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지침서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87년 2월 어느 날 광주 주월동에서 살았던 나는 집에서 멀지 않은 산, 옥녀봉에 올라 저 멀리 무등산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기원했다. “오! 태양이시여! 나에게 희망과 기회를 주소서!”라고. 당시 나는 광주시 서구청에 근무하면서 내무부 전입시험을 치루고 난 후였다. 그때 내무부 본부 전입은 곧 출세였다. 관선 단체장 시절이라 내무부에서 15년 정도 근무하면 별다른 하자가 없는 한 군수는 받아 놓은 밥상이었다. 옥녀봉에서 기도는 이루어져 광주시청 산하에서는 유일하게 내가 합격되어 그해 2월 25일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 땅에 입성했다.
그 후 세월은 흘러 노태우 정부가 지나고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선자치시대가 개막되었다. 동시에 나의 희망은 낙망이 되었고, 11년의 서울생활을 청산하는 결과까지 왔다. 나의 갑작스러운 타 부처 전출과 동시에 낙향은 나의 가족은 물론 주변사람들까지 놀라움을 주었다. 소위 권력부서에서 비권력부서로의 자진 이동은 나의 인생사에 있어서도 상당한 사건이었다. 스스로의 결정, 이러한 나의 선택이 돈키호테식 용단으로 현명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경솔한 판단으로 보장된 출세를 스스로 포기한 우둔한 행동이었지 아직은 결론짓기 어렵다.
낙향의 사유인즉 “인생은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는냐가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특별한 희망도 없는 서울 생활, 꾸역꾸역 버티고 사느니 출세를 못하더라도 하루하루 여유 있게 살자는 것이었다. 좋게 포장하여 말하자면 ‘목표 지향적 삶’보다는 ‘과정 지향적 삶’을 살겠다는 것이 새로운 길을 찾는 변이었다. 물론 그곳에 남아있는 전입 동기들은 거의 다 서기관이 되었고 부이사관을 향하고 있어서 가끔 신문에 인사란을 보고 약간 씁쓸함은 느꼈던 건 사실이지만 나는 이러한 선택을 결코 후회할 수 없다. 왜냐면 ‘과정의 순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삶이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낙향하여 공기 좋은 소도읍에서 평온하게 살고 있지만 나의 머리 속은 좀 복잡하다. 뇌리에 끈질기게 자리 잡고 있는 군수(郡守)의 꿈. 난공불락(難攻不落)이요, 철옹성(鐵甕城)인 민선 자치단체장! 누군들 한 번쯤 꿈꿔보지 않았으리오마는 지금까지 나는 남모르게 상당이 중병(重病)을 앓아왔다. 내가 낙향하여 고향인 고흥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고흥에서 광주로 가는 길목인 벌교읍에서 9년을 버티고 있는데, 이는 엄청난 철옹성을 바라만 보고 속수무책으로 있는 형국과 같다.
그동안 나는 수없이 번민하고 갈등해 왔다. ‘과정의 순리’를 거역하는 몸부림, 그리고 신기루와 같은 꿈을 잡으려는 과대망상. 수없이 포기 했으나 비온 후에 더 잘 자라는 잡초처럼 늘 되살아나는 끈질긴 나의 욕망. 때론 ‘생명을 생명답게 하는 꿈과 이상’이라는 말을 외쳐대기도 하고, 또 어느 날엔 ‘인생이 별거냐, 안분지족(安分知足)이 최고다.’라고 다짐도 했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내가 정치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한 번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고 이것을 향후 전개될 실패를 미리 막는 내 인생의 지침서로 만들고 싶었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나의 독백인 동시에 다짐이 될 지침서를 작성하고 만천하(블로그)에 공표하는 바이다. 이쯤 되면 나 역시 나르시시즘 중증환자임이 틀림없다.
안되는 이유로
첫째, 준비하지 하지 않았다.
내가 민선군수에 출마하려 했다면 수년 전부터 준비를 했어야 했다. 그 준비의 1순위가 돈이다. 그런데 나는 ‘움직이는 중소기업’이라고 칭하는 맞벌이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모으지 못했다. 나의 소득은 대부분을 술의 향연으로, 어디서나 술값 먼저 내는 것은 과히 선수급이었으니 가정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다.
준비하지 않은 것 중 또 하나는 그동안 고향관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내가 고향에 가서 군수출마 운운하면 그곳 사람들은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할 것이다. 나는 사전 준비가 없었기에 미래의 기대 또한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제 나는 준비 없는 꿈은 결코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직시하고 망상과 집착을 끊어야 한다.
과거는 지나갔다
과거는 잘했건 못했건
이미 지나가 버리고 지금 없는 것이다.
잘했으면 한번 자축하고 지워 버릴 일이요
잘못했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한번 명심하고
불에 태워 버릴 일이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에
인생의 여정에 어떠한 집착도 금기이다.
바람에 몰려가는 구름을 보고
이 지혜를 받아들이라.
- 곽노순의《큰 사람 - 그대 삶의 먼동이 트는 날》중에서
둘째, 이상주의자는 정치판에서 성공할 수 없다.
