晩秋의 소묘(素描)
가을빛이 눈부시다. 북한산 계곡물도 쪽빛이다. 마치 거울을 비쳐 보는 듯, 얼음 장 속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오늘은 찬 서리가 내린다는 霜降, 하루가 다르게 도심까지 가을빛으로 물들어간다. 어제 찬비가 내린 탓인가? 지난 주말엔 직원들과 양평에 있는 예봉산(683m)에서 체육대회를 열었다. 다산 선생 탄신250주년을 기념한 산행과 생가와 유적지, 수종사, 인근 두물머리를 남한강변의 자전거 길로 답사했다. 이 고혹적인 계절에 우리 스스로가 한 폭의 풍경이 된 것 같아 조금은 덜 미안하다.
일요일의 백운대도 가을 산행 인파로 넘쳐났다. 인수봉·만장봉과 삼각을 이루는 정경이 선연하다. 골짜기의 단풍 품새도 더 빛난다. 오봉 사이로 바라보는 한강이 마치 옥양목 띠를 두른듯하다. 내 삶의 보금자리를 멀리서 확인하는 느낌도 살갑다. 오랜만에 암벽도 좀 타보며 깊어가는 晩秋에 흠뻑 빠져 든다. 바위를 타고 올라간 담쟁이덩굴이 온통 선홍빛 꽃을 피웠다. 난지도 하늘공원의 억새도 은빛을 휘날릴 테고 구절초도 청초한 기품을 갖출 것이다. 지금 가을의 전설이 우리 곁에 와있다.
어린 시절, 원근이 투영된 앞 동네 감나무가 석양빛에 빛날 때면 그 황홀감에 전율하곤 했다. 지루한 장맛비가 잠시 그칠 때 산에 오르면 졸참·갈참·신갈나무 밑엔 새끼 도토리가 무수히 땅에 떨어져 있음을 발견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키 큰 나무 주변을 둘러보면 벌써 잔가지들을 땅으로 먼저 털어내고 훨씬 성긴 몸으로 오롯이 서서 가을채비를 한다.
질감 있는 느티나무나 은행나무 잎이 소슬바람에 낮은 지붕 위나 보도위에 떨어져 켜켜이 쌓이는 순간을 지켜보노라면 왠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연초에 삶의 길잡이로 늘 존경하던 분들이 일찍 이승을 떠나셨다. 아직도 그 분들과의 갑작스런 별리가 전혀 실감나지 않는다. 한 피를 나눈 누님과 조카도 유명을 달리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 이별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떠나신 분들은 이미 사시사철 시간이 입혀주는 옷으로 갈아입으시고 그 자신이 산속의 풍경이 되어 또 다른 새로운 탄생을 지켜보고 계실 터이다. 가을은 절정의 순간에 모든 걸 내려놓을 줄 아는 겸허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건 아닐까? <大學>에선 ‘모자람도 지나침도 없는 사랑의 실천’을 ‘止於至善(지어지선)’이라고 한다. 산행에 동반한 아내는 알밤과 도토리를 주웠다며 별식을 준비해 왔다. 홀연 내가 이승을 떠나면 아내는 과연 두 아이들을 잘 건사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생전에 연로하신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독백처럼 자주 되뇌셨다.
“형제자매간에 우애 있게 살아라, 기죽지 말고 잘 참아내라! 나 떠난 후에도 ‘春崗’의 후예임을 한시도 잊지 마라!”
晩秋에 졸시 <잠자리 날개처럼>으로 인사드린다.
늘 건강하시길.......
잠자리 날개처럼
말간 사랑을 보려거든
가을 들판으로 나가보라
始原의 빛깔로
태고의 시간으로 회귀한 지금
세상은 더욱 나지막하게 다가온다
천상의 바다
홍시 같은 석양
소슬바람 타고 온 달빛
멀미나는 단풍이 선연한 그림자로
어머니 자태를 모과에 깊게 드리우면
포실한 알토란은 기다림으로 또 알싸해진다
자, 이제 돌아가자. 무서리가 내린다
은빛 억새가 브람스를 연주하고
가을 꽃자리가 서성거리는 晩秋다.
- 12년 10월 霜降에 -
정 순 영 / 서울중앙우체국장
사진출처 :유형민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