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상식. 심리

다시 현실로 돌아간 이유

송담(松潭) 2008. 12. 28. 14:59

 

그들이 낙원을 떠나

다시 현실로 돌아간 이유



 우리는 항상 도망을 꿈꾼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든, 어쩔 수 없이 흘러오다 보니까 살게 된 삶이든 간에 현실은 언제나 도망을 꿈꾸게 만든다. 현실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도망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고 살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도망칠 수도, 도망갈 곳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환기구 없는 방에 갇힌 것처럼 끔찍하지 않을까.


 그리고 가끔 누군가는 도망을 시도한다.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현실의 밧줄을 끊고 어디론가 떠나겠다는 자유를 꿈꾸면서 말이다. 그러나 도망은 회귀를 전제로 한다. 도망친다는 것은 자신의 본거지가 지금 머물고 있는 그곳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택한다고 할 것이지 굳이 도망이란 말을 사용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다른 삶을 선택하는 것과 현재의 삶으로부터 도망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물론 도망쳐서 다른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망은 목적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탈출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게다가 도망은 불확실한 세계로 자신을 던지는 것과 같다. 도망가서 머무는 그곳은 또 다른 현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은 영화나 소설에서 보듯이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그래서 영화에서 도망자는 항상 되돌아오거나, 붙잡혀 오거나, 아니면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방랑자가 되고 만다.


 나 역시 평생 도망을 꿈꾸며 살아왔다. 그리고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는 지금도 도망을 꿈꾼다. 내 일을 사랑하고 내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끔 나를 옥죄는 현실로부터 도망을 꿈꾼다. 구체적인 목적지도 정해 놓지 않은 채 막연하게 그저 푸른 항공을 떠다니는 자유라는 꿈같은 이름을 찾아서.


 그러나 만일 당신이 도망치고 싶다면 생각해 볼 일이 있다. 당신이 원하는 목적지가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도망치고 싶은 건지를 말이다. 뚜렷한 목적지 없이 그저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다면 당신은 도망쳐서 자유를 얻는 게 아니라 당신을 더욱 옭아맬 수 있는 또 다른 현실을 만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도망친 낯선 미지의 땅에서 해답을 찾기보다는 지금 당신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서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 그 방법을 찾는 것이 오히려 현명할 수 있다.


김혜남 /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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