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처럼 살고 싶다네
지린 문제완作 <철로 그리고 해바라기>
친구여
메마른 인생에 우울한 사랑도
별 의미 없이 스쳐 지나는 길목
화염 같은 더위 속에 약동하는 푸른 생명체들
나는 초록의 숲을 응시한다네
세상은 온통 초록
이름도 없는 모든 것들이 한껏 푸른 수풀을 이루고
환희에 젖어 떨리는 가슴으로 8월의 정수리에
여름은 생명의 파장으로 흘러가고 있다네
무성한 초록의 파고, 영산홍 줄지어 피었다
친구여
나의 운명이 거지발싸개 같아도
지금은 살고 싶다네
허무를 지향하는 시간도 8월엔
사심없는 꿈으로 피어 행복하나니
저 하늘과 땡볕에 울어 젖히는 매미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 속에 나의 명패는
8월의 초록에서 한없이 펄럭인다네
사랑이 내게 상처가 되어
견고하게 닫아 건 가슴이 절로 풀리고
8월의 신록에 나는 값없이 누리는
순수와 더불어 잔잔한 위안을 얻나니
희망의 울창한 노래들은 거덜난 청춘에
어떤 고통이나 아픔의 사유도
새로운 수혈로 희망을 써 내리고 의미를 더하나니
친구여,
나는 오직 8월처럼 살고 싶다네
고은영/시인
<독자 감상>
8월의 첫날, 친구 김홍기 박사께서 고은영 시인의 '8월처럼 살고 싶다네' 를 보내왔습니다. 처음 접한 시입니다.
해마다 여름이 오면 폭염을 견디기 어려워하며 빨리 계절이 바뀌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시인은 오히려 ‘화염 같은 더위 속에서 약동하는 푸른 생명체’를 발견한다니...
이처럼 뜨거운 여름도 긍정으로 바라보면 그 속에서 삶의 역동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지린 문제완의 그림 <철로 그리고 해바라기> 가 시와 딱 어울립니다.
별빛이 그리운 여름밤
모닥불 토닥이는 시골집 마당
멍석에 드러누워 밤하늘을 쳐다보면
지천으로 피어난 별들의 천국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쏟아지는 별빛
그별 하나에 염원을 담아보던 시절
밤하늘은 온통 외경(畏敬)의 빛이었습니다
이제, 무서리 내린 세월을 이고
아파트 창가에서 바라본 도심의 밤하늘
수많은 별무리 어디로 갔을까?
인간사 그리워 모두 지상에 내려와
천상의 이야기 속삭이듯 발아래 반짝이는가!
마음속 하늘의 별빛은 그대로인데…
이성광 / 전남 목포시 소영길
8월의 꽃밭
친구 J에게
친구 J가 고향집에 가 있다.
홀로 있는 친구가
하루종일 생각났다.
삼복더위가 정점을 찍은 지금
친구 있는 고향집에는
귀뚜라미,
풀벌레 소리 들릴 것이다.
밖을 보니 보름달이 차오르고 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시 하나와 산문 하나를 보내며
친구를 생각해 본다.
(2019.8.13)
< 1 >
세상 일이 하도 섭해서
나태주
세상 일이 하도 섭해서
그리고 억울해서
세상의 반대쪽으로 돌아앉고 싶은 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어버리기라도 하고 싶은 날
내게 있었소
아무한테서도 잊혀지고 싶은 날
그리하여 소리내어 울고 싶은 날
참 내게는 많이 있었소
< 2 >
지금 내 마음 어딘가가 불편하고 아프다는 건 삶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묻고 있음이다. 무언가 어긋나 있다는 뜻이다. 마음은 아픈 곳에 먼저 가 닿는다. 지금 내 마음 아프다면, 아픈 그곳에 가만 귀 기울여 볼 일이다. 나의 슬픔의 의미를 묻는 것은 내 삶과 타인에 대한 예의이다. 방치된 슬픔은 언젠가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므로, 삶은 원래 슬프고 아픈 게 아니라 나 자신 때문에 아픈 것, 참 소중한 깨달음이다.
김선경 /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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