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사색의 숲길

송담(松潭) 2019. 4. 28. 11:55

 

사색의 숲길

 

 

 

 

 

 

 

 요즘 산야는 짙은 녹음으로 가기 전에 볼 수 있는 연두색입니다. 나무들이 여린 잎사귀를 막 피어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때가 가장 부드럽고 유순한 산의 모습입니다. 지천으로 흐드러진 화려한 봄꽃도 좋지만 이 연한 연두색 빛깔을 놓치지 않으려고 4월엔 좀 부지런해집니다. 오늘도 새벽 일찍 뒷산에 올라 먼 산을 바라보았습니다.

 

 겨울에는 산 봉오리와 능선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어머니 산처럼 포근해 보였습니다. 옷을 벗은 나무들의 잿빛 군락에 눈이라도 쌓이면 그곳은 어디든 알프스의 산이 됩니다. 그때도 아름다웠던 산에 산 벚꽃이 피고 그 여백이 연두색으로 채워지면 드디어 한 폭의 부드러운 수채화가 완성됩니다. 그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이런 계절에 새벽공기를 마시며 심호흡을 하는 삶이란 참으로 호사입니다.

 

 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스스로 사색의 숲길이라고 이름 지은 길을 만났습니다. 푸석푸석한 소나무 낙엽을 밟으며 신선한 산소 터널을 통과하노라면 양탄자보다 더 푹신함이 발바닥에서 감지됩니다. 소나무 그늘이 만들어준 적막 속으로 흐르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걸으면 오늘 하루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솔밭 사이로 아침햇살이 내리니 땅에는 노을빛이 물들었습니다.

 

 숲길을 걸으면 세상의 잡다한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내 몸까지 푸르게 물들어 신선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때론 먼 옛날 어느 도인이 깊은 산속을 걷듯, 칸트가 매일매일 고정된 시간에 산책을 하듯 나도 그들처럼 신선이 되고 철학자가 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막상 무언가를 생각해내려고 하면 특별한 것이 떠오르지 않습니다오히려 무념무상입니다. 그저 인생의 하산길이 이렇게 편하고 가벼우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뿐입니다.

 

 집에 돌아와 정원의 꽃들과 텃밭을 둘러봅니다. 집사람의 건강이 지금 연착륙 중에 있으나 완전히 쾌차해지면 이 봄이 더 없이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숲길도 함께 걸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2019.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