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엘리제를 위하여 - 루트비히 판 베토벤

송담(松潭) 2021. 10. 15. 15:36

엘리제를 위하여 - 루트비히 판 베토벤

 

 

서양음악사에서는 주연이었지만, 사랑에서만큼은 그렇지 못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악성(樂聖) 루트비히 판 베토벤입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베토벤의 대표곡을 고르라면 한 곡을 꼽기 힘들어할 것입니다. 너무나 유명한 '운명' 교향곡, 연말이면 반드시 연주되는 '합창'교향곡, 바이올린 협주곡의 왕으로 손꼽히는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61> 〈피아노 협주곡 5번 E장조 Op.73 '황제'> 그 유명한 소나타 '비창' '월광' 등 열 손가락에 꼽기도 어려울 만큼 많습니다. 하지만 피아노를 배울 때 비교적 초반에 배우면서 어릴 때부터 친숙하게 느끼는 곡이라면 바로 이 곡이 아닐까요? <피아노 솔로를 위한 바가텔 a단조 Woo 59>.

 

우리에게는 '엘리제를 위하여'로 널리 알려진 이 곡은 1810년 작곡되었지만, 세상에 공개된 것은 베토벤 사후 40년이 훌쩍 지나서였습니다. 이 곡은 제목에 관련된 이야기로 유명한데, 바로 ‘엘리제'가 누구인가 하는 미스터리입니다. 가장 유력한 설이 악보에 '테레제를 위하여'라고 적었지만 베토벤이 워낙 악필이었던 탓에, '엘리제'라고 오독했다는 설입니다. 사실 그해에 베토벤이 주치의의 조카인 테레제 말파티 Therese Malfatti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했거든요.

 

많은 분들이 알고 있듯, 베토벤은 여러 명의 여인들에게 고백을 거절당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은 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세 통의 편지가 발견됩니다.

 

토요일이 되어야만 당신이 내 편지를 받아볼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속상해서 눈물이 나려 하오. 당신이 아무리

날 사랑한다 해도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만은 못할 것이오.

- 두 번째 편지중

 

침대에 누워 있는 내 머릿속에는 온통 당신 생각뿐이오. 나의 불멸의 연인이여.

- 세 번째 편지중

 

진심을 가득 담은, 절절한 러브레터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는데요. 이제는 워낙 유명해진 문구인 '불멸의 연인'은 누구였을까요? 여러 명의 후보가 거론되고 있는데, 지금부터 가장 유력한 여성들을 잠시 소개해보겠습니다.

 

베토벤은 여덟 살 때부터 피아노 신동으로 명성이 자자했고, 실력 역시 모차르트에 견줄 만했습니다. 그 덕에 많은 귀족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도 했습니다. 1799년, 그는 헝가리의 뼈대 있는 귀족 가문의 자매를 학생으로 받게 됩니다. 자매 모두 베토벤에게 푹 빠져서 당시 빈 시내에 이들을 둘러싼 루머가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동생 요제피네 폰 브룬스빅josephine von Brunsvik이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 첫 번째 후보입니다.

 

베토벤은 그녀를 제자로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에게 빠져들지만, 요제피네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상대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자신보다 27살이나 많은 남자로, 집안의 경제 사정으로 인한 정략결혼이었습니다. 팔려 가듯 결혼했어도 네 명의 자녀를 낳고 무난한 결혼 생활을 했는데, 그조차도 길지 못했고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25살의 나이에 과부가 됩니다. 이후 그녀는 베토벤과 오랫동안 연인 관계를 유지했고 실제로 약혼까지 합니다. 베토벤은 그녀에게 '안단테 파보리(피아노를 위한 안단테 F장조,Woo 57)'라는 피아노곡을 헌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끝끝내 신분 차이를 극복하지는 못했습니다.

