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자연에 길들이다

송담(松潭) 2007. 2. 14. 23:54
 

 

자연에 길들이다

 


 미실은 태어나 처음 다섯 해를 짐승처럼 자랐다. 옥진은 미실을 숲 속에서 자유롭게 놓아길렀다. 애초에 인간만이 귀하고 짐승은 미천하다는 분별은 자연의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그러한 어리석은 분간이 없는 천축에 몸을 부려 태어나셨던 것인지도 모른다. 소와 돼지와 개와 염소가 사람과 함께 먹고 자고 배설하는 그곳이야말로 천진한 본래의 심성이 살아 숨 쉬는 곳이 아니런가.

짐승은 본능을 거역할 줄 모르고

거짓으로 자기를 구속하지 않는다.


 미실은 발가벗은 채 숲을 기고 걷고 달리는 일이 좋았다. 할머니의 명에 따르는 것이 아니더라도 숲에서 보내는 하루는 즐겁고 쾌적했다. 바람은 쌉쌀하고 푸르렀다. 들숨과 날숨은 맑고 청신했다. 숲의 정령이 어루만진 피부는 날로 탄탄하고 매끄러워졌다. 옥진은 다만 숲으로 가라 말했다. 하지만 미실은 숲에서 무엇을 배우고 익혀야 할지 알았다.


 친구와 놀이거리는 어디에나 널려 있었다. 미실은 세상의 만물을 벗 삼아 대화하는 법을 익혔다. 빠르게 숲길을 걸을 때 문득 곁에서 들썩이는 나뭇잎들은 단순하고도 순정한 고백을 속삭였다. 귀를 기울일수록 그들의 이야기는 점점 깔밋해졌다. 인간의 말로 풀어낼 수 없는 기기묘묘한 속살거림, 그러나 그 간질이는 고백만으로 가슴은 터질 듯 충만하였다.

미실은 그들이 시키는 대로 울고 웃고 뒹굴며 즐기고

기꺼이 사랑하고자 하였다.


미실은 흘러내린 옷자락을 거두려 들지 않았다.

흘러내리는 것은 흘러내리는 대로,

걸리는 것은 걸리는 대로,

울창한 수풀을 자유로이 빠져나가는 바람처럼

흔연히 두면 되는 것이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움직이도록 훈련받았다. 무엇에도 조바심치거나 부러 채근하지 않도록, 스치고 스쳐 지나가고, 흐르고 흘러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마음을 주어 고이도록 하지 않았다. 시간은 그녀 곁에 머물러 아주 천천히 스치고 흘렀다. 미실은 바스락거리는 모든 시간의 소리를 들었다.


 무수한 꽃들이 피었다. 졌다. 새가 울 때마다 숲은 무성해졌다. 한 개씩 젖니가 빠지고 새로이 간니가 한 개씩 돋을 무렵 미실은 사람의 문자를 배웠다. 글 쓰고 읽으며 지금껏 지극한 벗으로 함께했던 자연을 섬기고 축복하는 법을 익혔다. 반딧불 초롱을 켜고 상수리 열매껍질로 그릇을 삼아 보리 잎과 수수깡으로 풀각시를 만들어 소꿉놀이를 할 때에도 그녀는 공화(부처나 죽은 사람에게 꽃을 바침)의식을 잊지 않았다.

나뭇잎을 태워 피운 향이 파들파들 타들 무렵 서쪽을 향해 꿇어앉아 꽃을 바치면 마음이 절로 간절해졌다.


 무엇을 향해 간절해지는지 알 수 없었다. 나뭇잎 향이 지펴 올린 구수한 연기처럼 그 방향을 정한 듯 솟구치다가 시나브로 사라져 버리는 종잡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설레었다가, 안타까웠다가, 들떠 올랐다가,

종내는 마음의 벽을 사각사각 긁는 슬픔으로 가라않고야

마는 변덕스러운 감정이었다.

미실은 그 어지럽고 정체 모를 흔들림이 좋았다.

몸을 돌아 빠져나오는 숨결과

몸속을 흐르는 피톨들이 그와 함께 요동하는 것마저

황홀하게 느껴졌다.

미실이 진정으로 즐긴 것은 살림살이를 흉내 낸 소꿉놀이가 아니라 장난질을 핑계 삼아 거듭 맛보는 간절함이었다.


 숲은 끝없이 태어나고 죽었다.

숲에서 사는 모든 것들이 숲의 이치를 따랐다.

짐승의 시체가 썩어 가는 한구석에서 새로운 생명이 번식했다. 곳곳에서 살아 있는 것들이 아우성처럼 교미를 했다.

바람은 쉬지 않고 화분을 실어 날랐다.

두꺼비는 영문도 모르는 채 암컷의 음습한 구멍을 향해 무거운 몸을 실었다.

