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러' 가서는 제대로 느낄 수 없었을 선암사
인간은 오감을 통해 장소를 경험한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은 내 몸의 안테나가 되어 몸 밖의 것들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우리는 여행에서 다른 감각보다 시각을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여행 가는 것을 곧 다른 것들을 '보러' 가는 것과 동일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작업은 그곳의 사진과 소개글을 '보는' 것이다. 현지 여행에서도 눈으로 '보는' 행위와 '본' 것을 사진으로 촬영하는 행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여행에서 돌아와 정리할 때도 '본' 것을 기록하고, ‘보고’ 찍은 사진을 정리하는 작업이 주를 이룬다. 인간의 삶에서, 또 여행에서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인간은 시각 중심의 동물이다. 하지만 다른 동물에 비해 시력이 특별히 발달하지는 않았다. 하늘로 날아올라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독수리의 시력은 6,0~9,0 정도로 인간의 서너 배 이상이다. 초원의 귀공자, 타조의 시력은 무려 25,0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텔레비전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에서 타조가 육식동물에게 먹히는 장면은 등장한 적이 없다. 물론 인간의 다른 감각기관 역시 형편없다. 냄새로 세상을 파악하고 삶의 공간을 확보해 나가는 개와 고양이, 음파를 쏘아 의사소통하고 위치를 파악함으로써 세상을 인지하는 고래 등과 비교만 해봐도 잘 알 수 있다.
이렇게 시력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현저히 약한 수준임에도 인간은 시각 중심의 세계관을 형성했다. 청각이나 후각 등 다른 감각에 비해 시각이 상대적으로 더 발달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삶의 공간을 넓혀 가는 데 시각이 순기능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행할 때는 미약하고도 퇴화된 다른 감각기관들까지 적극 동원해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 모든 감각으로 느낀 경험들이 한데 어우러져야만 여행의 기억이 깊이 각인되기 때문이다.
한국철도공사 코레일의 3일짜리 자유승차권 하나로패스로 여행한 적이 있다. 부산의 부전역에서 경전선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차창 지리를 감상하며 오늘밤 잠자리는 어디로 할까 고민하는 사이 순천역에 당도했다. 문득 절에서의 하룻밤을 상상하니 선암사가 떠올랐다. 바로 전화를 걸어 숙박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종무원인 것 같은 사람이 대뜸 올라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절 밑 마을에 내려서 전화하면 시간 맞춰 스님이 나갈 거라며 어두운 길 조심하라고 담담하게 당부했다.
나는 묘한 기대감을 안고 늦은 1월의 맑은 햇살이 시나브로 물러가는 해 질 녘을 지나 절 밑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서 선암사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의 거리였다. 어둠을 헤치며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서움과 외로움이 엄습해 왔다. 그러나 이내 벗들이 나타났다. 길을 따라 도열한 설날 등불의 은은한 불빛과 하늘의 초롱초롱한 별빛, 이를 가로지르는 경쾌한 계곡 물소리와 소슬한 바람 그리고 상큼한 초목 냄새 어느덧 나는 그 속에 어우러져 있었다.
이윽고 탑 마당에 도착했다. 짧은 기다림의 순간 나는 내가 누구인지, 왜 여기에 왔는지를 생각했다. 곧 나타날 스님에게 설명하기 위한 답이었다. 잠시 후 스님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따라 오라고 했다. 절 한 켠에 자리한 가옥에 당도하자 스님은 미닫이문이 달린 방 한 칸을 사용하라고 말해 주었다. 아울러 씻는 곳과 해우소 위치, 해우소가 불편하면 이용할 수 있는 보살들의 반수세식 화장실 위치 등을 조곤조곤 말해 주었다. 그리고 스님들의 아침 식사시간은 다섯 시인데, 불편하면 일곱 시에 보살들과 함께 식사해도 되니 편한 대로 하라고 이야기하고는 다시 어둠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 갔다.
희미한 온기가 고여 있는 방 안에는 이불 한 채와 철 지난 초록색 나선형 모기향만이 한 줄짜리 막대 형광등 아래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낯선 쓸쓸함이 다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시간인데 방 안에는 적막감만 감돌았다. 적막감을 이기고가 밖으로 나가 나무 향기 가득한 해우소에 앉아보았다. 시린 냉수로 얼굴과 손발도 씻었다. 그리고 다시 방안에 돌아와 습관대로 스킨과 로션을 얼굴에 발랐다. 그 순간 강렬한 화장품 냄새가 다른 모든 냄새를 물리쳐 버렸다. 아무리 킁킁거려도 화장품 냄새 외의 것들은 나의 세상에서 사라져 있었다. 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다시 세수를 하고 몸의 방어막을 걷어냈다. 그러자 나무와 풀냄새가 오묘하게 얽힌 그윽한 향기가 다시 콧속 가득 퍼지면서 내 마음을 감싸 안았다.
다음 날 새벽, 대웅전으로 걸어가는 스님들의 발자국 소리와 새벽 예불의 독경 소리에 나는 잠을 깼다. 밖으로 나가 보니 처마 끝 풍경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청아한 소리가 선암사의 새벽향기와 어우러져 내 마음을 두드렸다. 그렇게 선암사에 대한 나의 기억은 시각적인 자극이 아니라 은은한 후각과 경쾌한 청각을 중심으로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이영민 / ‘지리학자의 인문여행’중에서
'여행, 걷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파랑길에서 온 편지 (0) | 2019.11.25 |
---|---|
세 번째 여행 (0) | 2019.10.07 |
여행과 관광은 어떻게 다른가 (0) | 2019.09.07 |
개선문의 나폴레옹 (0) | 2019.07.25 |
오직 현재 (0) | 2019.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