 

베토벤이 30세를 갓 넘겼을 무렵, 그의 생애를 평생 따라다녔던 어두운 그림자가 찾아옵니다. 청력 이상이었는데요. 마음 둘 곳 없이 방황하던 베토벤에게 운명처럼 찾아온 여인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 후보, 줄리에타 귀차르디 Giulietta Guicciardi 입니다. 오스트리아 백작가의 딸이었던 줄리에타가 베토벤의 제자가 된 것은 그녀가 19살 때였습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다른 귀족과 결혼하면서 이들의 관계는 끝나버립니다. 베토벤은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곡을 써서 그녀에게 헌정했는데, 이 곡이 바로 '월광' 소타나 (피아노소나타 14번 c#단조 Op. 27-2)입니다.

 

월광은 '비창' '열정'과 함께 베토벤이 남긴 3대 피아노 소나타로 꼽히는 곡입니다. 1악장에는 '느리게, 한 음 한 음을 깊게 눌러서'라는 뜻의 지시어 아다지오 소스테누토가 적혀 있습니다. 어쩌면 사랑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투영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하기 까다로운 곡으로 종종 꼽는 곡입니다.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라 작곡가가 요구하는 감성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는지 연주하는 동안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고 합니다. 월광은 느리고 서정적인 1악장으로 시작해서 2악장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다가, 3악장에서 마침내 뜨거운 열정을 터뜨리는 곡입니다. 3악장은 딴딴딴딴 - 하면서 끊어 치는 주법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연출하는데요. 지시어 프레스토 아지타토, ‘매우 빠르게, 격한 감정을 담아서'라는 뜻처럼 거칠게 휘몰아치는 것이 특징입니다. 실제로, 베토벤이 “이 곡의 3악장을 제대로 치면 피아노가 박살이 날 것”이라고 했다니, 그가 이 곡에 얼마나 뜨거운 사랑을 담았는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불멸의 연인, 마지막 후보는 안토니 브렌타노 Antonie Brentano 입니다. 베토벤의 편지 내용에서 유추해볼 때 당시 만났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여인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남편과의 사이에서 네 명의 자녀가 있는 유부녀였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남편 프란츠 브렌타노Franz Brentano와 베토벤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죠.

 

많은 베토벤 연구가들은 그녀만이 베토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유일한 여인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랑과 죄책감 사이에서 고뇌하던 베토벤은 결국 그녀 역시 놓치고 맙니다. 이번에도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매달렸던 베토벤은 1823년 <디아벨리 변주곡Op.120>을 안토니에게 헌정합니다.

 

베토벤은 늘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이 세 명의 여인 외에도 실제로 얼마나 많은 연인이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베토벤의 연애사를 살펴보고 있으면 어딘가 답답해집니다. 그는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다가도 막상 상대방이 관심을 보이면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게다가 그 상대들은 대부분 임자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이룰 수 없는 사랑 전문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토벤에게 사랑이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가정사가 불우했고, 고질병이었던 청각장애로 인해 더욱 예민해졌습니다. 비록 행복한 결말을 맺지는 못했지만, 그는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음악으로 풀어냈습니다. 그 덕에 우리가 오늘날 이런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고맙고도 미안해집니다.

 

 

< 2 >

 

생상스와 함께 떠나는 사파리 투어

 

 

음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술입니다. 물론 콘서트장에 가면 지휘자와 연주자가 곡을 연주하는 것을 볼 수 있고 텔레비전에서 가수가 나와 춤추며 노래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거기서 즐기고자 하는 것은 귀를 통해 들려오는 아름다운 선율입니다. 시각적인 즐거움은 부수적일 뿐입니다. 눈을 감으면 음악은 오히려 마음속에 더 가득 차오릅니다. 때로는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기도 하고 꽃밭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향긋하기도 합니다. 어떤 음악은 살아 움직이는 듯 들려옵니다. 마치 생물처럼.

 

실제로 클래식에는 이런 생물을 주제로 한 곡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카미유 생상스 Camille Saint-Saens, 1835-1921의 <동물의 사육제>죠.