미실은 겁 많은 노루의 눈망울을 마주할 때처럼 물끄러미

그것을 지켜보곤 하였다.

도망치지 마라, 무엇도 너의 도저한

진정을 침범할 수 없으리니.


김별아/장편소설 ‘미실’중에서

(위 글의 제목 '자연에 길들이다'는 독자가 임의로 달았음)

 

 

 

 

 

 

 

 

 

사랑의 종언


 아침 공양을 마치고 싸리비로 마당을 한바탕 소지하고 나서 흐르는 땀을 훔치며 장명등 아래 몸을 기대고 앉았다. 문득 눈앞이 흔들렸다. 땅이 투명한 불꽃 모양으로 아른아른 지펴 오르고 있었다. 어느덧 재바른 봄이 불쑥 다가와 어깨를 겯고 아는 시늉을 하였다. 눈길이 절로 마당 모퉁이로 달려갔다. 작년 봄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한 앵두나무 가지가 물이 올라 통통했다. 밑거름을 듬뿍 주고 때때로 눈빛으로 격려하고 보듬었으니 올해는 열매도 맺을 것이다. 깔갈한 입속에 금세 새콤달콤한 기대가 고였다.

 돌덩이 같던 땅도 얼음이 풀려 질척했다. 비질한 자국이 동백기름 바른 머리를 얼레빗으로 가린 모양으로 선명했다. 마침 불어온 삽상한 꽃바람에 진땀이 돋았다.

“곧 동풍신연(東風新燕: 봄바람 타고 새로 날아온 제비)이 오시겠구나....”

(...생략...)


마음에 무겁게 드리운 의혹과 불안의 닻돌을 끌어 올려 단번에 그를 사내로 솟구치게 한 관능의 여인,

기쁨으로 덩실덩실 춤추며 삶을 노래하게한 다정한 여인,

노골적으로 편벽되어 그의 힘과 의지가 되어 준 뜨거운 여인,

미실에게 감염된 채 질병처럼 사랑을 알아온 터였다.

아름다움으로 눈이 멀고 사랑으로 불구가 되어, 마침내 목전의 죽음까지도 꺼릴 바 없는 지경이었다. 설원의 깊은 소망은 오직 하나였다. 그녀와 함께 가고 싶다. 마지막까지 그녀의 모습을 눈에 넣고 갈 수 있도록, 그녀보다 먼저 죽고 싶다......

(...생략...)


 몸이 죽으면 어디로 가나. 지친 몸과 부대끼던 마음은 어느 곳으로 흐르나. 그 알 수 없고 엿볼 수 없는 비밀의 내막이 두려워 사람들은 목숨을 다해 차가워진 몸을 꽁꽁 묶어 땅에 묻는다. 땅만은 영생을 보장하리라 굳게굳게 믿으며, 언젠가 언 땅을 비집고 새파랗게 싹을 돋우던 곡식의 낟알처럼 그들의 가엾은 영혼도 부활하기를 꿈꾼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나고 죽음을 관장하는 영원의 대지, 그들의 종교는 오로지 간명한 그것에서 비롯된다. 땅에 묻히지 못한다면 다시 살아날 수도 없으리니.

 그러나 미실은 그악스럽게 자라는 산악의 수풀에 가려 영영 사람에게 발견되지 못한다 하여도, 이대로 바람에 삭고 비에 썩어 흘러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시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


 미실은 자신을 대신하여 죽은 정인, 목숨과 바꾼 사랑을 향해 자기 무덤에 절을 하듯 재배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선물에 대한 답례로 속곳을 벗어 설원의 관에 넣었다.

언젠가 그들이 재회할 그곳은 수치도 오욕도 없이 오직 즐거움으로 가득 찬 환희불의 극락이리라. 그때 다시 한 번 농탕치며 뒤엉키리라. 부끄러움이라곤 애당초 모르는 짐승처럼,

피고 지길 두려워하지 않는 풀과 꽃과 나무처럼,

야생의 모든 숨붙이처럼.


미실은 관 뚜껑을 덮으며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속살거렸다. “홀로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곧 그대를 따라 하늘로 가리라.”


이 집 지은 사람 이제 보았으니

너는 다시 집을 짓지 마라

너의 모든 서까래는 부서지고

기둥과 대들보도 내려앉았다

이제 내 마음을 짓는 일 없거니

사랑도 욕망도 말끔히 사라졌다

                                     - 법구경 -

(...생략...)


 흘러내리는 것은 흘러내리는 대로, 걸리는 것은 걸리는 대로, 무엇에다 조바심치거나 부러 채근하지 않고 천천히, 스치고 스쳐 지나가고, 흐르고 흘러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마음까지도 껴묻고.

미실이 봄을 따라 세상에서 사라졌다.


김별아/장편소설 ‘미실’의 마지막 부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