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헤는 밤
윤동주(尹東柱 1917∼1945)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해설]
이 시는 윤동주가 고향인 북간도를 떠나 서울에서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다니던 1941년11월 5일에 쓴 작품으로 떠나온 고향(북간도)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이다.
이 시의 시간적 배경은 가을밤이다. 시적 화자는 쓸쓸하고 고적한 가을밤에 별을 헤아리며 자신을 찬찬히 되돌아보는 명상 혹은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진다.
이 시에서 핵심적인 이미지는 '별'이다. 별은 언제나 우리에게 순수나 동경, 이상과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별은 어둡고 불안한 밤의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밝고 아름다운 이상의 세계를 상징한다. 이러한 별의 이미지와 결부되어 제5연까지는 아름다웠던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는 화해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그러다가 제6연에 이르러서는 현재의 시점으로 되돌아 온다. 이상의 세계가 멀 듯이, 시적 화자가 처하고 있는현실은 먼 북간도처럼 식민지적 상황으로 인한 실향의 세계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런 현실을 절감하면서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부끄러운 내 이름자를 '흙으로 덮어 버리'고 그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것이다. 여기서 시인의 고뇌에 찬 자아성찰이 부끄러움의 정서를 통하여 나타난다.
그러나 그러한 정서는 결코 감상이나 절망에 빠지지 않고 마지막 연에서와 같이 자연의 순환적 질서를 통한 재생의 의미에 의해 희망으로 반전된다. 이 시에서 눈에 띄는 형식적 특징으로 제5연의 산문율을 들 수 있다. 짧게 이어지던 시행이 갑자기 이 부분에 이르러 산문투로 바뀌는 것은 차분하던 시의 호흡이 갑자기 빨라짐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과거의 추억이 시인의 기억 속에서 주마등같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2 >
한 소년이
별을 바라보다가
울기 시작했다.
별이 물었다.
아이야, 넌 왜 울고 있니?
소년이 말했다.
당신이 너무 먼 곳에 있어서
당신을 만질 수가 없잖아요.
별이 말했다.
아이야 난
너의 가슴속에 있어
그렇기 때문에
넌 날 볼 수 있는 거야.
<존 맥리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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