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치유

용서

송담(松潭) 2007. 5. 5. 17:41
 

 

용서는 자기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필요한 것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준비하던 인도는 종교 전쟁에 휩싸였습니다. 내전 중에 회교도에게 아들을 잃은 한 힌두교도가 마하트마 간디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회교도들을 용서할 수 있습니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인 자들에 대한 미움이 마음속에 가득한데, 어떻게 하면 제가 다시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요?”

간디는 그 남자에게 고아가 된 적의 아들을 입양해 자식처럼 키우라고 말했습니다.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합니다. 용서는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이며, 우리를 다른 사람과 연결하는 방법입니다. 우리 모두는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는 그런 고통을 겪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상처를 입습니다. 그리고 진실을 말하자면,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혀 왔습니다. 문제는 상처를 입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힌 사람을 용서할 수 없거나 용서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계속 아프게 하는 상처입니다. 우리는 이런 상처들을 쌓으며 살아가지만, 그것을 치유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용서가 필요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용서에 대한 선택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용서의 선택권은 상처를 입힌 사람보다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 더 중요한 이기적인 행동입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살면서 느끼지 못한 평화를 되찾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죽음이란 모든 것을 내려놓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용서하지 않을 때, 우리는 오래된 상처와 분노에 매달립니다. 과거의 불행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분노를 되새김질합니다. 용서하지 않을 때 자신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용서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서나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나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용서는 다시 한 번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는 자유를 줍니다. 그리하여 모두가 관계를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얻습니다. 그 기회는 용서만이 부릴 수 있는 마술입니다.

타인과 자신을 용서할 때, 우리는 다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되찾게 됩니다.

부러진 뼈를 치료하면 부러지기 전보다 더 튼튼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관계와 삶도 용서를 통해 상처를 치유함으로써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용서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짓밟고 가도록 내버려 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용서하려면 우리에게 상처를 준 상대방의 당시 상태가 최선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이 그들의 잘못 이상의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인간이고, 실수를 한 것이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상처를 받았습니다. 궁극적으로 용서는 자신 안에서 일어납니다.

용서는 자기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한 행동은 행동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행동'을 용서할 필요가 없으며, 단지 '그 사람'을 용서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상처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자신을 영원한 피해자로 만드는 일입니다. 용서는 상처를 초월하게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 때문에 영원히 상처받은 상태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용서는 일시에 한두 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평생 계속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용서는 우리의 영적인 정화입니다.

용서는 우리를 평화롭게 하고 사랑과 접촉하도록 도와줍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시 한 번 마음을 여는 일입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 데이비드 케슬러 / 인생수업(류시화 옮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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