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토크라시 그리고 양극화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은 1958년 출간된 그의 미래소설 '메리토크라시의 반란(Rise of Meritocracy)'에서 실력이 지배하는 사회를 가리켜 '메리토크라시(실력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실력에 따라 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보수가 결정되는 사회현상을 표현하는 말이다.
실력은 '능력+노력'에 따라 결정되며 실력있는 자들은 사회적으로 더 잘 되고 경제적으로 보다 윤택한 삶을 영위하게 된다는 것이다.
메리토크라시는 경쟁원리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체제에서 보편적인 현상으로 굳어지고 있다.
부유층이나 지식층 자녀들은 더 좋은 교육을 받아 사회 요직에 진출하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의 자녀들은 출세의 길이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저소득층이나 교육수준이 낮은 가정의 자녀는 경제적 여유가 없는 데다 자극을 받을 기회도 적어 하루하루를 체념하면서 사는 경향이 있고 이 때문에 빈곤의 대물림 현상도 고착되고 있다.
'개천에 용나기'식 출세는 옛말이 돼 가고 있다.
대부분 국가에서 확대되고 있는 소득격차도 메리토크라시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우리나라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 계층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비율)은 1996년 4.28배에서 2003년에는 6.49배로 늘었다.
미국은 납세자 중 소득금액 상위 1%가 벌어들인 소득비중이 2003년 16.8%에서 2004년 19%로 높아졌다.
일본은 소득분배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1979년 0.271에서 2004년 0.308로 상승했다.
모든 국가에서 부자들이 더 많은 돈을 벌어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이 얇아지는 반면 빈곤층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소득이 전국 가구 소득 중간값의 50% 미만인 가구 비율을 나타내는 '빈곤율'이 우리나라의 경우 2003년 16.9%에서 지난해에는 18%로 높아졌다.
미국 아일랜드에 이어 빈곤율이 선진국 3위라는 일본 15.3%보다 높다.
빈곤층이 빠르게 증가하는 데는 실력주의 이외 요인들도 물론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유명한 칼럼니스트 바버라 엘렌라이크는 '니켈과 다임(Nickel and Dime)'이라는 최근 저서에서 5센트, 10센트 주화로 하루 하루를 사는 '일하는 빈곤층(Working Poor)'이 빈곤에서 탈출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더 나은 일자리나 임금 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교통수단 제약으로 지리적 이동도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양극화는 세계적인 현상이며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다.
따라서 이를 시정하기가 쉽지 않다.
양극화를 해소한다고 빈곤층에 대해 나눠주기식 분배정책을 취한다면 이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이 될 뿐이다.
참여정부가 복지지출을 늘리기 위해 4년 연속 적자재정을 편성한 것은 그 효과 면에서나 재정건전성 측면에서 볼 때 적절치 않다.
정부는 빈곤층에 물고기를 직접 나눠주기보다는 교육ㆍ훈련 등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한다.
결과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소득의 다과나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계층이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기회의 균등은 보장해줘야 한다. 정부는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빈곤층을 양산하는 정책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
부자들에게 유리한 교육ㆍ입시제도를 개선하는 일은 가장 시급하다.
공교육을 내실화해 사교육비를 줄여야 하며 수능, 내신, 논술 등 복잡하게 돼 있는 대입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입시제도가 복잡하고 다단계일수록 경제적 여유가 없어 사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는 저소득층 자녀는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입시 성적이 부모 학력과 소득에 비례한다는 최근 한 연구결과는 입시제도 개선 필요성을 말해 준다.
정부가 사교육비 절감 차원에서 요란하게 시작했다가 용두사미 식이 되고 있는 EBS 수능방송이나 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방과후 학교 제도를 재점검하고 문제가 있다면 개선해야 한다.
아울러 고소득층 소비가 저소득층 소득증가로 이어지도록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반(反)부자 정서를 없애 부자들이 외국에 나가지 않고 국내에서 돈을 자유롭게 쓰도록 하는 것이 한 방편일 것이다.
부자를 미워하고 억누른다고 빈곤층의 삶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세계적, 시대적 조류에 맞서 평등주의를 고집하고 복지 일변도의 정책을 밀고 나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
중요한 것은 약자와 빈곤층이 재활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를 개선하고 그들에게 소득을 높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의해 가능하다.
[온기운 논설위원] / 2006.9.29 매일경제, 분석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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