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H 형(兄)께

송담(松潭) 2011. 7. 13. 14:56

 

 

H ()

 

 

 

 최근 저는 형이 처해있는 어려운 상황을 지켜보면서 고향후배이자 인생친구로서 형에게 어떤 조언을 해야 하는지 무척 고민스러웠습니다. 사람을 사귐에 있어 군자의 사귐은 맑기가 물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달기가 꿀과 같다(君子之交 淡如水/小人之交 甘如蜜 - 장자)하였는데, 사실 저는 그동안 형한테 꿀과 같이 듣기 좋은 말만 줄곧 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태도가 과연 진정으로 올바른 태도인지 의문을 갖게 되었고 이제는 형에게 솔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0여 년 전, 형은 여러 차례 우여곡절과 난관을 끝까지 극복하고 국회입법고시, 행정고등고시를 합격하였으며 저는 가까운 곳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형은 명석한 두뇌는 물론 불굴의 투지를 가진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 형은 경찰로 전직하여 경찰청 간부, 일선 경찰서장, 그리고 권력의 핵심부서인 청와대 (당시)법무비서관실에서 근무하면서 화려한 경력을 쌓아갔습니다. 이러한 경력을 바탕으로 형은 민선 자치단체장의 꿈을 이루고자 명예퇴직을 한 후 작년 6월 고향에서 민선 5기 군수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고 선전하였지만 무소속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정치상황은 내년에 국회의원선거가 있고 국회의원이 누가되느냐에 따라 차기 민선 단체장선거에서 공천을 받아내는 문제가 걸려있어 이번 국회의원선거부터 정치행보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민선 단체장 5기가 시작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사실상 물밑에서 선거전이 개막된 것입니다. 때문에 형도 바로 선거조직을 가동시켜야 하는데 형은 지금 경제문제에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형수님께서 전혀 협조하지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재도전의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 형에게 이 시점에서 저는 감히 조언합니다. 먼저 돈줄을 쥐고 있는 형수님으로부터 동의를 얻고 '지금부터 형수님과 함께 선거준비에 올인'하지 않으면 앞으로 공천을 따내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이 선결조건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형은 정치를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형이 작년 선거에서 나름대로 선전했던 것을 염두 해 두고 다시 도전한다면 다음 안수정등(岸樹井藤)’의 고사처럼 될 가능성이 큽니다.

 

 

 안수정등(岸樹井藤)

 

안수(岸樹 강기슭의 나무), 강가에 겨우 서 있기는 하지만 만일 폭풍을 만나면 견디지 못하고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큰 나무와 같이 위태롭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정등(井藤)'우물속의 등나무'라는 말이다.

 

한사람이 망망한 광야를 가는데, 무서운 코끼리가 그를 쫓아오고 있었다.

코끼리를 피하여 정신없이 달아나다 보니 언덕 밑에 우물이 있고,

등나무 넝쿨이 우물 속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그 사람은 등나무 넝쿨을 하나 붙들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우물 밑바닥에는 독사 네마리가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고,

또 우물 중턱의 사방을 둘러보니 작은뱀들이 혀를 낼름거리고 있다.

 

할 수 없이 등나무 넝쿨을 생명줄로 삼아 우물 중간에 매달려 있자니,

두 팔은 아파서 빠지려고 하는데, 설상가상으로 흰쥐와 검은쥐 두마리가

번갈아 가며 그 등넝쿨을 쏠아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만일 쥐가 쏠아서 등나무 넝쿨이 끊어지거나, 두팔의 힘이 빠져서

아래로 떨어질 때는 독사들에게 잡아먹히는 수밖에 없는 신세다.

 

그 때 머리를 들어서 위를 쳐다보니, 등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다섯 방울, 이렇게 떨어져서

입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렇게 꿀을 받아먹는 동안엔

자기의 위태로운 처지도 모두 잊어버리고 황홀경에 도취되었다.

 

 

 

 이 이야기는 급박한 상황에 놓여있으면서도 그 꿀 한 방울에 애착하여 위태로운 것을 모른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형의 인생행로를 보면 역전드라마를 이룰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는 고시공부와 다릅니다. 그리고 비록 형이 입지전적인 인물이며 많은 인맥과 다방면에 탁월한 실력을 갖추고 있어 자치단체 장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조건을 갖춘 인물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한 행정경력을 가졌더라도 노인 인구가 많은 농촌지역에서 지방선거는 누가 밑바닥을 철저히 닦았느냐와 민주당 공천여부가 승패를 좌우합니다. 때문에 선결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년의 득표 등 몇 가지 가능성의 요소에 이끌려 다시 도전하게 되면  안수정등(岸樹井藤)의 형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깊이 숙고해야 합니다.

 

 끝으로 인생은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였다 하여 실패한 인생을 산 것은 아닙니다. 이제 형이나 저같이 이순(耳順)의 나이에는 버리고 비울 줄도 알아야 합니다. 정치에 성공하면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겠지만 정치는 곳곳에 생명을 위협하는 암초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또한 정치는 한때 성공신화를 썼더라도 종국에 가서는 그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여기서 고() 노무현 전직 대통령께서 서거하시기 전에 남기신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정치를 하면 결국 돈도 친구도 없는 노후를 보낼 가능성이 어느 직업보다 높을 것이다.” 그래서 정치는 가난과 고독을 가져다준다.”는 말입니다.

 

 형께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말을 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말을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그동안 형에게 별다른 도움도 되지 못한 후배이지만 진정으로 드리고 싶은 고언(苦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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