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사랑’ ‘불같은 사랑’ 말하지만 불륜은 불륜
유부남을 만나고 있는 한 처녀가 메일을 보냈더군요. 만난지 3개월 됐고 정신적인 관계이고 서로 미친 듯이 사랑하고 있고, 그에게 원하는 것 없이 평생 사랑하기 위해 다른 남자와 결혼하신다는군요. 제게 메일을 보낸 건, 두 분의 관계를 제가 어떻게 정의 내릴지, 그리고 제가 어떤 말을 해줄 수 있는지 궁금해서랍니다
.
굳이 정의를 내려달라시니 말씀드리자면 두 분의 관계는 특별할 것 없는 아주 통속적인 불륜입니다. 불륜의 남녀는 정신적인 대화 따위는 하나도 없이, 만나자마자 여관부터 가는 사이라고 생각하셨는지요. 남들도 처음에는 두 분처럼 시작합니다. 이지적인 모습에 반하고 대화가 너무나 잘 통하고 잠자리도 주저하고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고통스러워하지요. 본인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고 가장 특별한 이야기일겁니다.
하지만 둘 사이가 아무리 고상하고 우아해도 그 남자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신적인 관계, 지적인 대화, 불같은 사랑을 아무리 많이 집어넣어도 불륜은 불륜이지요. 커피에 설탕 많이 탄다고 우유되는 건 아니니까요.
앞으로도 잠자리 없이 정신적인 관계를 유지할거라고 말씀하시지만, 인생이 결심대로 진행되는 일이던가요? 유부남과 연애하겠다고 결심해서 이 자리에 와 있나요? 조금만 더 지내보십시오. 당연히 잠자리하게 될 거고 바람피우는 사람들이 거쳐 가는 모든 과정을 다 거치게 될 겁니다. 여관을 전전하며 양쪽 배우자에게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게 될 거고, 모든 것이 거짓위에 진행되는 이 관계에 지치고 피폐해질 겁니다. 직장에서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듣게 될 거고 본인의 결혼도 위태로워질 거고 부모, 형제들까지 부끄럽게 만들고 직장도 커리어도 위험해질 겁니다. 남들은 다 바보고, 태생이 천박한 사람들이어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줄 아시는지요.
이 모든 일이 벌어지기 전에 본인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을 겁니다. 그 유부남이 있어야할 자리에 남편이 있어서 사사건건 화가 날겁니다.
그 유부남과 남편을 끊임없이 비교하겠지요. 늘어진 런닝에 눈곱도 덜 뗀 얼굴로 밥 달라는 남편이, 말쑥한 차림으로 사랑의 말을 읊어대는 그 유부남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남편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아내의 홀대에 곧 지치게 될 겁니다. 결혼은, 뭔가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기에는 그 자체로서 너무 무거운 일이지요.
어차피 이 유부남과 평생 사랑하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결혼에 실패해도 본인에게는 타격이 없을까요? 적당한 남자 골라서 또 하면 되는 걸까요? 결혼이 그렇게 지켜야할 가치가 있는 거냐고 물어보는 논점일탈의 오류는 범하지 말기로 하지요.
당신을 만나 미친 듯한 사랑에 빠졌다는 그 유부남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지키는걸 보면, 결혼은 사랑보다 더 의미있는 무엇인지도 모르지요.
달리 드리고 싶은 말은 없습니다. 그 유부남과의 사랑이 불가항력이었듯이 앞으로 진행될 모든 일들도 불가항력으로 남들과 똑같이 구질구질하게 진행될 겁니다. 이 모든 우울한 얘기 중에 축하드릴 일이 하나 있군요. 당신만 변하지 않는다면, 두 분은 평생 사랑할겁니다.
그 유부남의 사랑은 변치 않을 테니까요. 사랑한다고 입만 나불대면 되는데 변할 이유가 없지요. 가정을 위태롭게 하는 관계도 아니고, 깨져도 애인 가정이 깨지고 박살나도 애인 인생이 박살나는 거고, 이 관계가 어떻게 진행되든 그 유부남은 손해 볼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송강희/누드토크
(2007.2.23 광주일보)
'사랑이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긋지긋한 관계 (0) | 2007.04.06 |
---|---|
사랑의 기억과 인식체계 (0) | 2007.03.07 |
자연에 길들이다 (0) | 2007.02.14 |
사랑은 ‘하나’인가? ‘둘’인가? (0) | 2007.02.11 |
유부남만 안 만나도 인생 성공 (0) | 2007.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