 

보통 클래식은 종교적 색채로 인해 엄숙하거나 귀족의 취향처럼 고상할 것으로 생각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물들을 테마로 한 이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유쾌함이 이런 선입견을 단번에 깨줍니다. 그런 독특함 때문인지 이 작품은 생상스의 대표작임에도 그의 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한 아이러니한 작품입니다.

 

그 이유는 다른 누구도 아닌, 생상스 본인이 이 작품의 출판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생상스는 이 작

품을 진지한 고민을 가지고 쓴 게 아니라, 일종의 장난처럼 기분 전환 삼아 만들었다고 합니다. 평소 작곡가로서 깊이 있

고 진중한 음악을 추구하던 그였기에 이 곡을 출판하는 것이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이미지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죠. 그래서 같은 해에 작곡한 <교향곡 3번 c단조 Op.78 ‘오르간’>은 출판한 반면, <동물의 사육제>는 본인이 살아 있는 동안은 출판할 수 없다는 계약서까지 작성했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오늘날 전 세계에서 연주되는 생상스의 대표작 <동물의 사육제>가 정식으로 출판되고 공개 초연이 이루어진 것은

그가 사망한 다음 해인 1922년이었습니다. <동물의 사육제>덕분에 그의 다른 곡들까지 조명 받는 것을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카미유 생상스는 프랑스의 낭만파 작곡가로, 우리에게는 <동물의 사육제> 보다도 어쩌면 피겨 여왕 김연아의 스케이팅곡인 <죽음의 무도 Op.40>이 더 유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생상스는 두 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했고, 네 살 때 이미 작곡을 시작한 신동이었어요. 그 덕분에 '프랑스의 모차르트'라고 불렸을 정도입니다. 작곡뿐만 아니라, 수학, 철학, 문학, 미술 등의 분야에서도 뛰어났다고 하니 과연 천재 중에 천재였네요. 피아니스트로서도 유명했는데, 특히 오르간 연주에 뛰어나 1857년에는 프랑스 오르가니스트의 최고봉이라는 파리 성 마들렌 성당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작곡가로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생전에는 오르가니스트로 더 유명세를 떨쳤다고 합니다. 당대 피아노의 신이라 불린 리스트가 생상스를 보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오르가니스트”라고 칭송했을 정도이니, 연주자로서 그의 명성을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동물의 사육제>는 어떤 곡이기에 이렇게 시간을 초월해,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사랑받을까요? 곡들은 장르에 따라 저마다 특징이 있습니다. 레퀴엠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는 곡인 만큼 장중하고, 세레나데는 연인에게 불러주는 노래이니 달콤하며, 왈츠는 춤추기 위한 곡이라서 발랄합니다. 한편 곡의 제목으로도 상상을 해볼 수 있습니다. 베드르지호 스메타나 Bedrich Smetana의 <나의 조국>에서는 애국심이 연상되고 베토벤Beethover 의 '월광 소나타'는 달빛이 주는 은은함과 달의 변화무쌍함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쇼팽chopin)의 에튀드 Op.10-4)는 '추격'이라는 제목이 붙었는데 곡을 들어보면 “과연”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됩니다.

 

그러면 생상스의 곡에 쓰인 '사육제'는 어떤 느낌일까요? 사육제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다면, 영문명인 카니발canival을 떠올려 보세요. 유럽과 남미 등에서 매년 열리는 큰 축제인 카니발의 이름을 빌린 이 곡은, 실제로 1886년에 (축제까지는 아니지만) 생상스가 오스트리아에서 휴가를 보낼 때 친구들 앞에서 연주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휴가와 축제로 이어지는 여유로움과 즐거움, 흥분, 그 어딘가에 이 곡이 있지 않을까요?