나의 정치관은, “정치를 하려면 자기 돈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남의 돈을 끌어들여 출마하면 당선 후 보상을 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교도소 담벼락에서 곡예를 부리는 것과 같이 되며, 고향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뜻은 거짓말 중 상거짓말이 되고 만다. 따라서 나는 경제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 자신이 모은 재산을 고향을 위해 환원한다는 의미에서 몇 십억이 들더라도 자기 돈으로 선거자금을 조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당선 후에 자유롭게 그리고 올바르게 군정(郡政)을 수행할 수 있다.
이런 사고방식의 소유자가 어찌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모 정치인이 “정치는 진흙탕 속에서 연꽃을 피우는 것”이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정치는 세속의 더러움과 몸을 섞으면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연꽃은 진흙탕 속에서 피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멀리까지 청아한 향기를 피워낸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방식을 따르고 싶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정치인들이 선거에 승리하면 입신의 꽃은 피울 수 있을망정 그 청아한 연꽃처럼 피어날 수 있겠는가. 차라리 나는 알베르 까뮈의 말대로 “자신 속에 위대함을 지닌 자는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말을 신봉하고자 한다.
정치는 현실인데, 현실을 수용할 수 없는 자가 어찌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세째,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세상에, 아니 우리 고향 출신 중에서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유능하신 분들이 어디 한 두 분인가. 지천으로 전국 곳곳에 계신다. 내가 과거에 내무부 본부에서 근무했다고, 내가 군 단위 기관장인 우체국장이었다고, 내가 경영학석사(MBA)출신이라고 해서 얼마나 경쟁력이 있으며 설득력이 있겠는가. 도처에 도사리고(?)있는 유능한 정치지망생들과 나를 같은 수준으로 느낀다면 이는 상당한 착각일 것이다. 훌륭한 그분들을 위해 나는 물러서야 한다.
어느 날 고향 친구 S가 나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겸손이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다.”라고. 참으로 명언이다. 친구는 그 말을 순수하게 자기가 생산해 냈는데, 아포리즘(Aphorism)이 어찌 위대한 자들만의 전유물인가. 그 친구의 조언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터.
그대 큰 길이 되지 못할진대
호젓한 오솔길이 되라.
그대 만일 태양이 되지 못할진대
별이 되라.
성공과 실패는 크기에 달린 것이 아니다.
무엇이 되든 가장 좋은 것이 되라.
- 더글럿 머록 -
넷째, 무작정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것이 아니다.
현재 고흥군 박병종 군수는 고흥에서 ‘신화를 창조’한 사람이다. 나는 그분을 한 번도 본적이 없지만 고향친구들로부터 들어서 안다 박군수는 축협조합장을 지냈고 도의원 재직중(1년)인 작년에 군수에 출마했다. 그리고 앞전 민선3기에 출마하여 낙선한 경험이 있고, 작년 선거에서는 민주당 공천과정에서도 해양수산부 차관출신을 물리치고 공천을 딴 사람이다. 민주당 바람을 타고 당선되었지만 성공신화를 창조한 것은 틀림없다.
농고출신이 군수가 되었는데 “내가 못할 바 뭐가 있냐”고 섣불리 덤비면 큰 착오다. 박군수가 고지(高地)를 점령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피땀을 흘렸겠는가.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박군수를 흉내 내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분을 시기하고 질투해서도 안 된다. 박군수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대표적 성공사례다. 그분의 성공을 축하하고 나는 나의 길을 가면 된다.
갈 림 길
지금까지 살면서
수많은 갈림길을 지나왔다.
한 순간의 선택으로 가슴을 치며 통곡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이 전적으로 내 탓임에도
모든 것을 상대방 탓으로
돌려버린 일이다.
- 정은미의 《아주 특별한 관계》중에서 -
시인 천상병은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 길을 간다"고 노래했다.
내일의 운명을 가르는 갈림길에 섰을 때,
무엇이 '나의 길'인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나의 길'은,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 다른 길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며,
나의 책임아래
세상 끝까지 가야하는 길이다.
다섯째, 지금 이대로의 행복을 간직하자.
신(神)은 모든 것을 다 주지 않는다. 신께서 나에게 행복한 가정을 주셨으니 이것이 가장 큰 선물이다. 어느 날 나는 문뜩 우리가 살아 숨쉬며 마시는 공기의 고마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바로 죽듯, 만약에 공기가 없다면 우리 역시 바로 죽을 것이니 이렇게 당연하게 받아드린 공기도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참으로 소중한 존재다. 더군다나 나는 대한민국의 어느 곳보다 청량한 공기로 가득 찬 한적한 시골에서 살고 있지 않는가. 공기마저도 이렇게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데 행복한 가정은 나에게 너무도 벅찬 감격이다.
또한 나의 좌우명 ‘수신제가(修身齊家)’는 수신제가 이후에 치군평천하(治郡平天下)가 아니다. 나에게 있어 ‘수신(修身)’은 평생 붙잡고 있어야 할 미해결의 과제일 것이고, ‘제가(齊家)’라 함은 나와 처자식만 잘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어려운 동생들과 자매까지 행복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그리고 수신제가(修身齊家)와 더불어 나의 이웃들과 ‘나눔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가는 인생의 길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법정스님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 지금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는 당신의 자리가 정답이다.”라고. 겸허하게 받아드리자.
다음 글로 나의 인생 지침서 작성을 마친다.
무엇이 성공인가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 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 랠프 월도 애머슨
<지침서 작성일 : 2007.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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