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전원에 도사린 인간욕망

송담(松潭) 2020. 2. 5. 06:08

전원에 도사린 인간욕망

 

 

 새벽 4시에 일어났습니다. 어제 밤 11시에 잤으니 5시간 잤네요. 요즘 계속해서 기상, 수면시간이 이런 패턴입니다. 무슨 고민꺼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설렘입니다. 이 나이에 무슨 설렘? 5월이면 전원생활 만 6년이고 햇수로 7년째인데 저는 아직도 처음과 별반 다름없이 이른 새벽에 일어나면 가벼운 설렘이 있습니다. 정원과 텃밭에서 할 일 때문입니다.

 

 어제는 벽돌집에 가서 디딤돌(석재)을 약간 주문해 놓고 왔습니다. 전원에 와서부터 물건을 사기 전에는 집사람과 통화를 해야 합니다. 먼저 소요금액을 말하고 구매 이유를 설명해서 집사람의 결재를 받아야 계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벽돌집 사장님은 “요즘 남자들은 모두 부인들 눈치보고 살구나!”했을 것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남자들은 가끔 ‘씨잘데 없는 곳’에 돈을 쓰고 부인한테 깨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제는 사전 통화해서 결재를 득했음에도 집에 와서 꾸중을 들었습니다. “항상 마지막이다고 하면서 또 일판을 저지른다. 이제 제발 그만 좀 멈추라”고 하더군요. 저는 예전과 달리 ‘핵폭탄’을 터뜨리지 않고 꾹꾹 참았습니다. 집사람의 건강이 항상 노심초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어제의 공포가 사라지고 평화로운 시간입니다. 역시 ‘남자가 참으면 가정에 복이 있나니’입니다.

 

 디딤돌을 어떻게 시공할 것인가 하고 이곳저곳 인터넷 바다를 헤매고 나니 여러 방법이 있었습니다. 색깔 있는 벽돌로 바닥을 장식해 놓은 시공도 있었고 아름다운 설치 예술품 같은 것도 많았습니다. “아! 나의 놀이터 정원과 텃밭이 있는 한 돈쓸 일은 계속되겠구나. 집사람한테 꾸중 들을 일도 계속 생기겠구나!” 중얼댑니다.

 

 갑자기 작가 한귀은의 글이 떠오릅니다. 뭐든 너무 잘 정리되어 있을 이유가 없고 그저 편하면 그만이라고 합니다.

 

 먼 데 바라볼 수 있는 창,

 거닐 수 있는 뒷마당,

 저녁별을 볼 수 있는 데크,

 강아지가 뛰놀 수 있는 마당,

 주섬주섬 물건들을 챙겨 넣을 수 있는 창고,

 그런 것들이 편안하게 있으면 충분하다.

 

 전원생활을 하면서도 인간은 욕망을 버리지 못하나 봅니다. 더 좋은 나무를 들여놓고, 더 멋있게 만들려는 욕망은 재벌가의 고층짓기 그것과 다름없습니다. 사실 저에게도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별 관심도 없는데 남에게 보여주려는 허영이 겹쳐있습니다. 집 사람 말대로 이제 그만 멈추고, 작가 한귀은처럼 편안하면 충분한데 말입니다. 진정으로 자연이 좋아 전원에 왔다면 소박해져야겠습니다. 어쨌든 어제는 입춘대길(立春大吉). 빨리 동이 트기를 기다립니다.

 

(2020.2.5 새벽에)

 

 

 

 

욕망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지만

사랑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하다.

-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중 -

 

 

가까운 사람 중에 부자로 살면서도 항상 결핍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날 때마다 하는 말이 ‘돈 없다’인데 그 심리를 들여다보면 항상 더 많이 가진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살기 때문입니다. 부자든 가난하든 자신의 현재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하다.’는 말이 크게 다가옵니다. 세상을 살면서 진정 중요한 것은 재물의 많고 적음을 한탄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인격적으로 부족하고 모자란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겠습니다.

 

나는 무엇을 갖고 있지 않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제일 먼저 떠오는 것은 ‘겸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낮은 자세로 살아야겠다고 하면서 사실상 오만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내가 갖추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늘 생각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20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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