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간 김학영
김학영 형(兄)은 82년 광주에서 처음 만나 42년의 세월이 흘렀고 동문은 아니지만 제가 1년차 후배이며 경주 김가(계림군파)에 같은 항렬입니다. 제 족보 이름은 ‘金學?’입니다.
형은 고시(高試)공부를 하면서부터 제가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으로 혈기 왕성했던 학창시절엔 술 마시고 소란을 피워 파출소에 끌려갔던 추억이 있습니다. 소란을 피운 동기는 저희한테 있었지만 술집 주인이 과잉 처벌을 주장해서 큰일 날 뻔했던 사건이었는데 그때 파출소에서 형은 밤새로록 굴하지 않고 항변했습니다. 불의에 굴하지 않은 기질은 이미 그때부터였습니다.
형이 행정고시를 합격한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행시를 준비하던 중 7급 공채로 재무부 이재국에 근무하면서 행시에 합격하였으나 3차(면접)에서 탈락한 불운을 맞기도 했습니다. 더군다나 이전까지는 면접에서 떨어진 경우는 1,2차가 면제되었는데 제도변경으로 1차부터 다시 시작하는 우여곡절도 겪었습니다. 그후 입법고시와 행정고시를 합격하여 2관왕이 되었습니다.
형은 청와대 법무비서관실(지금의 민정수석실)에 근무하면서 서슬 퍼런 고위공직자 사정업무를 담당했고 송파경찰서장을 역임하면서 공직의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퇴직후 고향 고흥에서 민선 군수에 도전했으나 민주당 공천이 곧 당선인 호남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형이 정치에 실패하면서 느낀 것은 ‘이상주의자는 정치에 성공할 수 없다’.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한다.’는 세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지난 달에 작고하신 진보진영의 대표 지식인 홍세화는 “회색의 사회에서는 흰색을 따돌림한다”고 했으며 "회색인들은 올곧음을 배격하고 정직성 앞에서 비겁한데 지금 우리사회가 회색인들의 사회라는 것"입니다.
형은 소신(所信)있고 강단(剛斷)있는 사람이지 과격한 사람이 아닙니다. 때론 외관상 다소 거친 표현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친근감의 피력이지 상대를 함부로 대하는 무례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형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연민과 눈물이 고여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영광과 좌절, 우여곡절의 인생길을 걸어온 형에게 전합니다. 형이 비록 지방자치단체장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기존의 정치병페를 극복하고 자유로워지려는 시도, 오직 군민을 위한 충정으로 군행정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 깨끗한 선거문화를 몸소 실천하고자 했던 의지. 이런 모든 노력은 결코 한갓 선거 실패담이 아닌 ‘자연인간 김학영’이 살아온 진실한 삶의 과정이요 소금같은 인생행로였습니다.
누구나 완전한 사람은 없듯이 출세하고 목표를 달성했다고 그 인생이 완전히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한 인간의 생의 전반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이 어떤 사고로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과정(過程)이 더 중요합니다. 알베르 까뮈는 “자신 속에 위대함을 지닌 자는 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제 형은 정치에서 떠났고 ‘과정의 위대함’으로 밤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형이 가야할 길은 ‘건강 백세’, ‘사랑과 용서’, ‘관조와 기쁨’..... 이런 것들입니다. 정치에서 성공하지 못했지만 형은 지금 길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남은 인생 길목에 누군가 자비(慈悲)로운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자연인간 김학영을 응원합니다.
2024.5.15 부처님 오신날에 김상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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