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만 피면 뭐 헌다냐
어제 밤에 처음 소쩍새가 울었습니다. 소쩍새가 처음 울 때마다 어머님은 내일 아침에 측간에 가서 ‘큰 것’ 응아 할 때 ‘아, 어제저녁에 처음 소쩍새가 울었지’ 하고 기억을 하는 사람은 머리가 영리한 사람이고, 그 해에는 재수가 좋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그렇게 그 자리에서 그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고 늘 측간 문을 나서며 앗차! 하곤 했습니다.
처음 우는 소쩍새 소리를 들으며 나는 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입니다. 소쩍새 소리를 처음 들을 때는 정말로 생각이 많아집니다. 결혼 전 혼자 있을 때는 내 여자가 없어 너무 봄밤이 외로워서 잠을 이루지 못했고, 글을 쓸 때는 써지지 않은 글들이 어찌나 머리 속을 헤매고 돌아다니든지 불을 켰다 껐다 일어났다 누웠다 하며 잠을 설쳤습니다. 지난 월요일 저녁은 참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는 봄밤이었습니다. 내가 사는 우리 마을 풍경이 내일 아침이면 엄청나게 달라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잠 못 들게 했습니다.
소쩍새가 울 때마다 뒤척이고, 뒤척일 때마다 소쩍새가 울어댑니다. 80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 온 우리 어머니를 생각하면 오늘 밤 어찌 잠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텅 빈 고샅길을 생각하면 어찌 두 다리 뻗고 잠들 수 있겠습니까. 저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으며 농민들은 소쩍새 소리에 자기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았지요. 배가 고프면 소쩍새는 ‘솥 쩍, 솥 쩍, 솥 쩍쩍’ 하고 솥이 금이 간다고 울고, 배가 부르면 ‘솥 꽉, 솥 꽉, 솥 꽉꽉’ 하고 울었습니다. 배 곯고 산 삶의 증거입니다. 한때를 보지 못하고 살아 온 한 많은 삶의 표현이었지요. 소쩍새는 피를 토했다가 도로 삼키며 운다지요. 그 빛으로 진달래는 붉고요. 진달래꽃이 산에 피어 붉습니다
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 주위에는 지금 꽃 사태가 났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시간 시간이 다르게 온갖 꽃들이 피어나 나를 놀라게 합니다. 자고 일어나 보면 느닷없이 앞산이 훤하게 산벚꽃이 피어 있고, 길을 가다가 뒤돌아다보면 눈길 가는 곳에 봄맞이꽃, 제비꽃, 시루나물 꽃, 현호색 꽃이 피어납니다.
그 꽃들이 너무 눈가에 선해서 되돌아가 눈물 같은 꽃 앞에 앉아 희고 작은 꽃잎들을 들여다봅니다. 어쩌면 이렇게 작은 것들이 꽃을 그렇게나 예쁘게 피울 수 있을까. 추운 겨울 꽁꽁 언 땅 속에서 얼어 죽지 않고 살아 이렇게 작고 눈 시린 꽃들을 피우다니 장하기도 합니다. 다시 일어나 걷다 뒤돌아보면 어느새 노란 꽃 따지 꽃이 봄바람을 맞으며 종종종 따라옵니다.
이렇게 눈 줄 데 없이 천지간에 봄꽃들이 피어나면 어머님은 꽃들을 바라보며 “꽃만 피면 뭐 헌다냐. 사람이 있어야지” 하셨지요. 그러면 저는 “봄날에 저렇게 꽃이라도 피어야지”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올 봄 나는 어머님에게 ‘꽃이라도.’라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꽃만 피면 뭐 한답니까.
출근을 해보니, 학교 운동장에 벚꽃이 꽃구름처럼 만발해 있고, 아이들이 그 꽃 속에서 뛰어놉니다. 천국 같은 풍경입니다. 교실에 들어와 창 밖을 보니, 벚꽃 사이로 보이는 강 건너 마을이 어제와 다르게 보입니다. 온 몸에서 힘이 다 빠져버린 것 같은 마을 풍경을 보며 나는 가슴 속에 낀 검은 구름을 걷어내지 못합니다.
꽃 피고 새 우는 이 좋은 봄날 나는 여러 분들에게 꽃피어 좋다는 소식을 전하지 못합니다. 한번도 꽃을 피우지 못한 우리 농민들에게 지금 저 꽃들은, 꽃이 아닙니다. 서러움입니다.
지충개야 지충개야
나주사탕 지충개야
매화 같은 울 어머니
떡잎 같은 나를 두고
뗏장이불 둘렀던가.
배고픈 봄날 어머님이 지충개라는 나물을 캐며 불렀던 나물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김용택 / 시인, 교사
(2007.4.6 한겨레, 책과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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