 사명감을 가지고, 고고한 노송처럼 고독을 이겨내는 것이 학문하는 길인 줄 믿는다.
권력과 재물의 유혹에 빼져 날뛰고 돌아다니는 학자들은 마땅히 고양이의 성품을 거울삼아 끊임없이 탐구하고 뜻을 세우고 고독과 싸워나가기를 바란다.
(김용옥 교수의 고전강의 ‘노자와 21세기’를 듣고)
지 교 헌 / 전 청주교육대학교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출처 : http://blog.daum.net/d424902fool
조선시대 선비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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