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스법
1997년 미국 시카고의 재미동포 탐정 브루스 강(한국명 강효은)은 한국 H병원 간부로부터 "병원 땅을 팔아 50억원을 갖고 미국으로 달아난 직원을 잡아달라"는 국제전화를 받았다. 강씨는 1990년 대기업 공금 횡령범을 붙잡아 한국으로 송환하고 입양인 30여명의 친부모를 찾아줘 한국에도 이름이 났다. 그러나 병원 직원을 잡는 데 아홉 달이나 걸렸다. 그가 꼭꼭 숨은 데다 탐정을 고용해 맞불 방해공작까지 벌였기 때문이다.
▶ 강씨는 미국인 탐정사무소 탐정 보조로 일하다 1995년 '공인 탐정'이 됐다. 6000시간 현장 실무를 채우고 합격률 20%밖에 안 되는 시험도 통과했다. 미국엔 공인 탐정이 5000명이고 아래 등급 탐정이 2만명이다. 특급 탐정은 시간당 400달러까지 받는다. 범죄검거율이 20~30%에 그치는 경찰을 돕는다는 자부심이 크다. 1998년 르윈스키 사건 때는 특별검사가 탐정을 고용할 정도였고 클린턴 대통령도 특별검사의 비리를 캐내려고 탐정을 썼다.
▶ 1850년 시카고에 최초로 탐정회사를 세운 앨런 핑커튼은 1861년 링컨 암살 음모를 적발한 공로로 정부 비밀정보조직을 이끌었다. 첫 전문 탐정으로 꼽히는 19세기 프랑스의 비도크는 범죄 제보자로 출발해 파리 탐정수사국을 이끌며 범죄자 2만명을 잡아 여러 탐정소설의 모델이 됐다. 소설 '명탐정 셜록 홈스'로 박물관까지 세운 영국은 정작 2006년에야 탐정 면허를 주기 시작했다.
▶ 우리는 1960년대부터 생긴 흥신소와 심부름센터가 6000곳에 이른다. 단순 심부름 아니면 불법 도청이나 뒷조사해주는 곳이 많다. 조사를 맡긴 기업의 약점을 잡고 거꾸로 돈을 뜯어내는 범죄꾼들도 적지 않았다. 2005년엔 심부름센터 직원이 7000만원을 받고 생후 70일 된 영아와 엄마를 납치·살해한 일도 있었다. 얼마 전 배우 전지현의 휴대전화를 기획회사에 감시용으로 복제해준 곳도 심부름센터였다.
▶ 법무부와 검찰이 이런 불법은 계속 단속하되 탐정은 양성화해 가출·실종자 찾기나 사고 원인 조사처럼 간단한 수사를 할 수 있게 하는 민간조사법, 일명 '셜록 홈스법' 입법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부자들만 좋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번 경기 서남부 연쇄 살인사건처럼 경찰력이 채 못 미치는 영역에 보탬이 될 수 있겠다. 5만명의 고용 창출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눈에 띈다. 탐정 자격과 활동을 엄격히 통제해 부작용을 막는다면 우리도 해볼 만할 것 같다.
김홍진 / 논설위원
(2009. 2. 3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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