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있는 삶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대통령의 꿈을 안고 내 건 슬로건이 ‘저녁이 있는 삶’이다. 이 슬로건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경쟁에 지치고 시장만능주의에서 소외되어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노동자와 서민을 배려하고 따스하게 감싸주려는 철학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13위의 경제규모로 많은 국부를 이루었지만 성장의 과실은 일부 소수 부유층에 집중되었고, 그들의 탐욕은 끝없이 그칠 줄 모르는 까닭에 성장의 어두운 그늘 아래서 많은 이들이 고통 받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제 우리가 가야할 공동선(共同善)의 방향은 경쟁을 마냥 부추겨서 국민 모두를 아귀다툼으로 몰 것이 아니라,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면서 거기에 여유로움을 더하는 것이 진정으로 행복한 세상을 여는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저녁이 있는 삶’이야말로 국가최고지도자가 추구해야 할 올바른 목표임이 틀림없다.
‘저녁이 있는 삶’이란 저녁이라는 시간과 집이라는 공간이 합쳐져 만들어진 행복의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화두이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어떠한 저녁을 맞이하여 왔는가. 전 국민의 3분의 1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대도시에 모여 사는 우리들 도시의 저녁과 밤은 어떠한가. 도시는 밤이 되면 불야성을 이룬다. 그곳에서 초저녁은 뭇 생명들이 화려하게 춤을 추는 환희로 시작되지만, 이윽고 밤은 광포하게 질주하는 자들의 야만성이 드러나는 광란의 장이 되기도 한다. 삶에 지친 영혼들이 비틀거리며 구토(嘔吐)하기도 하고, 절망의 벼랑에 선 자들이 신을 원망하며 울부짖는 밤이기도 하다.
유치원에 가기 전부터 영어에 몰입하게 하고 오직 무한경쟁으로 인간성을 말살하고 있는, 교육과 사회시스템에 신음하고 있는 우리들 청년들의 밤 또한 어떠한가. 그들의 밤은 낮의 연장일 뿐이고, 도서관의 딱딱한 의자는 그들을 초조하고 불안하게 하며 아직도 한참 싱싱한 젊은 청춘의 에너지를 탈진시킨다. 그들은 밤이면 망망한 미래에 대한 생각에 희망보다는 슬픈 눈망울로 밤하늘의 별을 헨다.
우리들의 밤이 이럴진대 국민소득 2만불의 국가가 가야할 길은 어디인가. '중단 없는 전진(Keep on, keep on running)'이 능사가 아니다. 이제는 옆과 주변을 살피면서 가야한다. 다소 느리더라도 노동자, 청년, 서민들을 보살피면서 가야한다. 세계 일류국가, 선진국가란 국부가 극대화되는 것이 아니다. 삶의 질이 우선이다. 아무리 많은 부를 쌓았더라도 자살률 세계 1위 국가라면 잘 못 돼도 한참 잘 못 된 것이다. 국민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안겨주는 것은 참으로 멋진 좌표설정이다. 올해는 국가중차대한 대선이 있는데, 말로만 정의를 외치며 분노하는 것은 진정한 분노가 아니다. 실천이 따라야 정의는 실현될 수 있다.
우리들 개인들에 있어 ‘저녁이 있는 삶’은 어떻게 해야 할까. 눈 내리는 밤, 노란 창문을 통해 비치는 가족들의 도란도란한 동화 속 풍경이 아니라도 좋다. 함께한 저녁잡상에서 끈끈한 가족애를 만들어보자. 꼭 일찍 귀가하여 가족과 함께 저녁시간을 같이하는 것만이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니다. 형제간에 화해하고 우애를 다지며, 서로 돕고 사랑하는 것도 ‘저녁이 있는 삶’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저녁이 있는 삶’은 더 확장될 수 있다. 이웃에게도 따뜻함을, 연민을, 배려를 다 할 때 우리 모두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 2012. 7.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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