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치유

상실과 이별의 수업

송담(松潭) 2007. 4. 18. 16:04
 

 

상실과 이별의 수업

 


 많은 사람들이 삶이 곧 상실이고 상실이 곧 삶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평생 상실과 싸우고 그것을 거부합니다. 상실없이 삶은 변화할 수 없고, 우리도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옛 유대 격언에도 ‘많은 결혼식에 가서 춤을 추면 많은 장례식에 가서 울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당신이 많은 시작의 순간에 있었다면, 그것들이 끝나는 순간에도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만일 당신에게 친구가 많다면 그만큼의 이별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겪는 상실에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습니다. 부모의 죽음에서부터 전화번호를 적은 메모지를 잃어버리는 것에 이르기까지 상실은 다양합니다. 죽음처럼 영원한 것도 있고, 출장을 갈 때 아이와 떨어지는 것처럼 일시적인 것도 있습니다. 죽음을 포함한 모든 상실의 과정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다섯 단계의 반응은, 삶에서 겪는 모든 크고 작은 상실에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당신의 아이가 시각 장애아로 태어났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당신은 아마 다음과 같은 반응을 거칠 것입니다.


첫째 반응은 부정입니다.

“의사는 아이가 앞을 못 볼 거라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아이는 정상으로 될 거야.”


두 번째 반응은 분노입니다.

“의사들은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우리에게 좀더 빨리 알려줬어야지! 신은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 거지?”


세 번째 반응은 타협입니다. “아이가 말귀를 잘 알아듣고, 자라서 혼자 앞가림을 할 수 있게만 된다면, 난 견딜 수 있어.”


네 번째 반응은 절망입니다. “이건 끔찍한 일이야. 아이의 인생이 너무나 불쌍해.”


그리고 다섯 번째 반응은 수용입니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우린 잘 이겨 낼 수 잇어. 아이는 그래도 사랑으로 가득한 멋진 삶을 살 수 있어.”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잃게 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은 그것이 무엇이든 당신이 마땅히 느껴야할 감정이다. 우리는 결코 누군가에게 “넌 부정의 단계에 너무 오래 있었어. 이제 분노의 단계로 넘어가야 해.”하고 말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치유의 과정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상실을 경험했을 때, 그 반응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상실은 우리에게 공허함과 무기력함, 분노, 슬픔, 두려움 등의 감정을 남깁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시간이 그 모든 것을 치유하리라는 사실입니다. 불행히도 치유의 과정이 언제나 직선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래프의 상승선처럼 빠르고 분명하게 회복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치유의 과정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온전히 자신을 회복해 가다가도 갑자기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역행하는 것 같다가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치유의 과정입니다.


 결국 당신은 치유될 것이며, 온전한 자신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지는 못하겠지만, 그 상처를 치유할 수 는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여행의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당신이 잃어버렸다고 슬퍼한 사람이나 사물이 결코 당신에게 소유된 적이 없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한편으론 그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영원히 소유하게 되리라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상실없이는 성장도 없습니다. 상실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한 눈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장합니다. 상실로 인해 고통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결국 더 강해지고, 더 온전한 존재가 됩니다.


 중년의 나이에 이르면 머리카락은 조금 빠지지만, 외모 못지않게 내면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퇴직하면 수입은 없어지지만,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노년에 이르면 자식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베풀었던 사랑을 돌려받습니다. 소유하던 것을 잃은 슬픔이 가시고 나면 자신이 좀더 자유로워지고, 세상을 가볍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때로 관계가 끝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의 자신이 아닌, 홀로 있는 자신을 말합니다. 어떤 물건이나 능력을 잃었을 때 비로소 자기가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이혼이나 별거를 통해 헤어짐을 경험한 사람들은 종종 죽음이 궁극적인 상실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사람과의 이별이 훨씬 더 힘든 경험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계속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알면서도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은, 죽음으로써 영원히 헤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경우에는 가슴속이나 기억 속에 계속 살아 있기 때문에 그와 함께할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상실감이라는 게 이런 건가요? 내 친구들 중 여럿이 불화나 이혼, 죽음 등으로 배우자를 잃었어요. 그들이 슬픔과 아픔을 호소할 때 난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했어요. 이제 상실이 주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니 그 친구들한테 가서 ‘미안해, 네가 그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하고 말해 주고 싶었어요. 난 성숙해졌고 타인의 마음을 더 헤아릴 줄 알게 되었어요. 앞으로 상실로 괴로워하는 친구가 있으면,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그들 곁에 있어 줄 거예요.”


상실은 인간을 하나로 묶어 주고,

서로 깊이 이해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삶의 어떤 가르침보다도 더 깊이 우리를 연결해 줍니다.

상실의 경험 속에 하나가 되었을 때,

인간은 새롭고 깊어진 시각에서 서로를 염려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 인생수업(류시화 옮김)중에서

 

 

 

상실이 있었다하여

영원히 사리지지 않는 것임을


상실은 또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영원히 머문다는 것임을


상실은 우리를 함께 묶어 주고

함께 눈물 흘리게 해주는

 

또 하나 우리들의 눈부신 세계임을

깨닫게 해 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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