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치유

슬픔과 함께 담배끊기

송담(松潭) 2009. 1. 9. 17:20
 

 

슬픔과 함께 담배끊기



 근래에 우연히 두 중년 남성의 금연 성공담을 들었다. 한 창의적인 남성은 자신의 금연 방법을 들려주면서 ‘슬픔과 함께 담배를 끊었다’고 말했다. 그는 담배를 돌아가신 아버지라고 여겼다. 아무리 그리워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지 못하듯 담배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취했다. 흡연 욕구가 일 때마다 그리움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넘어섰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 놀랐다. 그의 방식은 흡연 욕구의 핵심을 가로질러 순식간에 문제의 본질에 닿는 은유를 내포하고 있었다. 담배를 무찌르거나 생에서 쫓아낸 게 아니라 슬퍼하면서 떠나보내기, 곧 애도 작업을 행한 거였다.


 그동안 이 지면에서 이따금 ‘애도’라는 용어를 언급해 왔지만 그 말은 우리에게 아직 낯설다. 애도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프로이트다. 그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자의 미망인이나 유족들이 특별한 감정적 태도를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사례들을 ‘애도와 우울증’이라는 짧은 논문으로 발표하면서 상실을 슬퍼하지 못하면 우울증이 된다고 정리했다. 애도 개념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더욱 발달했다. 인간에게는 생물학적 욕구뿐 아니라 애착의 감정이 중요하며, 애착 대상을 잃거나 애착 감정을 박탈당하면 심각한 심리적 타격을 입는다는 이론이 등장했다.(존 볼비, 도널드 위니콧 등) 상실이나 박탈이 12살 이전에 발생할 경우 성인이 되어 정신적 문제들을 일으키며, 그러므로 상실 이후에 어떻게 잘 애도하느냐가 중요한 심리적 문제가 되었다.

  

 현대 정신분석 학자들은 애도를 분석 치료의 핵심 개념으로 간주한다.(베레나 카스트, 수전 K. 애들러 등) 성인의 내면에 간직된 의존해 온 부모 이미지를 떠나보내고 주체적인 개인으로 분리·개별화되는 지점을 분석 치료의 마무리 단계로 보기 때문이다. 현대 인문학자들은 애도 개념을 개인뿐 아니라 문화와 사회를 읽는 잣대로 사용한다.(폴 리쾨르, 자크 데리다 등) 최근에는 문학과 예술작품을 애도 관점에서 읽어내는 연구들, 현대 사회의 위험성과 파시즘을 애도 관점에서 보는 연구들이 이어지고 있다.(줄리아 크리스테바, 주디스 버틀러 등)


담배는 술, 약물 등과 함께 대표적인 구강기 대체물이다. 과장되게 표현하면 담배를 피울 때마다 공갈 젖꼭지를 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흡연은 당사자 내면에 자리잡은 덜 충족된 부모의 보살핌에 대한 욕구이며, 금연은 그가 비로소 내면에 간직한 채 의존하고 있던 부모 이미지를 떠나보냈다는 뜻이다. 애도 작업의 핵심은 울음으로써 슬픔의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에 있다.


 “눈물은 한 사람의 가장 위대한 용기,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는 용기가 있음을 입증한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깨달았을 뿐이다. 나의 동료 가운데 한 사람도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그는 부종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어느 틈에 부종의 고통에서 벗어나 있었다. 어떻게 부종을 이겨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대답했다. 실컷 울어서 부종을 몸 밖으로 내보냈다고.”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활 3년 경험을 기록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한 대목이다.


 금연 성공담을 들려준 또 한 명의 남성은 흡연 욕구가 일 때마다 산책을 나섰다고 한다. 흡연 욕구와 금연 의지 사이 갈등이 유독 거세던 어느 날 그는 길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갔다. 숲속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으로 셔츠 앞자락을 쥐어뜯으며 오열했다. 후배 여성에게 울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낯빛이 참 맑았다. 그 맑음이 그의 용기일 것이다.


김형경 / 소설가

(2009.1.9 한겨레)

'상처의 치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0) 2009.08.16
노천카페에 혼자 앉아   (0) 2009.08.14
‘불안’과 ‘매혹’  (0) 2008.03.06
용서  (0) 2007.05.05
상실과 이별의 수업  (0) 2007.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