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달빛 때문에 설친 봄밤

송담(松潭) 2019. 4. 21. 04:09

 

달빛 때문에 설친 봄밤

 

 

 

 

 

늙으면 밤에 자다가 중간에 꼭 일어나 소변을 봅니다. 어제는 텃밭에서 일을 많이 한 탓에 평소보다 1시간 빠른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새벽 2시 반에 깨어 소변을 보고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방이 더워서 거실 쇼파에 잠깐 누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거실 바닥까지 달빛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거실에 높이 설치된 반달창으로 보름달이 보였습니다. ! 달이! 잠이 덜 깬 상태였지만 얼른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는데 자꾸만 고교한 달빛과 밖에 나가면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 도통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에라, 일어나자. 꼭두새벽부터 컴퓨터를 켜고 자판을 두드렸고 달력을 보니 오늘이 음력으로 317일로 보름이 이틀 지났습니다.

 

 달이 떴다고 이렇게 새벽에 일어난 것은 전원에 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체적 노화현상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입니다. 이 나이에 무슨 낭만? 하지만 전원생활을 하면 가끔 설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날 시장에 나가 꽃구경을 하고 꽃이나 채소 모종, 나무 묘목을 몇 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은 가볍게 흥분됩니다. 그래서 집에 도착하면 다른 일 모두 재치고 곧바로 작업을 시작합니다. 또한 진디를 깎은 후 단정하고 시원해 보이는 파란 정원을 바라볼 때, 꽃밭에 핀 꽃들을 살펴보며 여기저기 정원을 순찰(?)할 때도 기분이 좋습니다. 전원생활은 밤에도 운치가 있습니다. 한 밤중에 나가 밤하늘의 별을 보면 별들이 너무 초롱초롱합니다. 그런데 오늘 같은 날 거실에 달이 뜨니 설렐 수밖에요.

 

 저에게는 평균적인 삶,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사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것(야구를 보지 않음), 아직까지 담배를 피움(세상의 유행을 따르지 않는 독종), 술을 마시지만 낮술은 안 마심(해가 떨어져야 마시는 것이 철칙), 브랜드에 무관심(옷에 신경 쓰지 않고 중저가 선호) 등인데 그 중 하나가 전원생활을 택한 것입니다. 전원생활은 불편하기도 하지만 경제논리로 따지면 회수하기 어려운 전원주택 신축비용 등 손해를 보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습니다. 전원이 공기 좋고 물 맑아도 보통사람들은  그 길을 가지 않지만 저는 돈 보다 더 큰 무형의 재산을 향유하고 산다는 데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오늘처럼 달빛 내리는 봄밤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비록 섬진강 시인 김용택님처럼 아름다운 달빛 연정의 시를 쓸 수는 없어도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2019.4.21.03:10)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이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시를 보니 그는 '월인천강(月印千江)'한 저녁, 그만 참을 수 없고 견딜 수 없어 연인에게 전화를 해댔구나.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당가를 서성이다가, 최대한 낮게 숨을 고르고 나서 '달이 떴다고, 섬진강 변이 너무나 환하고 곱다'.

 하고 싶은 말은 그러나 더 있었을 터.

 그 말은 차마 못하고 더듬거리며 '달 이야기'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심전심(以心傳心), 척 알아듣고

 이렇게 답을 보냈다.

 

 '사무쳐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애틋하고도 향기로운 답을 받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과 그리움이 이 시가 된 것이리라. 그래서 스스로 전화하여 마음으로 말 걸고 스스로 답을 만들어 받은 것이 이 작품인 것이다.

 

 절로 미소가 흘러나오는 행복의 순간 같지만

 그 이면엔 쓸쓸함이 아침 안개처럼 흐르기도 한다.

 

 장석남 / 시인, 한양여대 교수

 

 

 

옆집 토부다원 정원(2019.4.22)

 

 

 

 

생각하는 고양이

 

 

 

 

 

 

20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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