 

태생이 이러하니 생상스가 만들 때는 총 14개의 소품으로 이뤄진 실내악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대규모 오케스트라

로 연주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각 악장마다 다양한 악기를 통해 표현한 동물들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 작품에 어떤 동물들을 담아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곡의 시작에서는 '동물의 왕' 사자가 나섭니다. 어떤 동물이 주인공인지 모르고 들어도 곡 자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만큼, 두 대의 피아노로 시작한 테마는 현악기의 웅장한 연주로 이어집니다. 곡의 정식 제목은 '사자왕의 행진'으로, 제목처럼 숲속 동물들을 내려다보며 위엄 있게 등장하는 사자의 걸음걸이가 연상되는 곡입니다. 다른 동물들 또한 생상스의 상상 속에서 완성된 특징이 곡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3번 곡의 주제인 '당나귀'는 옥타브를 넘나드는 피아노 연주로 마치 당나귀들이 자유롭게 들판을 뛰어다니듯 생동감 있게 들립니다. 4번 곡은 이와 정반대로 느리게 연주되는데, 엉금엉금 기어가는 '거북이'를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피아노 외에도 플루트와 바이올린의 선율이 귀를 사로잡는 7번 곡은 마치 수족관 속의 물고기가 헤엄치는 듯한 신비로운 선율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14가지 동물들 중 가장 유명한 동물은 뭐니 뭐니 해도 13번째 등장하는 '백조'입니다. 수면

을 미끄러지듯 우아하게 헤엄치는 백조의 모습 그대로, 우아하고 로맨틱한 곡의 분위기 덕분에 첼로 독주곡으로도 아주

유명합니다. 생상스 역시 이 곡만큼은 꽤 흡족해했던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4곡 중 유일하게 이 곡만 생전에 출

판을 허락했던 것입니다. 만약 100년 후에도 <동물의 사육제>가 이렇게 사랑받을 줄 알았다면, 생상스의 생각이 좀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렸을 적에 부모와 함께 갔거나, 성인이 되어 어린 자녀들과 함께한 동물원 나들이는 누구에게나 행복한 추억이죠. 동

물원에 가고 싶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오늘 <동물의 사육제>를 들어보면 어떨까요? 듣는 것만으로도 마치 동물원에 온 듯한 기분이 들 것입니다.

 

 

< 3 >

 

비올레타 아리아 - 주세페 베르디

 

 

1852년 2월, 파리의 한 극장에서 상연되던 연극이 끝난 후, 객석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오페라의 거장 주세페 베르디 Giuseppe Verdi, 1813~1901) 였습니다. 그리고 1년 뒤에 그는 자신이 본 연극을 오페라로 만들어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세기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탄생입니다.

 

<라 트라비아타>가 우리에게 특별히 더 의미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상연된 오페라이기 때문입니다. 1948년 명동에서 〈춘희>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번역된 이 오페라의 막이 올랐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 라 트라비아타는 '거리의 여인'이라는 뜻으로, 극의 주인공 비올레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작품의 원작은 《삼총사》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유명한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아들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Alexandre Dumas fils 가 쓴 《동백꽃 여인》입니다. 고급 매춘부와 젊은 부르주아 청년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이 소설은 작가인 뒤마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그런데 베르디는 많은 작품 중에서 왜 유독 이 작품에 감동해 오페라까지 만들었을까요? 단란했던 결혼 생활도 잠시, 아이들과 아내까지 먼저 병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베르디의 아픈 사연은 앞서 소개했습니다. 사별의 상처가 아물 무렵, 그에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은 미모의 소프라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였는데요. 그녀는 미혼모에 남자관계가 복잡하기로 소문난 여성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기 힘들어했는데, 그나마 파리는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베르디는 이 작품의 내용이 자신들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에 큰 감동을 받았고, 오페라의 소재로 삼기로 결심합니다.

