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의 밤풍경
미술가들은 어떻게 하면 새로운 것을 창작해 낼까 하고 처음에는 대상(사물 또는 풍경)을 있는 모습 그대로 그리다가 나중에는 보는 사람의 느낌, 감정, 인상을 화폭으로 나타낸다. 또한 대상을 다각적인 시각으로 보고 모자이크형태의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림에서 대상을 아예 없애버리고 화폭에 점을 찍거나 물감을 흩뿌리기도 한다. 이러한 예술가들의 도발(挑發)은 새로운 사조(思潮)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창작은 예술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도 생활 속에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다. 창작은 기존의 것이라도 새롭게 변화시키면 그것이 곧 창작이다. 우리 마을 이성수&홍광옥 이사님 정원은 날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바뀐다. 그분들은 화폭이 아닌 자연에다 매일매일 그림을 그리며 여유롭게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곳은 두 부부의 놀이터이자 창작의 공간이다.
원래 ‘광성농원’이라는 팻말을 붙였던 이 정원은 명품 나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몇 년 전부터 나무 주변에 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언제 보아도 깔끔하고 화려하면서 은은한 정원은 보는 사람마다 “세상에! 천국이 따로 없네!”하고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두 부부는 수시로 꽃을 보식하고 조형물을 배치하는 재미에 한껏 취해 있다.
전원생활 20년을 넘긴 이성수님의 나무와 꽃사랑은 대단하다. 그분은 한 번 필(feel)이 꽂히면 꼭 자기정원으로 들여와야 직성이 풀린다. 그동안 나무 사들인 것 때문에 아내와 ‘칼로 물베기’도 많이 했을 것이다. 또한 계절마다 농원에서 꽃들을 무진장 사 나르니 꽃집 주인장이 매우 반기는 사람 중 한 분일 것이다. 나무나 꽃을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분의 가슴은 뛴다. 나는 그 박동소리를 잘 안다.
정원의 디자인과 공간배치는 학창시절부터 오드리 헵번이라고 불러졌던 홍광옥님의 미(美)적 감각이 투영되어 있다. 조형물은 상징을 통해서 어떤 의미를 전하듯, 정원에 배치된 소품들은 어떤 것들은 오밀조밀 아기자기하고, 어떤 것은 날렵하고, 어떤 것들은 묵직하고 침묵한다. 펼쳐진 인간군상같은 조형물들은 가족처럼 따뜻하고 포근하고, 수줍은 소녀상은 처녀시절 자신의 모습을 추억하기도 할 것이다. 귀여운 동물 조형물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 그리고 동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이렇게 스토리(Story)가 있는 정원을 만들고 산다는 게 바로 창작이다. 누군가 ‘나는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는 말처럼 생활의 모든 것이 예쁘고 아름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분은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며 언제나 ‘숲속의 공주’로 살고 있다.
최근에는 정원에 야간조명을 했다. 아름다운 정원에 ‘빛의 축제’를 연출하지 않을 수 없었나 보다. 깊은 밤, 녹음의 정원 사이로 정적이 흐르고 먼 산에 뻐꾸기 우는 소리 들리니 “아! 이를 어찌 하리오!” 꽃과 나무들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는 풍경 속에 오늘도 전원의 밤은 깊어갈 것이다.
(2021.6.11)
'전원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월의 첫날에(2018.12월) (0) | 2021.12.01 |
---|---|
2021 여름 (0) | 2021.07.21 |
마음속의 잡초 (0) | 2021.05.23 |
2021 봄 (0) | 2021.04.28 |
사소한 것으로부터의 상상 (0) | 2021.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