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차종민 화백님께 드리는 감사의 글

송담(松潭) 2019. 4. 29. 22:40

 

차종민 화백님께 드리는 감사의 글

 

 

 그동안 비교적 남에게 신세지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했다고 자부하고 살았지만 특별히 제가 받은 것이 너무 많아 염치가 없는 분이 계십니다순천시 주암면 용오름마을에 거주하신 산골화실 차종민 화백님이십니다. 2004년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되어 15년 동안 교류하면서 그림을 비롯한 여러 예술품을 받았고 이렇게 귀한 창작품들은 저희 집의 품격을 한껏 높여주었습니다저는 미술이나 예술분야에 문외한이지만 우선 작품이 마음에 딱 들었고 거실안방, 2층방다락방 등 곳곳에서 은은한 향을 발하고 있습니다부드럽고 섬세한 붓끝이 전하는 소담스런 이야기고도한 예술혼이 숨 쉬고 있는 작품들은 저의 정신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큰 자부심까지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가끔 차화백님을 뵈러 가면 직접 재배하여 만든 수제 녹차, 토종벌꿀, 구찌뽕 소금 등 희귀한 무공해 식품들을 주시는데 제가 들고 간 쥐꼬리만한 선물에 비하면 값으로 따져도 몇 곱절인지 모릅니다. 너무 과분한 선물을 받고 어떻게 보상을 해 드려야 할지 고민만 하고는 지금까지 대충 넘어가기를 반복했습니다. 제 자신이 이렇게 염치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음에도 말로만 고맙다고 한 것이 이제는 여간 부끄럽습니다. 평소 좋은 인간관계는 금전으로 계산되지 않아야 한다는 고상한(?) 사고를 가지고 있지만 오고가는 것이 너무 격차가 크면 서운함이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남에게 더 베푼 사람들에게는 서운한 감정을 가지면서도 차화백님께는 결례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모순입니까. 

 

 

작년 봄에는 보너스로 남해안 모 섬에서 반출이 금지되었다는 ‘새우난’을 주셨는데 땅에 심은 난이 번식하여 저희 집 꽃밭에서 최고 품격을 자랑하며 화려하게 꽃피었습니다. 올해에는 귀한 식품과 ‘돌단풍 석부작’를 주셨고, 키우고 있는 석부작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선뜻 내주셨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석부작을 보면서 ‘나라면 과연 이런 것을 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습니다. 사실 그럴싸한 석부작을 사고 싶어도 집사람이 헛돈 쓴다고 허락해 주지 않아 참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아름다운 석부작을 보고 있으면  참 흐뭇합니다.

 

 일방적으로 받기만 한 제가 지금까지 누구에게 베풀며 살았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는 것은 큰 착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 지인들 중 차화백님께는 너무 많은 빚을 졌습니다. 그 무게가 무겁습니다. 자신이 아낀 것을 조건 없이, 아낌없이 베풀어주신 차화백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앞으로 계속 염치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할지 매우 고민스럽습니다.

 

 (2019.4.29)

 

 

거실에 걸린 설경 <세유(細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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