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치유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송담(松潭) 2009. 8. 16. 16:46

< 1 >


괜찮아



초등학교 때 우리 집은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작은 한옥이었다. 골목 안에는 고만고만한 한옥 여섯 채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한 집에 아이가 보통 네댓은 됐으므로 골목길 안에만도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줄잡아 열 명이 넘었다. 학교가 파할 때쯤 되면 골목은 시끌벅적,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어머니는 내가 집에서 책만 읽는 것을 싫어하셨다. 그래서 방과 후 골목길에 아이들이 모일 때쯤이면 대문 앞 계단에 작은 방석을 깔고 나를 거기에 앉히셨다. 아이들이 노는 걸 구경이라도 하라는 뜻이었다.


 딱히 놀이기구가 없던 그때, 친구들은 대부분 술래잡기, 사방치기,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등을 하고 놀았지만 나는 공기놀이 외에는 그 어떤 놀이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골목 안 친구들은 나를 위해 꼭 무언가 역할을 만들어 주었다. 고무줄놀이나 달리기를 하면 내게 심판을 시키거나 신발주머니와 책가방을 맡겼다. 그뿐인가. 술래잡기를 할 때는 한곳에 앉아 있어야 하는 내가 답답해할까 봐 어디에 숨을지 미리 말해 주고 숨는 친구도 있었다.


 우리 집은 골목에서 중앙이 아니라 모퉁이 쪽이었는데 내가 앉아 있는 게단 앞이 늘 친구들의 놀이 무대였다. 놀이에 참여하지 못해도 난 전혀 소외감이나 박탈감을 느끼지 않았다. 아니, 지금 생각하면 내가 소외감 느낄까 봐 친구들이 배려해 준 것이었다.


 그 골목길에서의 일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던 같다. 하루는 우리 반이 좀 일찍 끝나서 나 혼자 집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대 마침 골목을 지나던 깨엿 장수가 있었다. 그 아저씨는 가위를 쩔렁거리며, 목발을 옆에 두고 대문 앞에 앉아 있는 나를 흘낏 보고는 그냥 지나쳐 갔다. 그러더니 리어카를 두고 다시 돌아와 내게 깨엿 두 개를 내밀었다. 순간 아저씨와 내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주 잠깐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괜찮아”


 무엇이 괜찮다는 건지 몰랐다. 돈 없이 깨엿을 공짜로 받아도 괜찮다는 것인지, 아니면 목발을 짚고 살아도 괜찮다는 것인지.....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날 마음을 정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그런대로 살 만한 곳이라고. 좋은 친구들이 있고 선의와 사랑이 있고, ‘괜찮아’라는 말처럼 용서와 너그러움이 있는 곳이라고 믿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02년 월드컵 4강에서 독일에게 졌을 때 관중들은 선수들을 향해 외쳤다. “괜찮아! 괜찮아!”

 혼자 남아 문제를 풀다가 결국 골든벨을 울리지 못해도 친구들이 얼싸안고 말해 준다. “괜찮아! 괜찮아!”


 ‘그만하면 참 잘했다’고 용기를 복돋아 주는 말. ‘너라면 뭐든지 다 눈감아 주겠다’는 용서의 말.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네 편이니 넌 절대 외롭지 않다’는 격려의 말. ‘지금은 아파도 슬퍼하지 말라’는 나눔의 말. 그리고 마음으로 일으켜 주는 부축의 말. 괜찮아.


 그래서 세상 사는 것이 만만치 않다고 생각될 때. 죽을 듯이 노력해고 내 맘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나는 내 마음 속에서 작은 속삭임을 듣는다. 오래전 내 따뜻한 추억 속 골목길 안에서 들은 말 _ ‘괜찮아! 조금만 참아. 이제 다 괜찮아질 거야’

아, 그래서 ‘괜찮아’는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의 말이다.

