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소유욕망’에 제동이 걸리다

송담(松潭) 2014. 2. 8. 07:04

‘소유욕망’에 제동이 걸리다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땅은 몇 평이나 됩니까? 이 물음은 제일 먼저 내 자신에게 던지고 싶은 물음이다. 남들의 예상과는 달리 나는 예순이 넘어서야 고향에 시가 6백만 원 정도의 내 명의의 땅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것도 친척의 잘못으로 경매에 넘어갔던 선친의 묘소가 있는 땅을 되찾아 온 것이다.(약간의 복잡한 과정과 사연은 생략하고) 아무튼 비자발적으로 우연히 땅을 소유하게 되었다.

 

집사람도 불과 3년 전에 전원주택 부지를 약간 소유하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가 평생을 통해 늦깎이로 땅을 소유하게 되었는데 며칠 전 집을 지으려고 측량을 해 보니 위쪽 땅이 우리 땅을 36평 정도 점유하고 있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처음에는 시골 땅이고 하니 그대로 두겠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술자리에서 친구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무조건 찾으라고 조언해주었다. 그 다음 날 나는 곧바로 흥분한 상태로 돌변했고 소유를 향한 탐욕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어 경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현황 측량’을 다시 실시하고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땅 소유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떠한 방식으로 정리를 해야 할 것인가 그 과정, 방법, 수단 등을 고민하게 되었다. 지적 공부상 소유권을 확보하는 것은 마땅한 권리이지만 누군가와 다툼을 예상하니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소유(또는 토지)에 대한 ‘경계 없는 탐욕’을 가진 이땅의 부자들을 비난하여 왔는데 막상 내 자신이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니 그들과 별 다름없는 존재임을 스스로 확인하게 되었다. 좀 더 가져야 한다는 탐욕이 그 경계를 넓히려고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새벽 톨스토이의 우화적 단편〈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가 생각났다. 거기에는 “걸어갈 수 있는 만큼의 땅을 소유할 수 있다는 제안을 받은 주인공은 걷다가 지쳐 죽었고, 그가 얻은 것은 무덤의 땅 2m였다”라는 내용이다. 인간의 무한한 탐욕과 그것의 허망함을 알려 주는 교훈이 담겨있다. 이것은 나에게 이번 상황을 대처하면서 흥분을 진정시키고 심호흡을 하며 느긋하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시사해 주었다.

 

곧 집을 짓기 위한 토목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하고 이왕에 말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차후 분쟁을 막기 위한 방법이라 보지만, 나중에 공사를 별도로 하여 비용이 더 발생하더라도 당장 경계를 넓히려고 서둘지 말고 상대방의 충분한 동의를 얻어 순리적으로 처리해야겠다. 그분도 전원으로 내려오면 이웃이 될 것인데 좋은 이웃으로 함께 살려면 시작부터 갈등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톨스토이가 인간들의 ‘브레이크 없는 욕망’ 에 던진 제동의 메시지는 나에게도 브레이크 폐달을 밟게 해 주었다.

 

(201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