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노래(가족)

사진 한 장으로부터의 사색(思索)

송담(松潭) 2022. 9. 19. 10:52

사진 한 장으로부터의 사색(思索)

 

 

 

 

사진작가 윤광준은 ‘사진은 시간을 가두는 예술이다’라는 제하의 글에서 ‘시간을 묻힌 모든 것은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연히 결혼 초기의 집사람 사진을 보며 그 시절의 시간을 생각해 봅니다. 윤광준은 다시 말합니다.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늙는다. 잔인한 시간은 스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며 사진을 감상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그 사진이 가둔 시간을 생각해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진을 보면서 그때를 생각해 봅니다. 집사람이 입은 옷을 보면 화려하지도 않고 명품으로 기교를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혹자에 따라서는 초라하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석등탑 옆에서 미소 지으며 서 있는 집사람은 멋지기만 합니다. ‘아! 집사람이 이렇게 날씬했던가? 포즈도 멋지고!’ 그 당시 세상물정 모르고 날뛰던 저 때문에 생활고(生活苦)로 힘들었을 텐데 별 걱정 없어 보여 다행이기도 합니다.

 

기독교 신학자 성(聖)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354~430)는 그의 저서『고백록』에서 시간을 우리가 달력이나 시계로 잴 수 있는 물리적 시간과 마음으로 잴 수 있는 인간적 시간으로 구분했습니다. 물리적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자꾸만 흘러가는 시간이고 이 시간에서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서 없고, 과거는 이미 흘러가 버려서 없기 때문에 오직 현재만 존재합니다. 이를 ‘크로노스(chronos)'라고 합니다. 반면 마음으로 파악하는 인간적 시간은 과거는 ‘기억’으로 현재 안에 있고, 미래는 ‘기대’로 역시 현재 안에 있어 과거와 미래가 언제나 현재 속에 함께 합니다. 이를 ‘카이로스(kairos)’라고 합니다.

 

'시간을 묻힌' 사진 한 장이 40여년의 세월을 흘러 고스란히 제 마음속에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제 마음속에 미세한 설렘의 파장이 일어납니다. 그 옛날의 연애시절의 감정까지 소환해 내니까요. 지금 우리는 70의 노년을 맞았습니다. 저는 새벽시간에 다도(茶道)를 지키면서 차를 마시지는 않지만 찻잔에 차를 부으면서 코끝을 댑니다. 그러면 그 미묘한 차향이 순간 스칩니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귀한 향기'입니다. 이처럼 집사람은 제 곁에서 늘 향기로 피어나는 선한 사람입니다. 축복입니다. 이 축복이 아들한테까지 이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기도합니다.

 

(202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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