 

 

 

< 2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네 면의 회벽에 둘러싸인 방 안에 세상과 단절되어 있으면서 나는 참 많이 바깥세상이 그리웠다. 밤에 눈을 감고 있을라치면 밖에서 들리는 연고전 연습의 함성 소리. 그 생명의 힘이 부러웠고,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 아래 드넓은 공간. 그 속을 마음대로 걸을 수 있는 무한한 자유가 그리웠고,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늦어서 허둥대며 학교가서 가르치는, 그 김빠진 일상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그리고 그런 모든 일상 - 바쁘게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을. 그렇게 아름다운 일을, 그렇게 소중한 일을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히 행하고 있는 바깥세상 사람들이 끝없이 질투나고 부러웠다.


 하루는 저녁 무렵에 TV를 보는데 유명한 보쌈집을 소개하고 있었다. 보쌈 만드는 과정을 보여 준 다음, 손님 중 한 중년 남자가 목젖이 다 보이도록 입을 한껏 벌리고는 큰 보쌈 하나를 입에 넣더니 양 볼이 볼룩볼룩 움직이게 씹어서 꿀꺽 삼키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상가집에 가면 보통 육개장, 송편, 전 등 자금자금한 음식들이 나오고 상추쌈이나 갈비찜 같은 음식은 나오지 않는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상갓집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먹는 것은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련을 남긴 채 이 세상을 하직하고 이제는 아무리 하찮은 음식일지라도 먹을 수 없는 망자 앞에서 보란 듯이 입을 쩍 벌리고 먹는 것은 무언의 횡포라는 것이다.


 보쌈을 먹고자 입을 크게 벌린 그 남자의 식탐, 꿀꺽 삼키고 나서 그의 얼굴에 감도는 찬란한 희열, 그 숭고한 삶의 증거 앞에 나는 지독한 박탈감을 느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바깥세상으로 다시 나가리라. 그리고 저 치열하고 아름다운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리라.


 그리고 난 이렇게 다시 나타났다. 나의 본래 자리로 돌아왔다. 다시 강단으로 돌아왔고, 아침에 자꾸 감기는 눈을 반쯤 뜬 채 화장실에 갔다가 밥을 먹고, 늦어서 허겁지겁 학교로 가는 내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왔고, 이젠 목젖이 보이게 입을 크게 벌리고 보쌈도 먹고 상추쌈도 먹고 갈비찜도 먹는다. ‘어부’라는 시에서 김종삼 시인은 말했다.


바닷가에 매어 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인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


 맞다.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인지 모른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노심초사했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 갈 것이다. 내 옆을 지켜주는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시 만난 독자들과 같은 배를 타고 삶의 그 많은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 3 >


 내가 살아 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다. 내가 남의 말만 듣고 월급 모아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한 것은 몽땅 다 망했지만, 무심히 또는 의도적으로 한 작은 선행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에 고마움으로 남아 있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남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다.




< 4 >


 이렇게 사랑은 버리고 버림받고 만나고 헤어지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거대한 흐름인가 보다. 때로는 사랑에 상처받고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어림도 없는 일. 어느덧 다시 그 흐름에 휩쓸린다.


사랑의 순환처럼 세월도 흘러 어느덧 찰스 강에 낙엽이 하나 둘씩 떨어진다. 치열했던 여름이 지나고 월든 호수에 비친 단풍나무가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운 가을이 왔다. 또한 가을은 찬란한 신파의 계절! 스산한 바람 속에서 떠난 사람을 생각하면서 눈물 한 방울쯤 떨어뜨려도 괜찮을 것 같은 계절이다.


 그리고 사랑을 버린 사람이든 사랑에 버림받은 사람이든, 다시 한 번 가슴 아프게 떠올리며 보석 같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랑의 추억이 있다는 것은 이 가을에 한껏 누릴 수 있는 커다란 축복이다.


장영희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중에서

 

 

 

 

 

 

 

 

 

 

 

* 장영희

서강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뉴욕 주립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교수이자 칼럼리스트.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했으며,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으로 올해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암투병을 하면서도 희망과 용기를 주는 글들을 독자에게 전하던 그는 2009년 5월 9일 향년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장 교수가 별세하기 하루 전에 인쇄된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과

 2000년 작 ‘내 생애 단 한번’으로 비상한 관심이 쏠렸다.
신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소아마비를 극복하고 암마저 떨쳐내려 애쓴

장 교수 삶의 마지막 9년을 담았다.

그녀는 완성된 책을 보지 못하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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