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새로운 방법론을 찾아서
가을밤이 깊어서 인가. 조용한 깨우침이 다가오는 듯하다. 돌이켜보면 얼마나 오만하게 살아온 삶이었던가. 나는 언제라도 한 번 진지하게 기도(祈禱)하며 겸허해 본 적이 있었는가. 건강에 적신호가 한 번 왔음에도 불과 7개월 정도 자숙하다가 오히려 더 용감무쌍하게 술·담배를 계속하면서 자기방식의 삶을 고집하고 있으니 만용을 부리고 있는 것이 맞다. 더군다나 아직도 나이 값을 못하고 술집을 전전했으니 우(愚:어리석음)에 우(愚)를 덧칠하며 살아온 삶이 아닌가.
최근 지인들과 지리산 콘도에서 1박을 했는데 그 모임에서 내가 30년 이상 다닌 술집(카페)에서 은퇴하겠다고 쓴 글을 재미삼아 읽어주었더니 어느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옛날 어느 바람난 아가씨가 자신을 통제할 각오로 면도칼로 눈썹을 밀어버렸는데, 며칠 못가 다시 눈썹을 까맣게 그린 화장을 하고 밖을 쏘대고 다녔다”고 말하면서 나도 곧 그와 비슷하게 될 것이라고 죠크를 하여 참석한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그동안 악습을 고치기 위해 수없이 각오와 다짐을 했지만 언제나 도루아미타불이었다. 그 친구의 농담어린 진단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물론 내가 술과 친하지만 신통하게도 완벽에 가까이 실수가 없기에 남들이 볼 때에는 거의 무결점(無缺點)이지만, 경제적 낭비가 너무 컸기에 이것이 내가 생을 고민하게 하는 가장 핵심문제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스스로 ‘정신분석’을 해보기도 한다. 도대체 어디가 잘 못 된 것일까? 무엇 때문에, 특별한 외적 자극도 없는데 왜 이토록 방황을 지속하는 것일까? 잠재의식 속에 숨겨진 원인인자를 찾아내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내가 무슨 수로 이를 규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오늘 갑자기 새로운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신이 단정한 ‘악습’이라는 것이 최소한 ‘중독증’이라는 자가진단이 가능했고 이러한 전제하에, 이제는 내 힘으로 되지 않으니 다른 힘을 불러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통제력의 한계선상에서 출구가 있다면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드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최근 읽은 글에서 무엇이든 중독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위대한 어떤 힘이 자신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스스로 모든 것을 통제하고 책임진 자는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더 큰 힘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이제 나도 오만을 버리고 무언가 절대자를 찾을 시점에 와 있다.
갑자기 아들한테 전화해서 이번 주부터 교회에 나가겠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동안 나의 종교관은 “신(神)은 인간의 창조물”이라는 신념으로 일관하면서 무신론자편에 서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오만한 삶을 고집해서는 내 생의 고질병이 치유되지 않을 것 같다. 내일 아들이 중간고사를 마치고 서울에서 시골로 잠깐 다녀간다. 이번 주일에는 아들의 소원대로 교회에 가보려 한다. 아들이 많이 기뻐할 것 같다. 설령 바로 신을 받아드리지 않더라도 생의 ‘위험천만한 외줄타기’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절박감에서의 선택이다.
그토록 무리했음에도 아직까지 건강을 지켜준 것은 누군가 절대자가 내게 베푼 마지막 관용으로 여겨진다. 그 관용의 끝자락에서 정신을 반짝 차리자는 것이다. 더 이상 남들보다는 내 자신 스스로에게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아야 한다. 길고 긴 방황의 길에서 이제는 기도(祈禱)하는 삶으로의 전환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