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치유

‘불안’과 ‘매혹’

송담(松潭) 2008. 3. 6. 15:05
 

 

‘불안’과 ‘매혹’



3월과 함께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새내기가 오가는 교정은 봄바람과 함께 싱그러움으로 넘쳐난다. 갓 스무 살, 나는 꿈 많던 그 시절을 규정하는 대표적인 단어로 ‘매혹’과 ‘불안’을 꼽는다. 매혹이란 무엇인가. 프랑스 비평가 모리스 블랑쇼는 지적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시간의 부재, 그 매혹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라고. 어찌 글쓰기뿐이랴. 자신이 택한 일에 몰두하여 시간의 흐름조차 잊는 것, 저물 무렵 일을 시작하여 길어야 30분 쯤 지났으리라 여겼는데 밝아오는 동쪽 창문에 깜짝 놀라는 것, 그것이 바로 매혹이다.


스무 살은 자신을 매혹시키는 일을 찾고 그 일에 온 몸, 온 마음을 바쳐 몰두하는 시절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불안이란 무엇일까.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의 문학청년 시절을 예로 들어보자. 밤을 꼬박 새워 쓰고 또 쓴 습작을 통해 카프카는 글쓰기가 얼마나 매혹적인 일인가를 알아버렸다. 오직 글만 쓰면서 하루를 한 해를 평생을 보내고 싶은 것이다. 열정을 다하여 글을 짓던 카프카도 늘 불안감에 휩싸였다. 자신의 욕망에 필적할 만큼 완성도 높은 작품을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었다.

 

(.....중략....)

 

 스무 살 대학 새내기에게 불안과 매혹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외적인 변명 따윈 일찌감치 접고 일 그 자체가 내뿜는 매혹에 다가가는 것이다. 불안을 이기지 못해 일로부터 멀어지거나 자책하며 일을 포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선택은 없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도 처음부터 ‘지옥문’이나 ‘칼레의 시민’ 같은 걸작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발자크 평전’에서 츠바이크는 훗날 ‘인간희극’이라는 전대미문의 작품을 남기는 대작가의 보잘 것 없는 젊은 날을 꾸밈없이 전한다. “이 못된 젊은이의 재능이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보인 적이 있었던가? 한 번도 없었다! 학교마다 그는 벌 받는 자리에 있었고 라틴어는 32등이었다!”


 불안과 매혹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불안도 사라지고 매혹도 없는 일상이 백배는 더 위험하다. 미래의 안락을 정해두고 현재를 단지 그곳으로 가는 수단쯤으로 파악하는 삶이 천배는 더 끔찍하다.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오지 않았으니, 언제나 첫마음으로 돌아가서 매혹에 떨고 불안에 잠길 일이다. 갓 스물의 젊은이여! 불안한가? 책상 앞으로 바짝 다가앉으라. 불안한가? 잠을 줄여 그대 일에 몰두하라, 즐겨라. 불안은 매혹의 어머니일지니.


김탁환 / 소설가·카이스트 교수

(2008.3.6 광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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