 

총 3막으로 구성된 〈라 트라비아타>의 주인공 비올레타는 ‘코르티잔’이라고 불리는, 당시 상류사회의 고급 매춘부였습니다.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비올레타에게 다가오는 남성은 많았지만, 정작 그녀는 '사랑'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알프레도는 달랐습니다.

 

비올레타의 주요 아리아 중 하나인 '아, 그대였던가'는 자신에게 찾아온 진정한 사랑에 설레면서도 혼란스러워하는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소프라노의 최상급 테크닉뿐만 아니라 감정과 연기력까지 한 번에 보여줄 수 있는 곡이라 유명 콩쿠르나 오페라 극장 오디션의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합니다.

 

비올레타는 사교계를 떠나 알프레도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만, 아들이 창녀와 살고 있다는 것을 안 알프레도의 아버지가 아들 몰래 비올레타를 찾아와 아들의 미래를 위해 떠나달라고 간청합니다. 결국 그녀는 알프레도를 떠나 사교계로 돌아갑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자신을 배신했다고 오해한 알프레도는 파티장으로 찾아가고, 그녀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분노해 그녀의 얼굴에 돈을 뿌리며 모욕을 줍니다. 아들을 위해 헤어질 것을 종용했지만, 아들이 더 망가지는 모습을 본 알프레도의 아버지는 뒤늦게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알프레도는 바로 비올레타를 찾아가지만 그녀는 오래전부터 앓던 폐병이 깊어져 있었고, 결국 그의 품에서 조용히 숨을 거둡니다. 3막에 등장하는 '지난날의 즐거운 꿈이여, 안녕' 역시 이 작품에서 손꼽히는 비올레타의 아리아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품이지만 초연 당시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습니다. 매춘부인 비올레타를 고귀하게 묘사하고 당대의 현실을 여과 없이 담아냈다는 점에서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항간에는 병약한 캐릭터인 비올레타의 배역을 너무 건장한 배우가 맡았기 때문이란 우스갯소리도 있었는데, 결국 배우를 교체하고 극의 배경을 100년 전으로 바꾼 후에야 다시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편 〈라 트라비아타)의 백미는 안토니오와 비올레타가 각자 한 구절씩 주고받고 마지막에 합창하는 ‘축배의 노래’입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노래와 슬픈 사랑 이야기 등 이 오페라가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이유를 들자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주목해야 할 부분은 베르디가 표현한 비올레타라는 인물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녀는 자기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인물입니다. 사생아로 태어나 고아원에서 자랐고, 생존을 위해 거리의 삶을 살아야 했던 여인 비올레타! 게다가 연인에게 진실한 사랑과 미움을 모두 받고, 묵묵히 견뎌냈을 그녀를 감히 누가 욕할 수 있을까요.

 

 

< 4 >

 

하바네라 - 조르주 비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가 현대에 와서는 예측 가능한 비극이라면 비제의 <카르멘>은 지금 봐도 파격적인 작품입니다. 1875년 3월 3일, 파리의 한 공연장에서 극이 끝나기도 전에 관계자들이 큰 충격에 빠집니다. 관객의 대부분이 공연장을 나가버렸기 때문입니다. 초연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이 공연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오페라가 된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의 마지막 오페라 <카르멘>입니다.

 

타이틀롤인 카르멘은 여러 가지 면에서 관객을 꼼짝 못 하게 하는 매력을 보여주는데, 그 시작은 당연히 노래입니다. 그녀가 등장하자마자 부르는 아리아 ‘하바네라’는 오페라를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한 소절만 들으면 알 수 있을 만큼 유명한 곡입니다. 오페라 역사상 최고의 팜므파탈인 그녀가 이 하바네라로 돈 호세는 물론 관객의 마음을 첫눈에 뺏어버립니다.

