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피한 추방
1년 6개월 전 옆집 토부다원 사장님이 집을 팔고 떠난 후 그곳에서 기르던 고양이 30여 마리가 사방으로 흩어진 후, 어느 날 고양이 한 마리가 새끼 세 마리를 끌고 우리 집으로 왔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고 고양이는 더욱 싫어한다. 고양이들이 날마다 우리 집 정원에 와서 똥을 싸고 가면 “애이, 개새끼들!”하며 짜증을 내곤 한다. 고양이 똥을 치우면서 “애이, 고양이 새끼들!”하지 않고 애꿎게 개들을 욕한 것이다.
집에 온 고양이를 쫓아내려고 했는데 새끼들을 보니 차마 박절하게 할 수 없었다. 고양이가 집에 있으면 쥐나 두더지도 잡기 때문에 이로울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서 음식물 찌꺼기와 사료를 주기 시작했고 그후 새끼들 세 마리만 관리하게 되었다. 녀석들은 사료를 먹고 자라면서 우리 집 창고 밑을 보금자리로 삼아 끼니걱정 없이 태평성대를 누렸고, 나는 다른 고양이들이 우리 집에 얼씬거리면 바로 쫓아냈다.
그런데 새끼들이 어미가 되어 어디서 새끼를 낳은 후, 새끼 다섯 마리를 데리고 왔다. 이제 우리 집에 상주하는 고양이가 여덟 마리. 영국의 경제학자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1766~1834)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며 훗날 식량이 부족해 사회가 극도로 혼란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동물의 경우에도 이같은 가설이 적용되어 만약 앞으로 고양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 보았다. 예전에 옆집 토부다원 데크에 우글거렸던 고양이 집단! 동물애호가 아닌 나로서는 결코 보고싶은 풍경이 아니다. 사료공급도 감당할 수 없고 골칫거리가 될 게 뻔하다. 더군다나 집사람이 개나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에 비록 야외에서 기르더라도 더 이상 개체수가 늘어나는 것을 허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데리고 온, 아직 눈이 뜨지 않은 새끼들을 내가 집게로 집어 다른 곳으로 옮겨 놓았다. 그런데 옮겨 놓자마자 어미들이 새끼들을 하나씩 하나씩 입에 물고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다. 급기야 새끼들을 집게로 집어던져 공중비행을 시키는 등 비정한 방법으로 단호하고 매정한 조치를 했음에도 어미들은 또 다시 집으로 데리고 오기를 반복했다. 결국 내가 졌고 새끼들이 조금 크면 다시 내보낼 작정으로 방법을 바꿨다.
며칠 지나니 새끼들은 눈을 뜨고 틈만 나면 어미젖을 빨려고 필사의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기도 했다. 최근에는 요것들이 제법 똘망똘망해졌다. 그러나 나는 새끼들에게 위협을 주면 어미가 다른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리라 생각하고 새끼들이 나타나면 막대기를 두들기며 쫓아다녔다. 그러면 새끼들은 매번 쪼르르 구멍 속으로 숨어버린다. 어미들은 이런 나를 지켜보면서 꼼짝도 않고 배짱을 부렸다.
어떻게 고양이들을 줄일까하고 고심하고 있는데 이웃들이 “쫓으려고 애쓸 필요 없이 며칠만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자연적으로 사라진다”고 조언해 주었다. 그동안 키워온 정 때문에 차마 무지막지한 방법으로 쫓아낼 수가 없어 사료공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세 마리 정도는 그래도 감당할 수 있는데 그 이상은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이 먼저다! 그러니 이제 너희들은 스스로 먹이를 찾아 각자도생하라.”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했다.
며칠째 사료공급을 중단했음에도 고양이들은 계속 버티면서 우리 식구들이 밖에 나갈 때마다 배고프다고 울어대고,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기다리고, 어미는 기진맥진 누워있는데 새끼들은 젖가슴을 자꾸 파고들고... 이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 그러나 이제는 고양이들이 우리 집에 정주하지 말고 야성을 발휘하여 이곳저곳 이동하면서 살기를 바란다.
‘한갓 짐승과의 인연을 끊는 이별도 이렇게 어려운데 사람 사이야 오죽하겠는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2019.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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