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걷기

여행과 관광은 어떻게 다른가

송담(松潭) 2019. 9. 7. 09:16

 

 

여행과 관광은 어떻게 다른가

 

 

 

 

 

 고난을 수반하던 전통적인 여행은 산업화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관광산업으로 발전하는 한편, 대중화되었다. 그 결과 현대사회에서는 여행과 관광이 엄밀한 구분 없이 교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여행과 관광은 비슷하면서도 분명하게 다른 용어다.

 

 관광은 잠시 둘러보며 구경하고 즐긴다는 의미가 강하다. 자신이 떠나온 곳과 친숙한 곳에 머물면서 잠시 낯선 것을 경험하는데 초점을 둔다. 새롭고 특이한 것을 경험하긴 하지만,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다. 편안한 숙소에서 지내며 가능한 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으려 한다. 그래서 패키지 관광 상품 광고는 얼마나 고급 호텔인지나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지 혹은 한식이 포함되었는지를 피력한다.

 

  반면에 여행은 객지를 두루 돌아다니며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속으로 동참해 들어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색다른 낮선 세계에 동참해 그 사람들의 독특한 생활양식과 문화를 접하고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둔다. 재현된 퍼포먼스보다는 여행지의 삶을 있는 그대로 체험하는 것이다.

 

 관광과 여행의 또 다른 차이점은 여정의 구체적인 계획 수립여부다. 관광이든 여행이든 볼 것. 경험할 것을 미리 정해 놓음으로써 전체 여정을 짜기 마련이다. 하지만 관광은 정해진 시간과 가격에 꽉 찬 일정을 소화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출발하기 전에 정해 놓은 여정()을 모두 성취해 내려고 한다. 패키지관광 상품의 일정표를 보면, 매시간 단위로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는지, 무엇을 먹는지, 어느 호텔에서 숙박하는지 등의 여정이 상세하게 정해져 있다. 준비된 여정을 다 소화해 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벅차 보인다. 하지만 가이드와 관광객들은 모든 것을 성취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다. 만약 그 여정을 다 소화하지 못하고 돌아오면, 관광객들은 불만을 제기한다. 심지어는 환불을 요구하는 관광객도 있다.

 

 여행 역시 대략적인 여정을 짜서 무엇을 보고 체험할지 정하기는 한다. 하지만 반드시 계획한 것만 수행하고 돌아오지는 않는다. 마음과 머리를 열어 놓기 때문에 정해진 것 외에도 더 많은 것을 경험한다. 관광은 예기치 않은 경험을 최대한 막아서 안전성을 보장하려 하지만, 여행은 예기치 않은 경험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만족감을 더 높이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행자는 계획한 여정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 관광객과 달리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행자는 자기 스스로 주도해 계획하고 실행하며 문제를 해결할 줄도 알아야 한다.

 

 경계 너머의 문화를 어떤 관점으로 경험하는지에 있어서도 관광과 여행은 다르다. 관광은 경계 안쪽과 바깥쪽의 문화를 비교하며 살펴본다. 그때 비교의 기준은 경계의 안쪽, 즉 나(여기)의 문화다. 관광은 색다름을 향유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제 속 바깥쪽에서 경계의 안쪽에 없는 것들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가령 선진국 사람들의 경우 제3세계 지역을 관광하면서 자신들의 과거를 발견하며 회한에 젖거나, 그들만의 독특한 환경과 문화를 확인하며 즐거워한다. 나와의 비교가 관광의 핵심인 것이다. 이러한 비교가 지나쳐 문화의 '차이'를 자칫 '우열'로 나누고, '열등한 타자'의 발견에 열을 올리는 경우가 있다. 동남아시아를 관광하는 한국의 일부 장년층들이 더운 환경과 그 속의 고단한 삶을 과거 자신들의 어렵던 시절과 비교하면서 열등하게 바라보는 경우가 그 예다.

 

 한편 여행은 비교하지 않고 이해하려 한다. 시간적이고도 지리적인 맥락 속에서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한다. 이때 이해의 기준은 나(여기)가 아닌, 그들(거기)이다. 여행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지 주민들의 입장에서 경험하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여행자는 다름을 확인하고 한 발짝 떨어져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만든 주체들의 노력과 결과를 공감하고 그 가치를 이해한다. 더불어 그에 비추어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해 낸다. 이것이 바로 여행의 핵심이다.

 

 여행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재구성하는, 즉 자기를 바로 알고 새로운 를 만들어 가는 작업이다흔히들 여행은 힐링이라고 한다.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고, 재충전의 기회를 주는 것이 바로 여행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힐링을 위해 굳이 여행을 갈 필요는 없다. 편안한 휴식은 익숙한 장소에서 더 잘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작가 미셸 옹프레는 그의 책 철학자의 여행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행은 우리에게 치료제로 작용하기보다는 우리 존재에 대해서 정의해 주고,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해준다.....

 우리는 자아를 치유하기 위해서 여행하는 것이 아니다. 자아에 더 익숙해지고 더 강해지고 더 잘 느끼고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 여행하는 것이다.

 

 정체성은 고정되고 영속적인 것이 아니다.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늘 새롭게 구성된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세상은 모두 다르면서도 같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마크 트웨인 여행기: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의 세계로 떠난 여행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실려 있다. "여행은 편견, 고집과 편협한 정신에는 치명적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여행을 필요로 한다. 사람과 사물에 대한 따뜻하면서도 해박한 식견은 평생 지구의 한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으로는 얻어질 수 없다."

 

 

 이영민 / ‘지리학자의 인문여행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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