 

대부분의 오페라 여주인공이 소프라노인 것과 달리, 카르멘은 중저음대의 메조소프라노라서 남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관능적이고 위험한 카르멘의 캐릭터는 탱고 리듬의 음악으로 표현됩니다. '사랑은 길들일 수 없는 새, 원하지 않으면 불러도 잡을 수 없지'라는 가사를 통해 카르멘이란 인물이 그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롭고 매혹적인 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장에서 동료에게 칼을 휘둘러 경찰서로 연행되어 온 카르멘은 그곳에서 젊은 하사관 돈 호세를 만납니다. 그에게는 고향에 두고 온 병든 어머니와 약혼녀가 있었지만, 자신을 유혹하는 카르멘에게 강하게 끌립니다. 결국 그녀의 도주를 도와주고 대신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두 달 뒤 석방된 돈 호세는 카르멘을 찾아가 사랑을 고백하고, 그녀를 차지할 욕심에 탈영해서 카르멘과 함께 마약 밀수업자가 됩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잠시 떠났다 돌아오니, 카르멘의 곁에는 새로운 남자 투우사가 있었습니다. 질투에 눈이 먼 그는 결국 카르멘을 죽이고 맙니다.

 

'카르멘'은 이전의 오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캐릭터였습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못해 태연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여주인공은 처음이었던 거죠. 기존의 청순 가련한 여주인공에 익숙한 관객들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캐릭터였을 것입니다. 게다가 치정 살인으로 끝나는 스토리에 관객들은 불쾌감과 혐오감을 느꼈습니다.

 

그 당시 오페라 극장은 오늘날 영화관과 비슷했는데요. 대부분 가족 단위로 오거나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사랑받았습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고급 매춘부가 주인공이었던 <라 트라비아타>도 비난을 피하지 못했는데, 당시 최하층민이었던 집시가 주인공인 <카르멘>은 어땠을지 상상하고도 남을 일입니다.

 

사실 공연을 올리기 전에도 수많은 고비가 있었습니다. 극장장이 극단적인 결말에 불만을 표하며 사임하기도 했고, 연주자와 합창단은 무대에 오르지 않겠다고 버티기도 했습니다. 이런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비제는 작품의 완성을 위해 끝까지 힘썼다고 합니다. ‘하바네라’의 경우 첫 공연에 오르기 전까지 수십 번의 수정을 거듭했다고 하니, 명곡이 탄생한 배경도 짐작이 갑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카르멘> 초연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된 비제는 초연 3개월 만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예나 지금이나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임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파리에서는 대중에게 외면받았지만 당시 음악가들에게 비제의 <카르멘>은 혁명이나 다름없었어요. 그만큼 뛰어난 이 작품을 오스트리아의 관객들은 알아봐 주었습니다. 파리에서의 실패 이후 진행된 빈 공연에서 <카르멘>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특히 브람스는 이 작품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20회나 관람했고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오케스트레이션을 공부하고 싶다면 <카르멘>을 연구하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비제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이 공연에 쏟아지는 박수갈채를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유럽을 뒤흔든 이 작품의 성공을 끝내 보지 못한 채 비제는 눈을 감았습니다.

 

오늘날 <카르멘>이 이토록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형식과 틀을 깬 캐릭터의 등장과 비제의 음악적 실험성 때문일 것입니다. 항상 처음이 어려운 법입니다. 한 예술가가 만들어낸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은 '카르멘'을 하나의 장르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바네라’ 만큼이나 유명한 ‘투우사의 노래' 역시 스페인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곡이며, 돈 호세의 사랑 고백을 담은 '꽃노래'도 대표적인 테너 아리아 중 한 곡입니다. 비제도 언젠가 사람들이 이 작품의 진가를 알아줄 날이 올 거라 생각했을까요? 그는 죽기 전날, <카르멘>의 빈 공연 계약서에 사인했습니다.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이 작품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결국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마성의 여자 카르멘, 앞으로 시간이 더 흘러도 그녀는 자신만의 매력을 뿜어내며 관객을 유혹하고 있지 않을까요?

 

 

여자경 / ‘비하인드 클래식’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