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름
한동안 이름을 잊고 살았다.
잊은 건지 잃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집 새댁으로, 누구 마누라로, 누구누구 엄마로만 살았다. 이름 없이 사는 동안 나 또한 실종되었을 것이다. 이름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찾기 위해서, 어디론가 떠내려간 나를 건지기 위해서, 이 골 저 골을 허우적거렸다.
글을 쓰고 나서부터 몇몇이 다시 이름을 불러주기 시작하였다. 아무개 씨에서 아무개 님으로, 아무개 선생님이라 부르는 사람도 생겼다. 촌스럽고 무뚝뚝한 내 이름이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렵게 찾은 이름을 분실하지 않으려고 깊은 밤 불침번을 서기도 했다.
살다보니 그때그때 이런저런 이름이 생겨나기도 했다. 시장에 가면 아주머니요, 백화점에 가면 고객님이요, 미용실에 가면 사모님이다. 운전미숙으로 접촉사고라도 나는 날에는 ‘이 아줌마가!’하는 삿대질도 감수해야 한다. 처음에는 쑥스럽다가도 이내 익숙해지는 것이 호칭이어서 사모님이라 부르면 사모님인 척, 선생님이라 부르면 선생님인 척 산다.
올 가을, 나는 다감하고 헌칠한 한 청년의 장모님이 되었다. 잘 키워놓은 남의 아들에게서 어머니 소리를 들을 때마다 염치없이 뿌듯한 기분이 든다. 얼마 후에는 할머니도 될 것이다. 할머니란 호칭이 달갑지는 않지만 내 아이의 아이에게 따스한 어른으로 기억되는 일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쓸쓸하면서 포근한 이름, 할머니. 할머니는 청춘을 반납한 여자에게 수여되는 마지막 작위일지도 모른다.
먼 길 떠나는 어른들을 배웅할 일이 잦아진 요즘, 인생의 말년에 또 하나의 이름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병원으로 왔다 병원에서 가는 인생, 비명횡사나 사고사가 아니고는 먼저 가신 분들의 마지막 이름이 하나같이 000환자님이었다는 사실이 간간히 나를 슬프게 한다.
최민자 / ‘손바닥 수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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